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함께 한 10살의 앨리나. 아버지는 미술과 철학교사였다.
아침에 눈을 뜨니 어제의 피로가 조금 남았지만 일기는 매우 좋았다. 오늘은 멀리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로 가는 날이다. 공산주의 시절 북한과 가까웠으며 양쪽의 독재자는 의형제가 되었고 북의 기계적 일사불란한 카드 섹션을 그대로 도입했었던 나라다. 참 격세지감이 있는 여행길이다. 이륙시간은 오후 5시인데 특별히 할 일도 없고 길은 설어 일찍 나서기로 했다.
'숲미술센터' 전 후원회장 크리스티안 선생님이 공항까지 가는 경로와 교통편을 상세히 보내왔다. 그분은 직접 공항까지 데려다주겠다 했지만 내가 한사코 만류했다. 시간 여유가 있을 때 독일의 대중교통을 이용해 보고 싶었다. 독일의 트렘과 공항버스도 우리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아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하니 겨우 12시 반이었다. 무려 3시간을 기다려 표를 끊고 탑승구에 와서 느긋하게 승선을 기다리고 있다.
오늘 부쿠레슈티 공항에 앨리나(Alina)가 마중 나온다고 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곳은 인도 라자스탄주의 '산다르브(Sandarbh)' 축제였다. 그 당시 젊고 아름다운 루마니아 작가는 군계일학과 같은 존재였다. 모두의 시선을 강탈했던 그녀는 춤 솜씨가 매우 세련되고 자연스러웠다. 파티의 열기가 좀 식은 뒤에 "어쩌면 그렇게 춤을 잘 추세요?"라고 말을 건넸더니 화들짝 놀라며 "정말요?"라고 되물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자신은 한번도 춤을 배우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루마니아의 체조 요정 '코마네치'를 아는지 물어봤다. 그녀는 뜻밖에 "저의 이모예요!"라고 대답했다. 물어본 내가 더 당황스러웠지만, 춤사위를 보고 인정했다. 그녀도 자못 놀란 듯 어떻게 알고 기억하는지 궁금해했다. 사실 우리는 독재자 차우셰스쿠 보다 당대의 체조 요정을 더 잘 기억하는 것 같다.
앨리나의 안내로 루마니아에 온 것은 생각보다 편안한 여정이 되었다. 부쿠레슈티 중심가에 '안카 포터라수(Anca Poterasu) 화랑'을 운영하는 친구의 도움으로 화랑에 딸린 방을 쓰게 되었다. 화랑은 반지하와 1, 2층 구조인데 전층 리모델링을 마치고 개관전을 위해 작품이 방마다 들어와 있고 객실과 화장실이 한쪽에 마련되어 있었다.
아침에 숙소를 떠나 공산독재 시절 차우셰스쿠가 지었다는 거대한 궁전을 차로 한 바퀴 돌았다. 앨리나의 설명에 의하면 미국의 펜타곤과 함께 달에서도 관측되는 건물이라 했다. 다소 과장된 부분은 있겠으나 국가와 국민을 생각하지 않는 독재자에 대한 국민의 평가가 묻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