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티와칸의 태양의 피라미드, 김양숙 시인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 우리나라와의 시차가 무려 14시간이 되는 까마득히 먼 나라. 우리 선조들이 120년 전 '4년 계약. 주택 무료 임대. 높은 임금'이라는 묵서가*의 광고에 속아 선박용 로프 재료인 에네켄 농장을 기회의 땅으로 믿고 건너갔던 슬픔이 있는 나라. 나는 지금 관광객이 되어 멕시코시티의 중심에 서 있다. 만약 120년 전 우리 조상들이 하늘에서 현재의 우리를 내려다본다면 어떤 마음으로 우리를 바라볼까? 우리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을까? 잠시 감성에 젖어본다.

기원전 600년 천문학과 기하학적인 원리에 따라 세워진 70미터 높이의 [태양의 피라미드]와 [달의 피라미드]가 있는, [인간이 신이 되는 곳]이라는 테오티와칸의 역사를 가진 나라. 기원전 600-900년부터 마야 시대까지 많은 인구를 가지고 타지역과 활발한 교역을 했으며, 후기 메소아메리카 문학에서 ‘잊혀진 신의 도시’라고 불리는 치첸이트사의 역사를 가진 나라. 즉 마야문명과 아즈텍문명이라는 찬란한 역사를 가진 나라. 그러나 현재의 멕시코시티는 16세기 스페인 정복자 에르난도 코르테스에 의해 찬란했던 아즈텍 문명의 중심이었던 텐추아나(Tenochtitlan)의 아즈텍 유물 위에 스페인 식으로 세워진 도시다. 그러니까 멕시코시티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도시이다. 지금도 시내 곳곳의 빌딩 사이에서 아즈텍의 흔적들을 볼 수 있다.

도심에서 본 아즈텍 유물


역사를 승자의 기록으로 본다면 지금 한 국가가 존재한다는 것은 과거 어떤 나라와의 전쟁에서 이겼거나 또는 어떤 나라의 침략으로부터 지금의 나라를 지켜냈다는 증거일 것이다. 과거 숱한 전쟁을 치르며 국가를 빼앗기거나 국가를 지켜낸 멕시코를 보면서 우리나라 상황과 오버랩 되는 부분이 있어서 생각이 많아졌다.

여행 첫날 테오티와칸으로 가는 길에 멕시코시티 시내를 조금 벗어나자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낮은 산의 능선까지 빼곡히 들어선 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오래전 서울의 봉천동이나 난곡동처럼 서민들이 사는 동네 같았다. 어느 나라든 산자락에 모여 만들어진 동네는 대부분 서민들이 사는 곳일 경우가 많다는 생각을 하며 얼마나 달렸을까, 멀리 웅장하게 서있는 태양의 피라미드가 보였다. 기원전 600년의 시간을 만날 수 있다니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테오티와칸에 도착해서 보니 신에게 바쳐질 인간 제물이 오가던 죽은 자들의 거리를 사이에 두고 달의 피라미드와 태양의 피라미드가 인간의 흥망성쇠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전설처럼 서 있었다. 피라미드 앞에 서서 멀지 않은 미래의 인류세를 그려 보았다.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한인 마트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 아직 필요한 물건은 없었지만 멀리 멕시코까지 와서 살게 된 이유가 궁금해 한인 마트로 가 봤다. 가게 안에 몇몇 손님들이 있어 사장님과 말을 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아쉬운 마음으로 음료수 하나를 사들고 나오다 가게 안쪽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김치를 담그고 있어서 호기심으로 쳐다봤더니 아주머니께서 한국 배추로 담는 한국 김치라고 또박또박 얘기를 해주었다. 혹시 이들도 120년 전 멕시코로 온 우리 선조들의 후손이 아닐까? 내일 와서 인사를 건네고 이들이 담은 김치의 맛을 봐야지 하며 돌아왔지만 결국 그 김치를 먹어보지는 못했다.

멕시코시티에서의 둘째 날이다. 고대 마야문명의 유물이 전시된 국립 인류학 박물관에서 아즈텍 문명의 상징으로 시간과 우주를 표현한 거대한 석조로 되어 있는 태양석을 보았다. 그리고 사람의 심장을 제물로 받칠 때 제단으로 썼던 인물상 차크몰[chacmol]을 보며 저 제단위에서 얼마나 많은 인간이 제물로 받쳐졌을까 생각했다. 소깔로 광장 등 나머지 일정을 끝내고 돌아와 세비체가 유명하다는 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세비체는 한국의 회무침을 더욱 생각나게 했고 한국의 물회가 간절히 그리워지는 맛이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멕시코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클럽으로 향했다. 무대에서 연주가들은 음악을 연주하고 댄서들은 멕시코 전통춤을 추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간 뒤라 무엇을 어떻게 시켜야 할지 몰라 직원을 불렀더니 일행이 두 사람이라 그런지 직원은 별로 반갑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옆 좌석에는 한 가족으로 보이는 대식구가 빙 둘러앉아 축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딸이 눈치를 알아채고 직원을 불러 메뉴판을 보며 이것저것 시켰더니 직원의 태도가 금세 달라지며 친절하게 서비스를 해줬다. 나중에는 공연하는 가수까지 직접 와서 어디서 왔느냐며 친절하게 물었고 함께 사진을 찍으며 한 시간 남짓 즐겼다. 나올 때는 직원들이 배웅까지 해주었다. 그래 이게이 자본주의지 하는 하는 생각에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태양석, 국립인류학박물관

*묵서가: 멕시코를 뜻하는 한자어

*시인 김양숙, 1990년『문학과 의식』시 등단 2009년[한국시인상]수상 2017년[시와산문 작품상]수상, 2013년 부천 문화예술발전기금 수혜, 2024년한국예술인복지재단 예술활동비수혜, 시집『지금은 뼈를 세우는 중이다』,『기둥서방 길들이기』,『흉터를 사랑이라고 부르는 이유』,『고래, 겹의 사생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