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도덕경 산책(69)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5.01.22 09:01 의견 0

김준식(진주고등학교 교사)

깊은 겨울이다. 최근 몇 년 동안 겨울 기온에 비교하면 제법 낮은 온도다. 낮은 온도는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을 움츠려 들게 한다. 인지상정이다. 어제 동네 저수지를 걷다 보니 시베리아의 혹독한 추위를 피해 우리나라로 날아온 겨울 철새들조차 햇살 퍼지는 쪽에 옹기종기 모여 웅크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어릴 적 살았던 곳에는 바로 동네 앞에 강이 흘렀다. (지금은 상류에 댐을 놓는 바람에 전부 논이 되어 강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모래 강바닥과 깊지 않은 물, 그리고 유속도 적당하여 초 여름에는 수박향기 가득한 은어가 올라오던 강이었다. 겨울이 되면 그 강물이 꽁꽁 어는데 밤새 강물 얼어붙는 소리가 온 동네에 들릴 만큼 쩡!~ 쩡!~ 큰 소리를 냈고, 겨울 방학이면 하루 종일 그 위에서 놀았다. 그땐 추위를 잘 몰랐던 것 같다. 추위나 더위는 지극히 상대적인 느낌일 수 있다는 증거다.

노자께서는 도덕경에 이 상대주의적 생각을 곳곳에 숨겨 놓았다. 2장(아름다움과 추함)에 직접적으로 상대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각각 다른 형태로 상대주의를 이야기한다. 사실 상대주의는 매우 적절하거나 동시에 위험하다. 상대주의의 핵심은 과연 무엇인가? 간명하게 표현한다면 절대적 기준이 없다는 것인데, 나는 개인적으로 너무나 많은 절대의 기준에 얽매여 살고 있다.

노자 도덕경 81장(왕필 본의 마지막 장, 결론에 해당할 수 있는 말)에는 상대와 절대주의의 핵심인 기준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信言不美, 美言不信, 善者不辯, 辯者不善, 知者不博, 博者不知(신언불미, 미언불신, 선자불변, 변자불선, 지자불박, 박자부지)”

“믿을 수 있는 말은 아름답지(화려하다, 혹은 겉 멋만 있는) 않고, 아름다운 말은 믿을 수 없다. 선하다는 것은 변명(잘 따져서 하는 말) 하지 않고, 잘 따지는 것은 선하지 않다. 안다는 것은 넓음이 아니고, 넓다는 것은 알지 못함이다.”

이 이야기는 도덕경 전체를 통틀어 가장 불확실한 표현이 많다. ‘선함’과 ‘넓음’에 대한 기준은 너무나 다양하고 지극히 상대적이다. 하지만 노자는 그런 불확실한 기준의 문제를 간과하고 문득 이렇게 말했을까? 상당한 위험을 감수하고 이 이야기를 했음에 분명하다.

백서본에는 66장과 67장 사이에 이 이야기가 있었다. 맥락으로 본다면 왕필본의 마지막 순서보다는 조금 수긍이 간다. 66장은 물에 대한 이야기고 67장은 세 가지 보물 (一曰慈, 二曰儉, 三曰不敢爲天下先 자애로움, 검소함, 나서지 않음)에 대한 이야기인데, 81장이 66장과 67장 이야기를 보완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도덕경의 핵심주제는 ‘도’다. 맨 처음 내용(1장)은 인간의 모든 기준을 허무는 이야기로 시작된다.(道可道, 非常道) 그런데 마지막에 와서 다시 ‘선함’이니 ‘넓음’이니 하는 지극히 좁은 기준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뭔가 앞 뒤가 맞지 않은 느낌이다.

하여 나는 이런 결론에 도달한다. 도덕경 1장에 따라 ‘믿음’이나 ‘선함’, 그리고 ‘넓음’과 ‘앎’은 그렇게 말하는 순간 그 즉시 그 말의 본래 의미와 멀어지게 될 것이므로 어떤 것도, 어떤 행동도, 어떤 태도도 자신의 기준으로 함부로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결론으로 나를 몰았으니 한편으로 노자께서는 뜻을 이룬 것인가?

네덜란드 황금시기의 화가 Esaias van de Velde의 겨울풍경. 17세기 풍경인데 이미 그들은 이 때부터 발에 스케이트를 신고 있다. 오늘날 네덜란드가 왜 빙상 강국인지 이유가 있다.

Esaias van de Vel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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