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영(신일중학교 진로진학교사)
1953년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오른 사람은 뉴질랜드 등반가 에드먼드 힐러리와 네팔인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이다. 당시 정상에 오른 사람의 사진에는 셰르파인 텐징이 서 있다. 그가 카메라 촬영법을 몰라 힐러리가 촬영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고봉에 등반할 때 셰르파의 도움은 필수다. 그들은 수 세대에 걸쳐 높은 고도에서 생활하며 자연스럽게 고산 적응력이 뛰어난 유전적 특성을 가졌다.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등반한 사람은 에드먼드 힐러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는 최초로 등반한 백인일 뿐이다. 정확히 말하면 셰르파인 텐징과 함께 등반한 것이다.
백인들의 장비와 기술력이 있었다면 진작에 에베레스트는 셰르파들이 먼저 등반했을지 모른다. 아니, 역사에 남지 않은 완등이 이미 있었을 수 있다. 여기까지는 20세기 백인 중심의 세계관에 관한 불편함의 투정이다. 하지만 인종과 문명에 관한 차별적 역사가 존재한 사실만큼 그것에 관해 남아있는 편견도 무섭다. 나의 예상을 깨고 힐러리는 함께 등반한 텐징을 존중하며 둘은 평생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사람들은 그 둘의 업적을 기리며 에베레스트 등반의 관문인 공항의 이름을 ‘텐징-힐러리 공항’으로 지었다.
셰르파의 고산 적응력이 수 대에 걸친 유전적 성취라면 아예 그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최초 완등에 필수 장비였던 산소통도 없이 에베레스트를 등반한 사람은 라인홀트 메스너와 피터 하벨러였다. 최초 등반에서 25년이 지난 1978년이었다. 무언가에 집중하고 노력한 인간의 능력이 유전적 유리함(셰르파)과 환경(산소통)을 뛰어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인간의 능력은 참으로 위대하다. 2년 뒤, 메스너는 역시 셰르파와 산소통 없이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여 에베레스트를 오른다. 이전까지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단독 등반을 성공한 것이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1931년에 완공되었다. 지상 102층, 높이는 381m인 이 빌딩은 단 14개월 만에 지어졌다. 크레인 등 건설장비 없이 걸린 기간이었다. 63빌딩이 5년이 걸린 것에 비하면 경이로운 기간이다. 건설 노동자들이 한 층씩 쌓아 올려 만들었다. ‘고층빌딩 위에서의 점심(Lunch Atop A Skyscraper)’이란 사진(당시 RCA 빌딩 건설 현장)은 아찔한 고공에서 그들의 휴식 장면으로 유명하다. 실제 일하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도 많이 있으니, 위작이 아니다. 사람들은 별다른 안전장치도 없이 그 높은 곳에서 일했다. 그 당시 유행이었던 뉴욕의 마천루 공사에 투입된 노동자 중 아메리카 원주민이었던 다수의 모호크(Mohawk)족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은 전통적으로 높은 나무를 타거나 절벽 근처에서 사냥하는 일이 많아 고소공포증이 없었다. 그래서 그러한 노동이 가능했다.
그러나 모호크족에게 선천적으로 고소공포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높은 곳에서 균형을 익히는 생활 방식의 유리함은 있었으나 그들도 공포를 느꼈고 그것을 문화적 특성으로 이겨냈다. 바로 ‘두려움을 드러내지 않는 문화’였다. 고소공포증이 없는 게 아니라 그런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당연한 과정으로 여겨졌다. 아울러 서로를 강하게 믿고 극복하려는 공동체적 신뢰와 협력의 문화가 개인적 두려움을 이겨내는 데 도움을 주었다. 더 대단한 건 그들과 함께 일한 다양한 철강 노동자들이었다. 성장 배경과 문화적 영향이 없어도 노동 현장에서 그들처럼 고소공포증을 이기고 버텼다. 약 3,500명가량의 노동자가 일했는데 건설 기간 동안 사망한 인부는 총 5명뿐이었다. 인간의 능력은 참으로 위대하다.
지금은 맛집 프로그램으로 변했지만 2005년부터 무려 20년을 방영 중인 TV 프로그램 ‘생활의 달인’에서는 저 위의 셰르파와 모호크족 뺨치는 생활 현장에서의 직업인들이 소개되었다. 수십 년간 한 분야에 종사하며 열정과 노력을 가하면 달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걸 수많은 사례로 보여준 프로그램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거대한 교각, 대형 케이블카, 놀이공원 기구 등을 점검하는 노동자들은 현존하는 모호크족이었고, 봉투 냄새만으로 라면 종류를 맞추는 라면 달인, 뜨개질 달인, 배드민턴 달인, 광고판 달인, 피자 자르기 달인, 칼질의 달인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직업 현장의 달인들이 방송을 탔다.
‘생활의 달인’이 다소 단순한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 중심으로 뛰어난 달인을 찾는 프로그램으로 치부된다면 과연 직업 현장에서 달인이라 불릴 정도의 위대한 능력을 발휘하는 건 제한적인 것일까? 그렇지 않다. 부천 세종병원 흉부외과 복도에 있는 ‘어느 외과의사의 노력’이라는 제목의 액자에는 심장 수술에 쓰는 바느질법과 매듭법을 연습한 이불 조각과 방석이 전시되어 있다. 한국 최초로 심장 이식 수술을 성공한 송명근 박사가 미국 유학 시절 밤마다 노력한 것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그런 연습과 노력으로 최고의 흉부외과 명의가 되었다. 그뿐이겠는가? 우리 동네 건강 검진센터만 해도 원장 의사는 어림잡아 하루에만 10건 정도의 위, 대장 내시경 진료를 수행한다. 연간으로 보면 약 3,500건 정도이다(서울시 서남병원 내시경 통계를 통한 추정). 그래서 내시경으로 간단한 시술을 할 정도로 고도의 기술을 보여준다. 직종을 불문하고 위대한 인간의 능력을 발휘한 사례는 도처에 있다.
문득, 학생들은 어떤 능력을 지니면 달인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긴다. 중고등학교 6년 동안 한 번도 지각, 조퇴, 결석이 없는 개근을 했다면, 수업 시간에 활동지와 노트 필기를 너무나 꼼꼼하고 철저하게 해서 충실하게 활용하고 있다면, 한 해도 빠지지 않고 학급 도우미 활동을 하며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아서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도움을 주었다면, 단 하루도 교복을 제대로 입지 않은 날이 없고 학교 교칙을 어긴 날이 없다면, 그렇다면 그 학생이 성적이 좀 낮더라도 충분히 위대한 학생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 모든 위대함보다 학업에서의 성과가 우선되어 칭송받고 있다. 좋다! 그게 무엇이든 어린 시절부터 무언가에 몰두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제자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렇다면 선생님에게는 어떤 모습들이 위대한 인간 능력의 발현으로 보일까? 수업을 방해하거나 일탈 행동을 하는 아이를 만날 때 보통 사람이 절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평정심과 학생을 지지하고 끊임없이 신뢰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달인이라 칭송받지 않을까? 또한 너무나 재미있고 유익한 수업을 매시간 실시해서 단 한 명의 아이도 잠을 자지 않고 즐거워하는 수업을 한다면 어떨까? 어떤 부서, 어떤 업무를 맡겨도 늘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는 탁월한 업무 능력이라면, 학부모와 지역 사회의 민원이나 고충을 진심을 다해 해소해 주어 늘 만족을 준다면, 전교생의 이름을 모두 외운다면, 그렇다면 진정 칭송과 존경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태까지 그 어느 영역에서도 달인이라 불릴 위대한 성취가 부족한 나의 상황은 다소 쑥스러운 일이다. 그래도 남은 경력 안에서나마 무언가 이룰 수 있다는 기대를 저버리지는 말아야겠다. ‘인간의 능력은 위대’하니까 말이다.
‘고층빌딩 위에서의 점심(Lunch Atop A Skyscrap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