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우 퍼포먼스 “여름 나기” 2017년 7월 작업실​​​​


요즘 역대급 더위가 지구촌을 달구고 있다. 얼마 전 물 폭탄이 할퀴고 간 상처가 미처 아물기 전이다. 그보다 앞서는 마른장마가 농부들의 가슴을 태웠었다. 도대체 우리 지구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날이 갈수록 우리 미래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미국발 관세전쟁이 나라 살림을 위협하고 내적으로는 끝없는 정쟁으로 국민의 시름이 깊어 가고 있다. 지구의 자연도 국정의 운영도 하루빨리 질서를 회복해야 한다.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는 긍정의 힘과 문화적 역량으로 김구 선생이 꿈꾸던 문화국가를 건설해야 한다.

한국 사람들의 재능, 특히 예술적 능력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한일 문화개방을 계기로 해외로 진출한 ‘겨울연가’를 필두로 우리의 대중문화는 아시아를 넘어 지구촌 곳곳으로 퍼져갔다. 심지어 인도의 벽지마을 어린 학생들까지 자신이 방탄소년단의 ‘아미’라며 우리를 반긴다. 이제는 “K”자가 앞에 붙은 노래, 음식, 성형, 심지어 방역까지 그 대열에 섰다. 이렇듯 여러 방면에서 최고의 찬사를 받는 것은 우리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일이고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이것은 내부적으로 ‘보수’와 ‘진보’로 갈려 비생산적 싸움만 일삼는 고질적 병폐와는 매우 다른 면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2024년 4월 19일 인천공항 ‘M’카운터에서 파리행 항공권을 받고 막 나서는데 한 외국인이 반갑게 인사를 하며 “혹시 일본 사람이냐?”고 물었다. 그래서 “아뇨 한국 사람인데요.”라고 대답하자 그녀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해 왔다. 초면에 흔치 않은 일이라 살짝 경계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그랬더니 이번엔 사탕을 권하며 맛있으니 먹어보라고 했다. 엉거주춤하는 사이 사탕 하나가 내 손에 들어왔다. 그것은 사탕이 아니라 말랑말랑한 국산 젤리였다. 상대가 너무 공격적으로 접근하는 바람에 잠시 멈칫하다가 선의로 받아들이고 젤리를 입 안에 넣었다. 그것을 먹는 사이 그녀는 주체할 수 없는 듯 자신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그녀는 호주 퀸즐랜드 출신 48세 주부 ‘뮤릭’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꽃다운 스무 살 무렵 결혼하여 오직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열심히 살아왔는데 어느날 남편이 다른 여자 곁으로 가고 아들마저 품을 벗어났다. 문득 자신을 돌아보니 거울 속엔 ‘세파에 찌든 중년 여성’이 볼 품 없이 서 있었다. 그 순간 “아! 내가 인생을 헛살았구나!”라고 회한이 밀려오더란다.

“어차피 싫다고 떠난 사람 생각해봐야 마음만 쓰릴 뿐 무슨 소용이 있겠나!” 싶어 잊기로 했다고 했다. 그리고 큰맘 먹고 생전 처음 자신을 위해 돈을 써야겠다고 결심하고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고 했다. 그녀는 2개월 일정으로 한국에서 ‘플라스틱 서저리(성형수술)’를 받기로 한 것이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박피, 리프팅, 턱 교정, 코 수술, 눈주름 수술, 가슴 등 대대적 시술을 10시간 이상 받았다고 했다. 그녀는 “수술대에서 내려온 직후 나흘 동안은 내 일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그 후 하루가 다르게 빨리 회복되었다.”라고 당시의 상황을 이야기하며 이마와 귀 뒷부분에 남아있는 수술의 흔적을 보여 주었다.

“이 흔적들은 곧 사라질 것이다. 한국 의사들의 실력은 정말 대단하다. 이렇게 감쪽같이 예뻐질 줄 누가 알았겠나!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라며 놀랍게 변신한 자기 모습에 취해 얼굴을 좌우로 번갈아 내밀며 환희에 젖어 있었다. 나도 덩달아 “노 페인 노 게인(no pain, no gain) 이라더니 정말 잘하셨네요. 축하합니다!”라고 거들어 주었다.

그녀는 신이 나서 수술 직후부터 회복 과정의 사진들을 일일이 보여 주었다. 그리고는 “스물여덜 살 아들이 ”출국장에서 출입국 심사관이 몰라보면 어쩔 거냐?”라고 놀리더란다. 그녀는 여권 속 사진(8년 전 촬영)보다 10년쯤 젊어 보였다. “견적이 꽤 많이 나왔겠다.”라고 했더니 수술비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투로 ”내 인생 처음으로 돈 한 번 제대로 썼다.”라며 엄지척을 해 보였다. 귀국길에 오른 그녀는 한국의 성형술이 세계 최고라며 거듭 만족스러움을 표했다.

그녀는 아마도 자신을 보고 어리둥절할 가족 친지 이웃들을 생각하며 비행 시간이 유난히 길게 느껴질 것이다.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 스스로 놀랄 만큼 예뻐진 자기 모습을 뽐내고 싶을 것이다. 그 마음 알기에 나도 박수를 보내며 아직도 흥분을 누르지 못한 채 귀국하는 ‘뮤릭’의 마음속 한국은 어떤 나라일까? 생각해 본다.

공항에서 ‘뮤릭’씨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