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주도의 기초 개념 교육은 보수적인가?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12.05 09:04 의견 0

김준식(진주고등학교 교사)

1. 기초, 개념 교육

현재 내가 가르치고 있는 고등학교 2학년 아이들과 사회 문화 수업을 하다 보면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단어와 문맥에 대한 이해 수준이 정상적인 수업 진행이 어려울 때가 있다. 이럴 때는 정해진 수업 진도를 무시하고 천천히 그리고 아주 기초적인 개념부터 순차적으로 아이들에게 차근차근 설명한다. 1학기 초부터 시도한 이런 방법을 의외로 아이들은 좋아한다.

어차피 사회 문화라는 교과가 고 1 과정의 통합 사회는 물론 한국사, 세계사와 병렬적으로 연결되고 심지어 국어, 영어, 통합 과학의 영역까지 연결되기도 하는데, 이런 다양한 지식의 범위에서 사용되는 개념들의 이해가 지금의 고 2 아이들에게는 조금 벅차 보인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이들이 ‘코로나19’로 인한 자가 학습 세대이기 때문이다. 현재 고2 아이들이 중 1이었을 때가 바로 2020년(코로나로 집에서 자가학습이 시작된 해)이었으니 중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에게 초등학교와는 상대적으로 넓어진 교과 범위와 다양한 개념들을 교사와 함께 배울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그 시기를 놓친 아이들에게 사회 교과에서 필수적인 개념의 이해와 그 개념의 연결이 원활하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비록 짧은 자가학습시기를 보냈지만 그 상흔은 너무나 뚜렷하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아주 기초적인 개념부터 확인하고 재인식하는, 상대적으로 느린 교사 주도적 수업을 진행하게 된 것이다.

2. 교육관의 차이

그런데 사실 이 문제, 즉 교사가 주도적으로 실행하는 기초, 개념 학습 문제는 교육에 대한 진보와 보수적 입장이 첨예하게 맞서는 부분이기도 하다. 교육 자체가 본래 보수적이라고 주장하는 보수적 교육관에 의하면 교육은 기존의 가치와 사회 체계에 아이들을 원활하게 편입시키는 과정이라는 입장이기 때문에 이미 내부적으로 용인되고 완성된 경험과 지식(이를 테면 기초, 개념 문제)과 규율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서 아이들을 그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하게 하는 것이 교육의 목표라고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교사가 학습의 주도자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맥락에서 보수적 교육관은 아이들의 지식 경쟁력을 중요시한다. 그 지식 경쟁력의 기초가 바로 교사 주도의 기초, 개념 교육이다. 그래서 이들은 교사 주도의 기초, 개념 교육이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알고 싶어 한다. 그 방법이 평가를 통해 서열을 정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방법이 일제고사다.) 개인의 성적 서열은 당연한 것이고 학교 간 서열은 물론 지역 내 서열 그리고 전국 서열까지 일목요연하게 정해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오늘날 서울 집중의 원인이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러한 서열을 개인의 능력과 일치시켜 더 좋은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학생을 최고의 능력으로 상정한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진학하여 거기서 다시 치열한 경쟁을 통해 사회를 이끄는 핵심 리더가 되어야 최고의 능력자가 되는 것이다. 이런 치열한 경쟁 과정에도 불구하고 가정, 학교, 사회의 질서와 규범을 잘 지키는 사람이 되기를 요구받는데 뭔가 대단히 부조리한 느낌이 든다. 이런 서열 중심 구조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절대 다수의 열등생을 양산한다는 점이다. 또 치열한 경쟁을 뚫고 소수의 리더로 성장한 그들에게 준법을 요구하지만 이미 그들은 자의식이 충만한 상황이라 역설적으로 가장 질서를 잘 지키지 않는 사람이나 집단이 되는 약점도 있다.

이와는 달리 진보적 교육관(존 듀이로 대표되는)에서는 교육의 역할을 아이들이 가진 잠재적 역량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과정으로 본다.("Progressive Education - How Children Learn". ThoughtCo. 2018-06-29) 잠재적 역량을 이끌어내기 위한 교사의 역할은 보수적 교육관에서처럼 학습의 직접적인 주도자가 아닌 학습의 관리자 혹은 거시적 촉진자의 역할(“교사의 논리적·체계적 설명보다는 아동 스스로 주체가 되어 자발적 학습으로 지식과 태도를 종합적으로 획득하는 방법을 장려한다.” John Dewey, 『My pedagogical creed』. School Journal 54th. 77–80쪽.)이 되어야 하며 대부분의 학습 활동은 아이들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그 능력을 키우는데 중점을 둔다.

진보적 교육관에서 비중을 두는 가치는 ‘자율성’에 기초한 협동과 협력, ‘창의성’에 기초한 공동체 정신, 그리고 건강한 ‘비판’적 태도와 정신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소수의 리더가 되기보다는 협업과 협력으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능력, 다른 사람들의 삶, 나아가 사회 전체에 봉사할 수 있는 태도가 길러지기를 바란다. 하지만 자율성이 방임으로 발전할 개연성이 높고, 동시에 세대 간 지식의 전수와 개인의 역량을 성장시키는 교육의 본질적인 가치와 갈등하는 경향도 있다.

3. 논의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나의 기초 개념 교육이 보수적인가 또는 진보적인가를 고민해 본다. 태도의 측면에서 본다면 미세하지만 보수적일 수 있다. 아이들이 자율 학습을 통해 개념을 익히도록 교사가 촉진적인 역할을 해야 하지만 일단 수업의 진행 일정과 계획된 수업 과정의 압박에 따라 보수적으로 교사 중심 수업을 진행하여야 한다. 그렇다고 이것을 완전히 보수적이라고 규정하기에는 곤란한 부분이 있다. 기초 개념 학습을 진행하는 것은 진보적 방향에 따른 아이들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자율성을 키우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전제 조건이기 때문이다.

결국 보수나 진보의 구분은 이론적 성찬盛饌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실제로 교육에서 보수와 진보는 교육현장에서 항상 교차하고 있고 또 동시 진행형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드시 구분해야 할 필요성을 가진다 해도 정도의 차이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또한 미세하고 동시에 혼재하는 것이어서 각각을 구분해 내기가 만만하지 않을 것이다.

보수와 진보의 구분은 정치적 관념 체계에 종속하기 때문에 파생되는 문제도 언제나 정치적으로 분석하려 들지만 교육은 정치가 아니다. 따라서 교실 현장에서 아이들과 마주하는 교사에게 보수와 진보는 언제나 완전히 분리될 수 없는 동일 실체 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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