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하는 일에 따라 그 아우라가 직간접적으로 겉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얼굴이 핼쑥하고 옷매무새가 단정한 사람은 사무직일 가능성이 높다면, 근육질에 우락부락한 사람은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테마가미 호숫가 집주인은 후자의 하나다. 그는 시골 노인티가 줄줄 나는 파라다이스 숙박 센터의 주인이다. 괄괄한 목소리에 쩍 벌어진 어깨, 곱슬거리는 턱수염과 구렛나룻은 언뜻 보아도 범상치 않다. 그는 젊은 시절 대륙을 횡단하는 대형 트럭을 운전했다. 바퀴가 18개나 달렸다 하니 큰 트레일러를 두 개씩 달고 다닌 모양이다.
노인은 젊어서 트럭 운전으로 열심히 모은 돈으로 호숫가 땅을 사서 숙박과 식당을 겸한 영업을 40년이나 했다. 3년 전 부인이 먼저 세상을 뜨고 파라다이스 롯지에 혼자 살고 있다. 사람들이 찾아오는 여름을 빼면 한 해의 반이 겨울이다. 겨울은 겨울대로 얼음에 구멍을 뚫는 낚시꾼이 모여든다고 한다. 한 번 언 호수는 이듬해 4월 말에나 풀린다. 어떤 때는 6월에도 눈이 오고 운이 좋으면 오로라도 볼 수 있다고 했다. 노인의 기억에 어느 해인가 석양이 진 후 하늘이 불타는 듯하여 밖으로 나갔더니 붉은 오로라가 온통 하늘을 덮고 있었다. 멀리 토론토의 아버지께 전화를 했더니 그곳에도 마찬가지로 오로라가 떴었다고 했다.
외로움이 몸에 밴 '도기(마을 사람들이 부르는 애칭)'촌장은 창고 겸 작업실 식량 저장고를 일일이 보여 줬다. 평생 쓰던 연장과 사물들이 방마다 가득했고 경제성이 떨어진 각종 동물들의 모피가 말리는 틀에 끼워진 채로 벽에 걸려 있다. 4 개나 되는 대형 냉장고에는 각종 식료품이 가득했다. 2층 거실 겸 식당에는 각종 물고기들의 박제가 금방 물에서 튀어 오른 듯 날렵한 동작으로 벽에 붙었고 사이사이로 풍경 사진들이 걸려있다. 대못(Dermot)이 그를 사진작가로 소개하는 것을 보니 동네에선 사진가로도 알려진 모양이다. 박제된 물고기를 모두 본인이 잡은 것이냐고 물었더니 일부만 그렇고 대부분 낚시꾼들이 잡은 것이라고 했다.
사람들 말처럼 물이 맑고 고기가 많으니 큰 송어라도 한마리 잡히면 회 떠 먹으리라 다짐해 본다. 변방의 외로움은 어쩔 수 없는 듯 도기 촌장도 집을 팔고 싶다고 했다. 여든을 바라보며 홀로 살기엔 집이 너무 크고 겨울은 길 것이다. 캐나다 정부 계획대로 토론토와 직통으로 열차가 운행되면 좀 더 많은 인파가 테마가미를 찾게 되겠지. 우리를 이곳까지 데려온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아름다운 자연과 어울리는 예술작품을 매개로 관광객이 웅성거리는 호수마을을 가꾸고 싶은 것이다.
건장했던 젊음의 패기와 열정은 식어갔고 동반자마저 세상을 뜬 지금 촌장의 곁에는 단 한 사람의 피붙이도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자식이라도 둘 것을... 하지만 이제 다 부질없다. 누군가 그의 집을 사기 전까지 촌장은 여전히 걸걸한 목소리로 찾아오는 사람들과 거래를 트고 적당히 농을 섞어가며 살아갈 것이다.
김치를 담던 날 큰 그릇을 여러 개 빌려준 고마움에 먹어보라고 권했더니 한조각 입에 넣고는 바로 물을 들이키며 "난 좋아하는데 김치가 날 싫어해!"라고 아재개그를 했다. 매운 음식에 대한 반응을 보니 그는 아마도 자신의 권역을 벗어나지 않고 이곳을 지키며 살아온 듯 했다.
오늘은 차에 치어 죽은 곰 한마리가 있다는 전갈을 받고 촌장이 직접 받아 왔다. 왼쪽 앞발에 상처가 있고 입에서 피를 흘리는 것으로 보아 내상이 있으려니 생각했다. 노인은 약 75파운드의 한 살 정도의 어린 놈이라 했다. 힘들어 박제는 하지 않겠다며 노인이 밖으로 나가자 다들 고기는 촌장이 먹을 것이라고 했다. 어쩌면 우리도 곰고기를 먹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