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선생의 진로진학 코너 77. 완벽한 위인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12.20 09:59 의견 1

심재영(신일중학교 진로진학교사)

오래전에 한 학교 복도에서 장애나 고난을 극복한 사람들을 소개한 액자를 본 적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역경을 이긴 사람들을 소개해 주려고 그때의 기억을 더듬다가 우연히 그 액자 속 월트 디즈니가 떠올랐다. 우리가 아는 ‘디즈니랜드’의 창업자, 그 디즈니이다. 액자 속에서 묘사된, 그가 어린 시절 난독증으로 고생하였다는 설은 정확히 확인된 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가 가난한 환경 때문에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였고 생계를 위해 어릴 때부터 많은 일을 했다는 사실이다. 그 와중에도 그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상상력이 풍부했다. 그러나 초기에는 그림으로 주목받는 인물은 아니었다고 한다. 훗날 그에게 성공을 가져다준 건 그림이 아니라 다양한 실험을 통해 새로운 영역을 창조하고자 했던 도전 정신이었다.

그런 위인의 모습으로 그의 일생을 살펴보다가 그가 엄청난 저임금으로 하청을 해서 작품을 만들었으며 모든 작품을 홍보할 때 실제 작화를 하거나 감독한 사람들을 제치고 영화 제작자인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고 홍보한 점들을 알게 되었다. 미키 마우스를 비롯한 디즈니의 마스코트 캐릭터들을 만들어낸 것도 친구인 어브 아이웍스인 점도 새롭게 안 사실이었다. 아이웍스와의 갈등은 마치 저 발명왕 에디슨이 한 때 직원이었던 테슬라와 벌인 갈등과 비슷했고,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의 관계와 비슷한 경우였다. 만화 캐릭터는 그것을 창조한 사람의 얼굴과 닮는다고, 아이웍스의 사진을 보면 자연스레 미키 마우스를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둘은 묘하게 닮아있다.

월트 디즈니의 충격으로 인해 위인들의 익히 알려진 업적이나 선한 모습 외에 다른 면을 들여다보았다. ‘진실의 가장 큰 적은 거짓이 아니라 신화’라는 존 F 케네디의 말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그다음 만난 건 인도의 비폭력 저항을 상징하는 마하트마 간디이다. 그가 영국의 공장제 수공업에 대항해서 벌인 ‘물레 투쟁’이나 소금세 개정에 반대해서 벌인 ‘소금 행진 시위’와 같은 독립운동은 숭고한 비폭력 저항의 모습으로 인류에 각인되어 있다. 훌륭한 삶을 산 건 분명하다.

그러나 그런 위대한 영웅적 서사의 뒷모습에서도 이해가 안 가는 면들이 다소 나타났다. 그가 생전에 흑인을 비하하는 인종 차별주의자였고 카스트 신분제를 옹호하는 우를 범했다는 점. 그 점을 비난하고 최근에 아프리카 가나 대학교 교내에 세워진 그의 동상이 철거되는 지경에 이른 점은 주목할 만하다. 게다가 성욕을 극복하겠다는 맹세 때문에 어린 소녀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던 점에서는 오늘날의 기준을 넘어 경악할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서양의 회춘법을 신봉했다고 한들 받아들여지기 힘든 모습이다. 아이들에게도 말할 수 없는 어두운 면이다.

간디가 비폭력 저항을 했던 대상국인 영국에도 당시에 국민들의 정신적 지주였고, 훗날 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추앙하는 윈스턴 처칠이란 위인이 있었다. 그가 영민한 판단력과 과감한 돌파력, 그리고 탁월한 지도력으로 2차 세계대전 중 영국을 위기에서 구하고 전쟁의 승자가 된 것은 분명한 업적이라 할 수 있겠다. 특유의 유머와 함께 뛰어난 연설로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었으며 그런 각오를 손가락 아이콘 ‘V’로 그려낸 일은 멋진 영웅의 서사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런 명성 뒤에 그늘진 어두운 면이 그에게도 없을 리가 없었다. 일단 저 위의 간디가 벌인 독립운동을 처칠은 당연히 못마땅하게 여겼다. “간디 씨를 보니 놀랍고, 역겹다. 탁발승 모습으로 총독 관저의 계단 위를 반나체로 올라가는 꼴이라니….” 그는 간디를 입버릇처럼 ‘반나체의 거렁뱅이’, ‘힌두 무솔리니’로 표현하며 증오했다. 피지배국 인도의 입장에서 보면 처칠은 식민제국의 편견 가득한 정치인일 뿐이다. 영화 ‘다키스트 아워’에도 소개된 바 있는데 그는 전쟁 당시 고령의 총리직을 수행하면서 고도 비만인데도 골초에다 음주벽까지 있었다. 아침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으며 국왕의 면전에서도 낮술을 들이켰다. 게다가 종일 시가를 놓지 않았다. 엄청난 대식가로도 유명했다. 귀찮으면 침실에서 식사를 하기도 했다. 영화에서처럼 성격은 거칠고, 고압적이고, 무례했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없고 변덕스럽고, 우울하기도 했다. 옆에 있으면 틀림없이 부담스러울 캐릭터임이 분명하다.

미국 남북전쟁의 영웅이자 노예해방의 아버지인 에이브러햄 링컨은 어떤가. 그가 흑인을 노예로부터 해방하고 미국의 분열을 통합한 진정한 연방정부를 구축한 역사는 적어도 미국인들에게서만큼은 추앙되고 존중할만한 사실이다. 영웅 서사의 완결판이랄까, 그도 종국엔 암살을 당하고 미국인들의 기억에 영원히 남았다. 어렸을 때부터 배운 그의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연설은 또 어떤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의 개념을 우리에게 심어준 것도 그가 아니던가. 하지만 그가 전쟁 중에도 헌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노예제는 각 주의 자치권에 맡겨야 하고 연방정부가 이를 침해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것에 기본적으로 동의했다는 점은 새삼스럽다. 그는 전쟁의 목적이 어디까지나 연합을 지키기 위함이라는 것을 몇 번이나 강조하면서 노예해방은 제한적이고, 합법적으로 미국연합을 위해서 실시해야 한다고 보았다. 노예해방을 주장하면서 한편으로는 확실한 노예해방을 주장하지 않는 이중적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물론 저런 태도는 당시의 여러 정파적 혼란을 수습하기 위한 정무적(?) 판단이라고 보는 게 타당할지도 모른다.

스릴러 영화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이 그의 실험 정신과 열정으로 존경을 받으면서도 당시 ‘새’에 출연시켜 모든 연기를 지도한 신인 여배우 티피 헤드런을 지속적으로 성추행했다는 폭로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처럼 위인들의 그림자는 차고 넘친다. 종교 개혁의 마르틴 루터가 사실은 반 유대주의자이자 당시 토마스 뮌처 등이 일으킨 농민 봉기를 비판한 사람이고 자신의 주장에 고집불통에다 권위주의적이며 분노를 잘하는 인물이었다는 점도, 이케아를 설립한 잉그바르 캄프라드가 근면 성실의 상징이지만 기업 경영에서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저임금의 노동착취를 하며 노조에 극렬히 반대한 사실에서도, 끝으로 게티 미술관을 무료로 운영하며 예술을 향유하는 기쁨을 시민 사회와 공유하고자 했던 진 폴 게티(게티 이미지의 그 게티)가 유괴당한 손자에게조차 돈을 아끼는 자린고비의 극한으로 결국 구출한 손자를 폐인으로 만들어버린 일화 등에서 우리는 위대한 사람들의 이면을 만나고 당혹해한다. 그러다 이내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세상이라고.

곧 있으면 많은 어린이가 산타클로스를 기다릴 시기이다. 지금은 산타클로스를 믿는 아이의 연령이 얼마나 낮아졌을지 궁금하다. 저 위의 위인들이 갖고 있는 그림자 역시 세상에 얼마나 노출되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정보 과잉의 시대. 그 속의 아이들은 예전보다는 세상의 진실을 빨리 알아챌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본받을 만한 위인도, 따를 만한 멘토도 더 이상 찾기 어려운 세상이다. 과연 산타클로스 실종의 시대이다.

하지만 진실을 안다는 게 그래서 본받을 사람도, 잘난 사람도 없다는 무력감으로 이어질 필요는 없다고 본다. 오히려 현실의 인간이 누구나 할 것 없이 완벽할 수 없다는 겸손함과 자기 성찰의 근거로 삼을 일이다. 전적으로 선한 사람도, 전적으로 악한 사람도 없다. 우리가 추구하는 사람은 수많은 모순과 번뇌, 그리고 좌절과 실패 속에서도 끊임없이 개선하며 올바름을 추구하려는 인물일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런 사람을 전적으로 선하지 못하다고, 다 거기서 거기라고 비난하기에 바쁘다. 절대적 선을 인격화하려는 모순과 지속적으로 커가는 양비론 속에 가장 허물이 큰 어떤 사람이 숨기 좋은 곳이 생긴다. 나쁜 놈이 가장 하기 쉬운 말이 나만 나쁘냐는 주장이기에 절대적으로 순결하고, 순수하고, 깨끗한 어떤 인물을 찾는 노력이 그만 잦아들기를 바라며 인물 탐색 명과 암의 글을 맺는다.

참, 인물들의 어두운 면을 찾다 보니 확실히 업적을 찾는 것보다 재미있었다. 현실과 같다. 남 욕할 때가 즐겁듯 역사적 인물의 부정적인 면을 찾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못났다, 우리의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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