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호(경기대 교수)
동학사상은 밥을 동등하게 먹는 것이다. 밥을 동등하게 먹는 것을 후천개벽이라고 했다. 양반들만 배불리 먹는 세상, 농민들이 열심히 농사지어 양반을 배불리 먹이는 세상은 선천(先天)이라고 한다. 그래서 동학이 말하는 후천개벽은 모두가 밥을 고르게 먹는 세상을 여는 것이다. 모두가 밥을 동등하게 먹는다는 점에서 신분제는 제거되어야 할 제도이다. 남녀차별도, 적서차별도, 팔천이라는 딱지도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다. 모두가 한울님인데, 어떤 사람은 양반이고, 어떤 사람은 노비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최제우 선생이 노비 둘을 해방해 하나는 딸을 삼고 하나는 며느리로 삼은 이유이다.
동학에서는 백정을 비롯한 천민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이다. 전주성에서 집강소를 설치해 가장 먼저 한 일은 백정들을 표시하는 패랭이를 벗겨 백정이 존재하지 않음을 선언했다. 과부의 개가를 허용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런 시상을 선천세계라고 하고 다음에 올 시상을 후천세계라고 하는디유. 후천개벽이라고 하는 것은 하늘이 땅이 되고, 땅이 하늘이 되고 그로코 뒤바뀌는 개벽을 한다는 소리가 아니구유, 이 시상이 바뀌는디 크게 한번 바뀐다는 소리라는 구먼유.
후천세계는 어떤 시상이냐먼유, 그런 시상이 되면 양반상놈이 없고 종도 없고 주인도 없고, 사람이면 다 같이 똑같은 사람으로 한울님같이 서로 받들고 부자도 없고 가난뱅이도 없이 똑 같이 잘사는 그런 시상이라는 구만유.”(송기숙, <녹두장군>, 시대의 창)
너나들이 모두 둘러앉아 들밥을 먹는 것을 상상해보자. 풍물패들이 풍물을 치고 두레패들이 한바탕 모내기를 끝내고 둘러앉아 너나없이 밥을 먹는다. 밥의 평등이다. 밥이 평등해야 서로를 돌보는 것이다. 너나들이가 모두 한울님이어야 진정한 돌봄이 이루어진다. 한울님이 한울님을 돌보고 한울님이 한울님과 연대하는 것은 밥의 사상이다. 그래서 밥 한 그릇에 담긴 사상은 신분질서를 붕괴시키는 사상이다.
“이 나라에서는 밥을 먹을 때, 먹을 것을 달라고 하면 거절하는 법이 없다. 들에서 일하는 일꾼들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기꺼이 자기 밥을 나누어 준다. 잔치가 벌어지면 이웃을 초청해 모든 것을 나누어 준다. 길을 떠나는 사람은 여비를 받는다. 없는 사람과 나누는 것, 이것은 조선인이 가진 덕성 중에 하나이다.”(다블뤼 주교, <조선사 입문을 위한 노트>, 1860)
조선 사람들은 양반님네 말고는 밥을 일상에서 나누었다. 밥에서 평등은 이루어지고 있었다. 밥을 먹는 행위가 동학에서는 세상을 바꾸는 행위이다. 귀한 밥이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
“동학시상이 되면 가난맹이나 부자는 으째서 없어지냐 하면 그 이치는 이렇구만유. 사람은 속에다 한울님을 뫼시고 기신게 우리 사람이 보로 한울님이나 마찬가지고, 우리가 밥을 묵는 것도 한울님을 봉양하는 것이나 마찬가지하는 것이지유, 그런디 그런 귀한 밥을 어떤 사람을 배가 터지게 묵고 어떤 사람은 굶고 그러면 쓰것이유, 사람이 굶는 것은 한울님이 굶는 것이나 마찬가진디 한울님이 굶으면 안 되 것지유. 그래서 한울님을 봉양하는 재산은 똑 같아야 쓴다는 것이지라. 동학 시상이 되면 그래서 상놈이나 양반이나 종이나 주인이 다 없어져불고 가난뱅이나 부자도 없여불고 다 똑샅이 고평하게 산데요. 이것이 후천개벽이라는 구만유.”(송기숙, <녹두장군>, 시대의 창)
동학사상은 밥 사상이다. 모두 밥을 동등하게 먹는 세상을 꿈꾼 사상이다. 그런 세상이 바로 어떠한 차별도 없는 세상이며, 한울님이 한울님을 모시고 기르는 세상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시천(侍天)에서 양천(養天)으로 이어지는 동학의 ‘모심(侍)’ 사상이다.
한울님이 한울님을 모시는 것에서 동학교도들은 모두 서로 맞절을 한다. 부부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한울님이듯, 다른 사람도 한울님이기에 아녀자를 때리지 않는다. 아이를 때리지도 않는다. 한울님이 한울님을 때릴 수 없기 때문이다. ‘한울님을 모신다는 것(侍天主)’은 자신을 존귀하게 여기는 것이자 다른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동학교도들은 사람이 한울님이어서 모두 같다는 의미에서 동덕(同德)이라고 한다.
돌봄이란 무엇인가. 다른 사람을 한울님으로 모시는 것이다. 자신이 한울님임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과 남이 동덕임을 아는 것이 돌봄의 정신이다. 돌봄의 정신은 모심(侍)의 정신이다. ‘모심(侍)’은 자신의 한울님을 모시는 것이자, 다른 사람의 한울님을 모시는 것이다. 그래서 해월선생은 시천주(侍天主)의 ‘시(모심)’는 무엇이냐고 개접(開接)때 물었다. 이 질문은 돌봄을 실천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던져야 하는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