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변경선을 넘어가지 못한 서부 태평양 동경에는 사흘 내리 비가 쏟아진다. 비가 내리면 먼 나라 눈소식도 궁금해지지만 현문 곁 뱃사람들은 궁리가 깊어 아무도 입을 열려하지 않는다. 갑판으로 넘쳐드는 서늘한 바닷물이 심장까지 밀려와 무수히 철썩거리는데 그저 파도일 뿐, 바다가 지겨운 것이 아니라 내가 버린 세상이 싫어진 것이다. 쥐꼬리만큼 남은 나의 생에 몸을 맞대고 빳빳하게 꼬리를 추켜세워 심연으로 향하는 물고기에게 손 키스를 날린다. 이제는 배와 함께 흔들리며 사라질 날 밖에 없는, 짠물에 절여진 생을 달래지만 부끄러움도 감출 것도 없는 삶이란 것을 그대는 알고 있을까. 푸른 달이 천공에 걸리거나 수평선에 십자성이 보이는 날이면 고향 뒷산의 공동묘지에서 겹쳐 보이던 노란 무덤들처럼 서로 껴앉고 울 때도 있었다는 것을”
어제 페북에서 읽은 오어선장 이윤길의 글이다. 그가 매일 올리는 바다 생활에 대한 짧은 글에서 나는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세계의 한 단편을 읽는다. 글은 매우 짧지만 강력한 리얼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내가 경험한 바다라야 최고 긴 것이 부산 – 후쿠오카 - 타이베이- 상하이 – 오키나와(상륙 못함)를 부유하는 항로일 뿐이고, 그것도 고깃배가 아니라 안락한 크루즈의 경험이었으니.
오어선장은 작가 이윤길의 페북 이름이다. 그는 작가 이전에 뱃사람이었다. 원양어선의 선장으로 공식적으로는 은퇴한 사람이지만, 아직도 1년에 많은 시간을 원양어선을 타고 물고기를 잡으러 바다를 떠도는 현업의 ‘젊은’ 뱃사람이다. 그의 짧은 페북 글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가 쓴 작품을 찾아 읽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의 소설의 스토리는 한 마디로 심플하게 말하면 바다에 고기 잡으러 가는 ‘만선의 꿈과 실현’ 이야기다. <남태평양>만이 수평선 바다 너머로 요트를 타고 사라지고 싶은 여인의 사랑 이야기일 뿐, <북태평양>은 북태평양으로 꽁치 잡으러 가는 이야기이고, <남서대서양>은 남서대서양으로 오징어를, <남극해>는 남극해로 남극이빨고기를 잡으러 가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소설의 줄거리는 그렇지만, 소설은 물고기 잡는 이야기만이 아니라, 뱃사람들이 바다에 오기 전의 사연과 에피소드가 배 위에서 바다 위에서 이렇게 저렇게 엮이며 꼬이며 갈등을 일으키면서 펼쳐지는 이야기가 주먹에 땀을 쥐게 한다. 파도와 바람과 유빙과 그리고 배 위의 사람들끼리 말 그대로 사투를 벌이는 살 떨리는 장면들의 설명들이 추가로 던져진다.
특히 <북태평양>은 작가의 자전적 소설처럼 읽힌다. 수산고등학교 나온 실습 항해사가 원양어선의 선장이 되기까지 겪었던 설움과 수산업계의 뒷이야기가 목덜미를 서늘하게 한다. 뱃사람들의 노동 강도와 선주와 선장, 선장과 선원들의 실적 배분 관계, 외국인 선원들의 문제, 선상반란과 살인, 무노동 무임금이 아니라, 목숨 걸고 일해도 ‘노캐치 노머니’라는 선상 노동의 실상은 매우 끔찍하다. 재기를 노리고 다시 바다에 나가는 강 사장과 박기관장의 의 이야기인 <남극해>의 결말은 너무너무 슬프다.
해양소설이라는 이름을 단 그의 글들은 실제로 배를 타지 않은 사람은 쓸 수 없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남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들어서 쓰는 소설가들은 결코 쓸 수 없는 이야기로 사실감이 쩐다. 문장과 문체도 수려하고 이야기의 전개 과정도 스릴이 넘친다. 사실 바다를 생활과 전쟁의 배경으로 삼았던 오디세이아와 일리아드도 따지고 보면 해양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비교하면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동화에 가깝다.
선박과 어구와 어업의 전문적 용어들이 독서 속도를 늦추지만 알바트로스나 서든 자이언트, 신천옹이라는 희귀한 새의 이름과 생태는 독서의 흥미를 배가시킨다. 그가 바다를 떠돌며 썼던 4권의 시집은 아직 못 읽었다. 그가 바다에서 돌아온다면 주문진 어디쯤 허름한 횟집에서 소주 한 잔 하고 싶다. 두꺼워서, 어려워서, 재미없어서 여러 차례 읽다가 덮은 <모비 딕>을 이참에 끝까지 읽어보아야겠다.
“전재가 끝났다. 냉동운반선은 제 뱃길로 가고 나는 어장으로 향한다. 하늘의 무거운 구름들이 그 사이를 지나가고 표범과 치타의 무늬가 서로 겹쳐지지 않듯 냉동운반선도 멀어지고 나도 냉동운반선으로부터 멀어진다. 바람이 늘어선 수평선 먼 곳에는 이미 덩치 큰 파도가 일어서기 시작했다. 파도 더미는 배고픈 쇠바다제비 따라 허공 가장 높은 곳까지 치솟았다. 불면과 불면 사이에서 폭포처럼 쏟아질 것이다. 그러나 나의 피는 짜고 또 붉다. 뱃사람 운명을 끊지 않고는 돌아갈 수 없는 어부. 만선이 지나간 적도 바다 헤매다 물비린내가 뭉클뭉클 흘수선을 싸고도는 때이면, 돌아가고 싶다는 등 뒤 긴 그림자도 나를 이해할 것이다. 나는 바다에서 삶을 찾는 물짐승 아니던가. 나는 여전히 만선의 기쁨을 쫓는다. 힘내자. 약속은 없었지만 다시 하루다,” 며칠 전 그의 페북 글이다.(글 전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