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호

폭탄이 비 오듯 쏟아지는 동굴의 밤중에

간당거리는 자식들의 목숨줄을 붙잡고

함포를 쏘지 말라 바다 건너온 미군이여

꺼져가는 부모형제의 몸을 찌르지 말라

집단자결을 부추기는 비겁한 일본군이여

가슴속 통곡과 절규를 피고름 뱉어내듯

통증을 깊숙이 허파로 삼키던 말씀 평화

평화 평화여 함부로 가볍게 말하지 말라

평화라는 말은 전쟁과 학살 속에서

마른기침처럼 터져 나오는 간절함

평화는 마치 평화라는 말에서 오는 것인냥

심심풀이처럼 쉽게 주절거릴 수 없는 말

도대체 평화는 어디에서 오는가

전쟁이 끝나 포탄의 불바다는 그치고

풀 한 포기 나지 않던 불임의 땅 위에

풀들은 뿌리를 뻗어 나무는 다시 푸르고

살아남은 자들은 새끼를 낳고 낳고

다시 집을 짓고 길을 내고 도시를 만들어

잊지 말자고 평화의 거리를 만들었지만

평화는 전쟁과 학살에서 총 맞고 불타

죽은 자들을 조용히 기억해야 하는 말

장사 속에 평화의 거리의 이름을 짓고

희희낙락 너무도 입이 가벼운 자들이여

죽어 바람이 된 사람들을 잊지 말고

죽인 자들의 총칼을 기억하는 것이다

* 평화의 거리라는 이름의 거리를 걸으며,

오키나와 작가 메도루마 슌의 소설 제목.

‘평화의 거리’는 오키나와 나하시 국제거리

뒷길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