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리성은 일본에서 교토와 나라와 함께 고도古都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슈리성은 옛 류큐(琉球) 왕국의 정궁이다. 세 개의 나라로 분립되었던 오키나와를 중부 왕국인 류큐가 1429년 통일하여 1879년 일본에 편입되기까지 약 450년간 왕궁 역할을 하다가 태평양 전쟁 때 일본 육군 32군의 총사령부로 쓰이면서 미군의 함포와 공군의 공격을 받아 전각들은 물론이고 성을 쌓은 돌 하나까지 남지 않고 말 그대로 콩가루처럼 박살나게 된다. 폭탄이 얼마나 많이 날아들었으면 '철의 폭풍'이 불었다 했을까? 슈리성은 일본의 침략으로 일본 땅이 되었다가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가 독립하지 못하고 다시 일본 땅이 되면서 갖은 수난을 당했던 오키나와인들의 운명처럼 말 그대로 모진 운명을 경험한 역사 유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아름다운 풍경 뒤에 숨은 역사나 개인사의 아픔이 크다.

1972년 오키나와가 미국으로부터 일본에 반환되고 1989년에 성을 재건하기 시작하여 1992년 정전의 복원이 완성되고 그 밖의 건물들도 2109년 완성되는데 그다음 해에 전기 누전으로 6개의 전각이 전소되고 만다. 전소된 전각들을 지금 복원하고 있는 중이다.

류큐는 당시 중국과 조선과 조공 무역을 했던 나라였다. 전라도 흑산도 홍어장수 문순득이 풍랑을 만나 여기까지 표류했던 기록인 <표해시말(표해록)>에 그 기록이 남아 있다. 풍랑을 만나 문순득이 류큐까지 와서 8년을 살다가 중국으로 가는 조공선을 타고 가다가 다시 풍랑을 만나 필리핀으로 표류하고 다시 중국으로 갔다가 조선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이다. 황석영이 쓴 <심청>에는 효녀 심청이 아니라, ‘매춘의 오디세이’로 중국 상인에게 팔려 난징에서 중국 여기저기로 팔려가는 심청의 이야기가 그려지는데, 그녀의 인생 편력과 유랑의 한 지역으로 류큐가 언급되고 류큐에서 다시 제물포로 돌아가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태평양 전쟁을 통해서 오키나와인들이 겪었던 수난과 고통을 오키나와인(우치난츄)의 입장에서 끈질기게 문제를 제기하며 문학적으로 조명하는 작가들 중에서 대표적인 사람으로 메도루마 슌이 있다. 그의 소설 속에는 일제강점기 우리 항일 정서와, 반미 친미의 모순 속에서 살아가는 동두천 어디쯤의 우리나라 사람의 정서 비슷한 것들이 담겨 있다. 양주에서 벌어진 효선이 미순이 사건이나 동두천의 윤금이 사건과 비슷한 일들이 여기에서도 벌어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벨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오키나와 노트>에는 오키나와 사람들에 대한 본토인으로서의 작가적 연민과 양심고백이 담겨 있다.(글 전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