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호
오곡동 장자울에서 두리봉을 올라
공주 아래쪽 노성 들판을 바라보면
여기가 바로 한세상이라
마른 봄 논에 물 대 모를 심고
허리 굽혀 김 매 가을 나락이 여물면
누런 들판은 풍년의 춤으로 넘실거리니
바라보는 화엄세계 저절로 배가 부른데
썩은 정치에 통제할 수 있는 법은 없어
저 많은 쌀들이 농사꾼 입에 들어가지 않고
가로채어 배를 불리는 놈들은 누구인가
개집보다 못한 저 작은 밥상에 둘러앉아
하루 두 끼 거친 밥이라도 새끼들 입에
넣어주고 싶은 비루한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니
공맹孔孟과 성리학의 가르침은 어디에 있고
세상의 상식은 다 어디로 가버린 것인가
바람 찬 겨울바람을 맞받으며 산마루에 올라
아랫마을을 내려다보면 눈물이 나서
오로지 개벽 세상을 바라며 목구멍이 터져라
심고心告하며 나팔 불던 농민군 나팔수 이하사는
일본군 양총과 신식 대포에 쓰러져
끝내 우금티 너머 새 세상을 보지 못하고
아이고 내 팔 아이고 내 다리 하며
오곡동 부화터 들에 가득 찬 동지의 시체를
산모랭이에 모아 묻고 돌탑을 쌓아
군대처럼 올라오는 산수유 노란 봄마다
후천 개벽 꿈꾸던 벗이여 동지여 잘 가라
장자울에 남아 뜨거운 나팔을 불었다 하네
* 오곡동에는 최근까지 부화터 들에 아이고 내 팔 아이고 내 다리 하며
우는 귀신의 소리가 들렸다는 구전이 있다. 이하사 또는 이아사는 장자울에 살던
동학농민군 나팔수였다고 한다. * 심고, 동학도인들이 무슨 일을 하기 전에 하늘에 먼저 알리는 기도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