거인의 손바닥 안에


30분 정도면 걸어서 마을을 둘러볼 수 있다기에 방에 짐을 풀고 딸과 둘이서 시내를 걸어 다녔다. 땅속에서 손을 내밀어 기지개를 켜는 거인의 손가락 사이에서 사진을 한 컷 찍었다. 사람이 바람에 날리는 조각을 공중에 매달아 놓아 바람의 세기를 상징적으로 해놓은 곳도 있다. 다행인 것은 지금 이곳은 초가을이라 바람도 세지 않고 걸어 다니기 딱 좋은 날씨다. 한참을 걸어 다니다 저녁 시간이 되어서 작은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소라와 조개를 줄줄이 실에 엮어놓은 것이 낭만적이다.

벽에는 어구를 이용해 만든 물고기들이 바다를 향해 헤엄쳐 갈 것 같은 감성을 느끼게 해줬다. 카누의 패들을 이용해 인테리어를 한 것도 독특하고 인상적이었다. 메뉴에 킹크랩이 들어 있는 음식이 있다. 북극과 가까운 러시아산 킹크랩은 많이 먹어 보았지만 남극 가까이에 있는 킹크랩은 처음이다. 맛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보고 싶어서 킹크랩이 들어간 음식을 시켰다. 요즘 말로 인생 메뉴라고 불러도 될 만큼 맛있었다. 저녁을 먹고 느긋하게 산책을 하며 숙소로 돌아왔다. 낮에 도착한 푸에르토나탈레스에서 모처럼 한가한 일상을 보낸 하루였다. 마을 전체가 평안해 보였다. 숙소로 들어서니 체험학습 온 학생들로 가득했다. 밤새 시끌벅적했지만 학생 시절 수학여행 갔던 때를 떠올리며 이해했다. 아침 늦게 식당에 내려와 보니 학생들이 모두 떠나 조용했다.

어구로 만든 물고기


우리는 토레스델파이네로 가기 위한 기착지로 이곳 푸에르토나탈레스에서 하룻밤을 묵은 것이다. 아침에 짐을 챙기고 나왔다. 푸에르토나탈레스의 바다는 속내를 알 수 없을 만큼 깊고 푸르다 못해 시꺼먼 색에 가까웠다. 버스에 올라 얼마나 달렸을까? 토레스델파이네 풍경을 짐작할 수 있는 설산과 호수 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산이 줄지어 산만 있다면, 호수가 연이어 호수만 있다면 이렇게 치명적 풍경을 만들어 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설산과 호수와 호수에 담긴 푸른 하늘이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풍경은 주저앉아 울고 싶을 만큼 비현실적이며 아름다웠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눈에는 담을 수 있지만 사진에는 담기지 않아 안타까울 때가 많다.

푸에르토나탈레스의 바다


기상환경이 평년보다 고온 건조한 날씨로 한국에서 산불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여 지리산으로 번진다는 뉴스를 들었다. 아침마다 산불 소식을 서로 공유하며 안타까운 마음에 어서 빨리 산불이 잡히기를 기도 해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지킨다는 것은 전 인류가 전 세계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곳 토레스델파이네도 2012년12월 이스라엘 여행자가 사용한 휴지를 야외에서 태우다 불씨가 날려 산불이 나고 그 산불은 무려 2개월 넘게 계속되었으며 그로 인해 5천만 평 넘는 숲이 탔다고 했다. 곳곳에 불에 타 쓰러진 나무들을 볼 수 있었다. 칠레 정부는 그때의 잘못을 잊지 말자는 뜻으로 불에 탄 나무를 그대로 놔두어 보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고 있었다.

산불로 피해 입은 나무들


토레스델파이네에서 토레스는 스페인어의 ‘탑’을 의미하고, 파이네는 파타고니아의 토착어인 테우엘체어로 ‘푸른색’을 뜻한다. 일부에서는 ‘파이네’를 이곳의 호수, 빙하, 하늘 색깔과 일치하는 ‘창백한 블루’로 풀이하기도 한다. 그래서 토레스델파이네는 푸른 탑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푸른 탑을 향해 기어가는 푸른 뱀처럼 호수는 이어졌다 끊어지고 다시 이어지기를 반복하며 토레스델파이네의 풍광을 만들어내고 있다. 화강암의 바위들은 인간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하는 촛대처럼 푸른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있다.

* 김양숙, 1990년『문학과 의식』시 등단, 2025년 탄리문학상 수상, 2024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예술활동비 수혜, 2017년 [시와산문 작품상] 수상, 2013년 부천문화예술발전기금수혜. 2009년 [한국시인상] 수상, 시집 『종이 사막』,『지금은 뼈를 세는 중이다』,『기둥서방 길들이기』,『흉터를 사랑이라고 부르는 이유』,『고래, 겹의 사생활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