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전으로 들어올 때 봤던 풍경, 프랑스의 돌로미티를 닮아서 페루의 돌로미티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풍경이 모라이로 가는 동안 계속 이어졌다.
야생화가 만발한 언덕은 잉카제국의 제단 같았다. 원형으로 조성된 잉카제국의 유적지 모라이로 갔다. 모라이와 모아이는 어감상 비슷해서 나도 자꾸 헷갈린다. 모아이는 칠레의 이스터섬에 있는 석상이고 모라이는 페루의 식량 종자 개발을 위한 실험 경작지를 말한다.
잉카제국은 안데스 산맥을 따라 만들어진 나라로 농지가 부족한 나라였다. 모라이는 해발 3423 – 3479m 산지를 계단식 원형 테라스로 조성되어 있으며 계단식 테라스의 맨 위층과 맨 아래층의 온도 차이가 무려 15도나 난다는 곳이다. 잉카 전 지역에서 자라는 갖가지 식물들을 가져와 기후와 고도에 따라 작물들이 어떻게 자라는지와 고도나 기후에 따른 식량 종자 개발을 위한 실험 경작지다.
모라이를 보면서 그 시대에 어떻게 이런 실험적 경작지를 만들었을까 경이로움마저 느꼈다. 페루의 감자 종류만 해도 3000가지가 넘는다는 가이드의 얘기를 들으며 고개가 끄덕여지고 대단한 민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능선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안데스의 속살인 흙길을 밟으며 걷다 아직도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는 잉카의 후손들이 야마, 알파카를 데리고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점심 식사를 위해 레스토랑이 있는 작은 마을 골목으로 들어섰는데 긴 막대에 빨간 비닐과 파란 비닐을 뭉쳐서 벽에 비스듬히 세워진 집이 보였다. 궁금해 가이드에게 깃대의 의미를 물었더니 전통 술집이란 표시로 이 고장에서 만든 술을 판다는, 즉 광고 역할을 하는 깃대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이곳에선 광고판을 만드는 비용이 너무 비싸기 때문에 원시적인 방법이지만 이렇게 광고 한다는 것이다.
오래전 터키의 어느 마을을 지나는데 지붕 위에 항아리나 빈 병이 하나씩 올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떤 지붕 위에는 두 개가 올려져 있기도 했다. 기이한 생각에 가이드에게 물어봤더니 집에 결혼 적령기의 딸이 한 명 또는 두 명이 있다는 표시라고 해서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면서 웃은 적이 있었다. 항아리나 빈 병이 우리나라의 '결혼해 듀오'라는 회사와 같은 역할을 하듯이 여기서 보이는 깃대 역시 우리나라의 선술집을 알리는 간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식당에 들어서니 멀리 설산과 산맥이 흘러내리다 멈춘 구릉이 보이고 마당에는 라마와 알파카 몇 마리가 풀을 뜯고 있었다. 어디를 둘러봐도 이 세상 풍경이 아닌 천상의 뷰 같았다. 일행들은 알파카와 라마와 천상의 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점심 메뉴는 라마 고기였다. 몸 상태가 좋지 못했던 나는 결국 체하고 말았다.
오늘은 고도가 더 높은 쿠스코로 넘어가야 하는데 걱정이 앞섰다. 그리고 더욱 아쉬운 것은 눈앞에 있어서 더욱 그리운 풍경 살리네라스 염전과 모라이 사이를 뒤로 하고 떠나는 마음이었다.
* 김양숙, 1990년『문학과 의식』시 등단, 2009년 [한국시인상] 수상, 2017년 [시와산문 작품상] 수상, 2013년 부천문화예술발전기금수혜. 2024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예술활동비 수혜, 시집『지금은 뼈를 세는 중이다』,『기둥서방 길들이기』,『흉터를 사랑이라고 부르는 이유』,『고래, 겹의 사생활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