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교육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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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26 09:33 | 최종 수정 2025.01.26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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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키마 미술관은 후텐마 기지로 둘러싸여 있는 평화박물관이다. 여기에는 마루키 이리와 토시 부부의 높이 4m 길이 8.5m 대작 ‘오키나와전도戰圖’를 비롯한 14 연작이 전시되어 있다. 오키나와 전쟁을 형상화한 작품은 당시 전쟁의 참혹함과 주민들의 암담한 현실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갤러리 컬렉션을 관통하는 주제는 ‘인간과 전쟁’, ‘삶과 죽음’, ‘고통과 구제’다. 마루키 부부는 1983년 히로시마 원폭도 15부를 그린 유명 작가이다.
갤러리를 운영하는 사키마 미치오 관장은 후텐마 기지에 수용된 조상의 땅을 돌려받으면서 전쟁과 살상 기지 비용인 지대를 개인을 위해 헛되이 사용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평화의 미술관을 설립했다고 한다. 전문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사키마 미치오는 역사학·민속학·고고학을 비롯하여 '미술품 컬렉션'을 시작했다. 우에오 마코토, 20세기 종교화가 조르주 루오, 20세기 독일의 대표적 판화가 케테 콜비츠의 '피에타 아이들을 품어 안은 어머니' , 도네야마 고우진의 작품,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 시리즈 등을 수집했다.
미술관 옥상에 가면 오키나와전 위령의 날인 6월 23일(일본군 사령관 자결로 전쟁이 종료된 날)을 상징하는 6개의 공간과 23개의 계단을 지나 네모난 구멍이 있는데 6월 23일 일몰 석양빛이 이 구멍을 통해 비추도록 설계했다. 미술관은 지금은 맹그로브 숲으로 녹음이 무성한 편이지만, 전쟁 이후 오키나와는 목조 건축물과 자연이 모두 타버려 폐허처럼 변했다. 당시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수십 년 간 푸르름을 볼 수 없고 식물이 자라지 않았다고 한다.
1945년 일본은 2차 대전 막바지에 패배를 예감하고 일본 본토를 방어하기 위해 오키나와 섬을 방패막이로 삼는다. 일본군은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미군에게 치욕을 당하느니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라' 라고 철저하게 세뇌하면서 집단자결을 강요하고, 한편으로는 직접 집단학살을 자행하기도 했다. 오키나와에는 자연동굴이 많아, 주민들이 자연동굴에 피신해 있다가 집단 자살한 곳이 수십 곳에 이른다고 한다. 마루키 부부의 그림의 주요 배경이 동굴인 이유이기도 하다. 1945년 4월 1일~6월 23일 오키나와 전투에서 미군에 패해 집단 자살한 일본군은 오키나와 주민들에게도 집단 자결을 강요해 오키나와 민간인 약 9만 4000명, 오키나와 출신 징집병 약 3만 명 포함 총 20여만 명이 숨졌고, 50여만 이상이 상륙한 미군도 2만 명 이상이 죽었다고 한다.
현재 후텐마 기지 철폐 운동을 벌이고 있는 오키나와에서는 기지의 완전 철수가 아니라 헤노코 앞바다에서는 바다를 매립해 기지를 건설하는 해중기지를 건설하고 있어 이에 반대하는 현지 주민들의 반대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오키나와섬의 비극은 한국의 제주 4. 3, 강정의 미해군 기지, 6.25 때의 금정굴, 골령골 등의 아픔을 상기시킨다.
(글 전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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