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호(경기대 교수)
1. 전주비빔‘밥’
비빔밥은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흔히 먹을 수 있는 밥이다. 그럼에도 전주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전주비빔밥’이 꼽힌다. 역사학자 이이화에 따르면, 전주비빔밥의 유래를 설명하는 것 중에 하나는 동학 농민군과 관련이 있다.
동학 농민군이 고부에서 봉기한 지 5개월, 백산 봉기로부터 40일 만에 전주성에 입성하고 집강소를 설치한다. 정부를 대표한 홍계훈과 화약을 맺고 농민들 대표로 자치를 실시한다. 이제 농민군들은 모두 농사일에 달려갔다. 농민은 논밭이 그들의 목숨이기 때문이다. 다산 정약용이 유언비어가 동에서 나면 서에서 화답하여 금방 난리가 날듯하다가도 농사철이 되면 농민들이 모두 논밭으로 달려간다고 기록했듯이, 농민군들은 전주성에서 화약이 이루어지고 집강소가 설치되자 모두 농사일에 달려갔다. 그러니 집강소에 일을 보는 사람들에게 밥을 해줄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나물에 밥을 비벼 먹었는데, 이것이 전주비빔밥이 유래라는 것이다.
물론 이들의 비빔밥은 고기도, 달걀 노른자도, 참기름도 없는 소박하기 그지없는 것이었지만, 큰 됫박에 보리쌀과 나물을 양껏 비벼 나누어 먹은 것이 그들의 비빔밥이라고 한다. 이이화는 전주비빔밥의 기원을 이렇게 설명하면서, 지금의 전주비빔밥은 동학농민군의 비빔밥이 아니라고 한다. (이이화, <전봉준 혁명의 기록>, 생각정원).
2. 오직 밥 한 그릇
동학의 창시자 수운 최제우와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은 모두 밥을 중요시했다. 심지어 해월은 동학의 정신을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라고 요약했다. ‘잘 먹고’에는 ‘마음을 바르게 잘 먹는 것이며, 천지의 기를 잘 먹는 것이며, 밥을 잘 먹는 것’이라고 했다.
‘마음을 바르게 잘 먹는 것’은 자신이 한울님임을 알면, 남들도 한울님임을 알아서 자신과 남을 한울님으로 섬기는 것을 의미한다. 어떻게 하면 마음을 잘 먹는 것일까? 이 질문은 해월 선생님의 말씀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나도 혈괴가 아니므로, 시비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니다. 혈기를 내어 시비를 하면 내 마음속의 한울님이 상할까 두려워 나는 시비하지 않는다. 나 또한 오장이 있으니 물욕이 없겠는가. 그러나 내가 물욕을 탐하지 않는 것은 한울님을 기르지 못할까 해서다. 나는 부녀자와 아이의 말에서도 배워서 그것을 쫓는다. 그들이 하는 말은 모두 한울님이 하신 말로 알기 때문이다.”(오지영, <동학사>)
이 말에서 ‘마음을 잘 먹는 것’의 의미를 알 수 있다. 마음을 잘 먹는 것은 내 마음속의 한울님을 해치지 않고 잘 기르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양천(養天)사상이다. 양천사상은 내 마음속에 있는 한울님을 상하지 않게 기르는 것이다. 이 양천 사상에서 시비지심과 물욕을 없애는 것은 마음을 정(定)히 하는 방법이다. 동학이 최고로 중요하게 여기는 수행인 수심정기(修心定氣)이다. 마음을 바르게 하면 한울님을 알게 되고, 한울님을 알게 되면 사람들 모두가 한울님임을 알게 된다.
‘천지의 기를 잘 먹는 것’은 천지 사이에는 영묘한 기가 흐르고 있어서 사람과 만물을 이 기를 따라 태어나고 죽는 것을 알아 따르는 것을 말한다. 이 기는 무위화기(無爲化氣)로 조화를 이루는 기이다. 무위로 된 기는 유위(有爲)에 반대되는 기이다. 유위는 누군가 명령하고 시켜서 하는 행위이고, 이 행위는 그 상대방을 자신의 아래에 두는 관계에서 일어난다. 천지와 만물은 모두 무위의 기로서 그렇게 화한 것이기에 누구의 명령이나 지배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이것이 무위화기의 의미이다. 스스로 천지의 무위한 기를 따라 자신의 삶을 살라는 의미이다.
무위화기를 안다는 것은 자기가 살기 위해 남의 말을 듣지 말고, 양반네 말을 따르지 말고, 자기 스스로가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천지에 물물이 스스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무위화기로 이해하면, ‘천지의 기’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동학의 주문에서 ‘지기(至氣)’와 ‘만사지(萬事知)’의 의미이다. 그래서 자신 삶의 주인이 자신이며, 자신이 한울님을 알아 주체적으로 사는 것이, ‘자재연원(自在淵源)’이라고 한다.
‘밥을 잘 먹는 것’은 밥이 한울님임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만물이 한울님이고, 물물이 한울님의 드러난 모습이니, 밥을 먹는 일은 그것이 쌀이든 보리쌀이든, 나물이든 모두 한울님을 먹는 일이다. 이를 한울님이 한울님을 먹어 한울님을 기르는 것이라고 한다. 내가 밥을 먹은 것은 내 속의 한울님이 밥을 먹는 것이며, 그 밥을 이루는 한울님들을 먹는 것이니 한울님이 한울님을 먹는 것이 된다. 이는 동학의 천관(天觀)인 이천식천(以天食天)이다. 한울님을 먹어서 내 속의 한울님을 기르는 것이니, 밥을 먹는 일은 한울님을 기르는 것이다. 이것이 양천(養天) 사상이다. 그래서 동학에서 밥을 먹는 행위는 이천식천(以天食天)에서 양천(養天)으로 이어지는 거룩한 일이 된다.
그러니 동학의 도를 닦는 자들은 자신의 한울님을 공경하고, 다른 사람의 한울님을 공경하고, 만물의 한울님을 공경하는 것이 첫째 수행이 된다. 모든 생명체는 밥으로 이어져 있으며, 한울님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단지 밥 한 그릇을 잘 생각해 보면, 동학사상의 원리를 깨칠 수 있다고 말하는 이유이다. 동학도들이 밥을 먹을 때, 엄숙히 식고(食告)를 하는 이유는 한울님을 공경히 하는 의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