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맹목적 방황

텃밭 농사


마늘캐기


철없던 중학교 3년을 마치고 꿈에 그리던 농업고등학교 대신 인문계 학교인 공주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어린 시절 함께 성장한 6촌 누이의 집요한 설득과 충고로 농고가 아닌 인문계 고등학교로 원서를 바꿔내고 시험을 치러 합격했다. 그것은 내 인생 처음 맞는 전환점이었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진학하고도 농부에 대한 꿈은 계속되었다. 학교에서 흥미로운 것은 오직 야구부 훈련하는 것을 구경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운동하는 것을 지켜볼 뿐 왜 고된 훈련을 해야 하는지 사색하지 않았다. 학년말 성적 부진한 그룹에 포함되어 방학 중 별도의 수업을 받았으나 그때까지도 공부는 관심 밖이었다.

청소년이 되었으나 여전히 사춘기 환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2학년 1학기 반쯤 지난 어느 날 나의 성적 부진이 집안의 근심거리가 되어 농사일하시던 두 형님과 마주했다. 그리고 부진의 이유를 묻는 말에 "농사를 짓고 싶어 그래요."라고, 철없이 대답했더니, 형님들께서 아연실색하고 내린 처방이 "네 생각이 그렇다면 방학하는 대로 농사일을 같이 해보자!"라고 말씀하시고 여름 방학이 시작되는 날 나의 ‘농사일 체험’이 시작되었다.

3 깨달음

수박 농사 테트리스


고추 농사, 눈


여름 방학을 맞아 남들은 특별보충 수업을 받을 때 나는 집에서 형님들과 함께 한여름 불볕더위 아래 매일 농사일에 열중했다. 당시의 일정은 새벽 콩밭 매기로 일과가 시작되어 아침 식사 후 오전에는 논에서 김매기, 점심 먹고 잠시 휴식한 후 더위가 좀 식으면 벼가 무성하게 자란 논에 농약 치기,해그늘엔 꼴 한 짐 베어 집에 돌아와 씻고 저녁을 먹고 나면 밤 9시가 넘어 곯아 떨어진다. 그리고 다시 여명 무렵 비슷한 일과가 매일 반복적으로 진행되었다.

나의 경이로운 농사 체험이 열흘쯤 접어든 어느 날 농약 통에 물을 채우다 논두렁에서 현기증으로 쓰러졌다. 형님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얼른 일어나려다 또 앞으로 고꾸라졌다. 순간 눈앞이 캄캄했다. 잠시 머뭇거리다 가까스로 일어나긴 했으나 일을 다 마치도록 두 다리가 후들거렸다.

논두렁에서 넘어진 후에도 농사 체험은 얼마간 계속했다. 그리고 나는 이제까지 고민해 본 일 없었던 나의 미래에 관한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막연한 환상과 같은 농업에 대한 동경이 뜬금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노랫말처럼 아름다움은 논두렁에서 찾을 수 없었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온 나는 처음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대학 시험을 치를 때까지 남은 시간은 세 학기밖에 없는데 책을 펼치면 모르는 것투성이였다. 그리고 마음먹는 대로 되지 않는 것이 공부인 것도 그때 깨닫게 되었다. 상황은 매우 절망적이었지만, 그냥 주저앉을 수 없었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때 내가 선택한 것은 “되는 것부터 하자”였다. 그리고 그 방법이 통했다. 그러나 끝까지 나를 고통스럽게 한 것은 수학, 물리, 화학, 외국어 등이었다. 결국 일부 교과를 포기한 채 얼치기 수험생이 되기로 했다.

팥농사, 빈대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