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석 서유구를 아시는가? 대한민국에서 다산 정약용을 모르는 사람은 없어도 다산과 동시대에 같은 길을 걸었던 서유구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선비라면 성性이니 리理이니, 리理이니 기氣이니 하던 시절에 낙향하여 직접 채소를 가꾸고 부엌을 드나들며 음식을 조리하고 오줌장군 똥장군을 직접 지고 다니며 밭을 가꾸고, 하늘과 사람의 본성이 아니라, 농사, 조리, 화훼, 나무, 채소, 물고기 등 시골林園의 살림살이 하나 하나를 직접 보고 연구하며, 또한 이와 관련한 중국과 한국의 자료를 집대성하여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라는 조선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완성한 조선의 실학자. 사대부 셰프.
이명훈의 소설 서유구는 서유구의 일생을 추적할 뿐만 아니라, 풍석사회적협동조합에 참여한 ‘규철’의 시각에서 풍석의 업적을 분석하고, 풍석과 당시의 사대부들의 차이점, 이른바 북학파(백탑파)의 관련성과, 개화파로 이어지지 못한 이유 등을 다루고 있다. 소설은 서유구의 일상이라는 과거와, 규철의 현대적 시각이 교차적으로 나타나는 구성으로 짜여 있다. 서유구의 이야기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소설의 초점은 서유구의 일대기자체가 아니라, 그때나 지금이나 개혁의 대의는 없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정치인과 지식인의 실상을 비판하고, 기후위기와 생태계의 파괴와 같은 인류사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있다.
그래도 최근에 들어와서 서유구의 업적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한 곳은 음식조리 분야이다. 그가 쓴 정조지鼎俎志의 레시피로 술을 담그고 조리를 개발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사는 파주지역에는 정조지를 오늘의 입장에서 활용하는 분들이 계시다. 임원경제지 정조지를 번역한 분, 정조지의 기준에 따라 채식 공방을 운영하는 분, 부의주를 빚는 분, 토종 볍씨를 재배하여 막걸리를 거르는 등 대안적 삶을 고민하는 분들이다.
정鼎은 솥을 말하고 조俎는 도마를 말한다. 즉 정조지는 솥과 도마를 이용하여 요리하는 모든 것을 기록한 것이 정조지鼎俎志이다. 정조지 서문에 보면 ‘정鼎에 담는 것은 희생의 몸체이고, 조俎는 희생을 올리는 그릇이다. 다만 우리나라 사람은 정鼎이 음식을 끓이는 솥이라는 것을 알면서 조俎가 희생을 올리는 제기라는 사실은 알지 못하니, 그 지식이 엉성하다’는 말이 있다.
먹방을 즐기며 희희락락하고 있는 우리는 우리가 먹는 음식이 다른 생명체의 희생이고 더 높은 존재에 대한 제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까? 지식이 엉성할 뿐 아니라 생명과 음식에 대한 태도가 대단히 불량한 것은 아닌가?(글 전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