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교육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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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7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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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영(신일중학교 진로진학교사)
올해도 또 떨어졌다!
우리 지역 특성화고의 진로적성 특별전형 지원자가 3년래 최저를 기록했다. 비록 한 학교의 사례지만 가장 인기 있는 고등학교였기에 특성화고에 관한 관심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는 현상을 반영하는 결과다. 특성화고와는 반대로 작년 전국 자사고 10개교의 경쟁률은 ‘6년래 최고’를 기록했다. 양극화가 심해지는 현상이 고등학교 진학에서 나타나는 모습이다. 특목고, 자사고 등의 학교를 선호하는 우리학교에서도 저런 현상은 비슷하다. 이제 특성화고는 큰 마음 먹고 용기를 내야만 도전할 수 있는 학교로 ‘특성화’되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학생들이 특성화고를 좋아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대학에 가기에 불리한 여건 때문일 것이다. 그럼 왜 대학에 가야하는가? 그건 특성화고를 포함한 고졸자 임금과 처우가 대학을 나온 사람들의 그것과 비교해 크게 불리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대졸자를 위시한 학벌에 따른 차별이 극복된 적은 없다. 오히려 그 안에서도 대학별 서열 구분이 심해지고 소위 ‘인서울’ 상위 몇 개 대학의 경쟁 우위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래서 학부모님들의 불안이 크고 그 불안은 자연스럽게 학생들에게도 전이 되고 있다.
학생들이 향해야 할 종착지가 결국 ‘대학’이라면 중학교에서의 진로 교육은 쓸모가 없다. 특수 목적고를 포함해 특성화고 진학은 어느 정도 진로의 가닥을 잡은 학생들의 진출로일 텐데 이미 설립 취지와 무관한,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특목고나 대학 가기 불리하다고 외면 받는 특성화고를 보면 중학교 진로 교육이 아무리 성공한 들 그저 성적 따라 대학과 학과를 정하는 고3 2학기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한탄이 일어난다. 중학교 때 자신의 진로 탐색에 성공해봐야 고등학교에서 계열 구분 정도만 활용할 수준이라는 점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하지만 2025 대입 서울 소재 상위15개 대학의 모집인원은 약 5만 3천 명이다. 수능 응시자 중 재학생이 약 34만 명인데 순수하게 재학생만 본다면 이는 상위 15%에 해당한다. 통상 300명 학교에서는 학급당 4등 정도의 학생인데 실제로는 그보다 팍팍하다. 3~4등 해서는 결코 쉽게 들어갈 수 없는 게 저 대학들이다. 그렇담 나머지 학생들은 어찌할 것인가? 85%에 해당하는 학생들은 원치 않아도 국영수사과를 붙들고 하루 종일 씨름해야한다. 아무리 명쾌한 진로를 확신하더라도 지식중심 분야로 진출해야한다는 억압 때문에 일과 중에 원하는 실습을 적절히 할 수 있는 고등학교는 포기해야 한다. 뒤이어 지난한 일과가 청춘을 갉아먹는다. 나라의 형편이 어려울 때야 어쩔 수 없었다 해도 이만큼 사는 나라에서 삶의 여유가 진로 교육의 영역까지 들어오지 못하는 점은 너무도 아쉬운 부분이다.
인생은 한 번 뿐이고 연습이 없다. 되돌릴 수 없는 한계로 불안이 크고 그래서 안전 지향형 선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미래를 알 수 없는 조건은 언제나 공평했다. 전쟁과 기아를 겪는 시절에도 도전과 창의가 사회와 국가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왔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수많은 활동은 사실 머나먼 항해를 위해 닻을 올리기 전에 배를 크고 튼튼하게 만드는 작업과 같다. 교실에서 배우는 내용 중 학생 스스로 만들어낸 것은 없다. 앞선 인류의 노고가 켜켜이 쌓여 낸 성과물들 중 정수만을 아이들이 전수받고 그것을 통해 미래로 내딛는 자신감을 얻는 것이다. 진로 시간에 하는 다양한 활동들, 예를 들어 자신의 적성과 흥미를 발견하고, 미래 사회의 전망을 예상하며, 자신의 장단점을 고려하여 어울리는 분야를 그려내는 작업들은 인생의 실전을 맞이하기 전 행하는 충실한 리허설이다.
기껏 크고 튼튼한 배를 만들어주고 잔잔한 근해만 항해할 거라면 그만한 허탈과 허무가 없겠다. 출발한 배가 먼 항해를 힘차게 나아가기 전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끔 부모님과 선생님 같은 어른들은 그저 격려해줄 뿐이다. 가장 안전한 항로만을 잡아주고 멀리 갈 필요가 없이 수시로 돌아오라고 강요한다면 그 배들은 좁아터진 항구 주변에서 부딪히고 치여 고통스러울 것이다. 한 번 뿐인 연습 없는 인생의 불안은 그저 먼저 살아본 사람들의 경험으로 위로받고 힘을 얻어 극복할 수밖엔 없다. 아이들의 불안은 온전히 어른들로부터 기인한다는 점을 깊이 반성하며 고입 진로 현실에 새로운 전환이 일어나길 간절히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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