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짜리 손녀는 여행을 엄마는 사진 찍기, 아빠는 맛있는 곳 찾아다니기, 저는 쇼핑이라고 정의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여행은 무엇인가 물었더니 함께 여행을 많이 하지 않아 아직 모르겠다고 한다. 방학 때마다 남도의 한 군을 집중해서 답사여행을 시켰던 제 어미의 어렸을 때 경험을 아직 말해주지 않은 게 분명하다.
열 살짜리의 쇼핑이란 게 가는 곳마다, 보이는 곳마다 뽑기나 인형을 사는 것이었지만 사위의 미식 취향은 우리의 이번 여행을 매우 즐겁게 해준 요인이었다. 우리 부부만 왔었다면 어디로 갈까, 무엇을 먹을까, 차편을 어떻게 구할까 등등 해야 할 고민을 처음부터 하지 않게 해주었고, 하루 전에 짜준 일정만 협의하면 모든 게 오케이였다. 요새는 인터넷이 발달하여 검색만 하면 멋있는 곳, 맛있는 곳을 금방금방 찾을 수 있고 사전에 예약을 할 수 있어 맛있는 음식을 편안하게 먹을 수 있었다.
오키나와만 하더라도 세계적인 휴양지여서 과거 역사의 상처만 의식하지 않으면 즐길 거리, 볼거리, 먹을 거리가 넘쳐나는 지상천국이었다. 특히, 섬이기 때문에 일단 우선 해산물이 풍부하고 전통적으로 흑돼지를 키워 왔으므로 돼지고기(아구)와 최고급 와규를 즐길 수 있는 미식천국이었다. 호텔이나 일반 음식점에 가면 서양화된, 표준화된 음식을 제공하고 있어 혹시 외국을 여행하면서 겪게 될 음식 문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스시(초밥)도 비교적 좋은 값에 넉넉하게 즐길 수 있다. 와규는 비싸다. 그렇지만 맛은 좋다.
그래도 현지에 가면 현지음식을 먹어야지 하는 사람은 류큐요리점에 가면 된다. ‘류큐요리’의 백미는 ‘오키나와 소바’이다. 국수에 비계 달린 돼지고기를 얹어 주는데, 제주도의 고기국수와 흡사하다. 특히 여기서 유행하는 것이 ‘돼지고기 샤브샤브’인데, 맹물에 파나 야채를 넣고 끓으면 얇은 삼겹살 모양의 돼지고기를 넣어 익으면 소스에 찍어 먹으면 끝이다. 볼때는 저런 걸 어떻게 먹나 하는데 먹으면 먹을 만하다. ‘오키나와 소바’와 ‘돼지고기 샤브샤브’는 남녀노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 현지인들이 즐기는 일종의 샐러드인 ‘고야 찬푸르’나 바다 포도로 불리는 우미부도라는 것도 특이한 음식의 일종이다.
쓰보야 도자기 거리의 류큐요리 식당에 갔다가 노키드 식당이라고 해서 쫓겨 나와서 마땅한 식당을 못 찾다 겨우겨우 찾아낸 동네 안 노포 식당의 체험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네 명이 겨우 앉을 수 있는 테이블 하나를 두고 식당을 운영하는 94세 노파가 끓여주는 오키나와 소바의 맛은 아주 환상적이었고 그 연세에 일하는 할머니의 노동은 기적적이었다.
오키나와는 제주도와 거리는 멀지만 쿠로시오 해류의 통로에 있기 때문에 예전부터 서로 교류가 많이 있었을 것 같다. 흑돼지를 키우고 돼지와 관련된 민속과 음식도 유사하다. 이유 없이도 떠나는 것이 여행이고, 다니면서 어떤 이유를 만들어가면서 싸돌아다니는 것이 여행이기도 하다. 현지 음식은 현지의 자연과 문화의 소산이기 때문에 현지의 자연과 인간을 이해한다는 차원에서 현지 음식을 먹는 것은 여행하는 사람의 의무, 의무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자세라는 것이 나의 쓸데없는 생각이다.(글 전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