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승민의 교육 이야기, “차쌤과 전 안맞는 것 같아요”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11.21 06:41 | 최종 수정 2024.12.12 08:32 의견 0

수업 때문에 아이와 갈등을 일으킨 경우는 요몇년 사이 거의 없었습니다. 물론 아이들의 태도와 관계 때문에 골머리를 앓은 적은 많았지만 적어도 수업은 아니었죠. 그렇다고 수업시간이 호락호락하진 않습니다.

가르치고 배우는 것은 교사와 아이간에 작은 전투와 같거든요.

밀고 당기는 팽팽한 긴장이 생기기도 하고, 협력으로 성장과 발전이 되기도 하죠. 이런 사이클을 매번 반복하지만 차쌤과 아이들 사이에 서로에 대한 신뢰와 믿음은 바닥에 깔고 합니다.

올해는 옆반과 음악, 실과 그리고 체육, 미술을 교환해서 했습니다. 차쌤이 체육과 미술을 맡았죠.

사단은 미술시간에 터졌습니다.

옆반 지연이는 미술에 소질이 있습니다. 미술대회에서도 몇 번 수상하고 아이 스스로도 미술을 잘하고 그림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죠.

1학기는 주로 학교 주변을 관찰하고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구상 미술을 했습니다. 인상적인 것을 그리고 그 이유를 찾고, 좀 더 만족스럽게 그리기 위해 피드백을 받고 다음시간에 또 그려보는 활동을 했습니다.

다양한 방법을 쓰지만 핵심은 자신이 무엇을 보고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중점을 둡니다

지연이는 차쌤의 이런 얼렁뚱땅한 미술수업에 점점 흥미를 잃어갔습니다.

자기는 잘그렸다고 생각하는데 차쌤은 왜 이걸 그렸는지 그 이유를 계속 물었기 때문입니다.

차쌤의 의도는 지연이의 의도를 물은 것인데, 지연이는 자기 그림을 비난한다고 여겼습니다.

“지연아 매번 같은 느낌의 그림을 그리는구나. 나무는 항상 여기에, 풀은 항상 여기에 좀 더 다른 느낌으로 표현하는 건 어떠니?”

차쌤의 이런 피드백은 지연이에겐 자기 그림의 무시로 다가왔습니다. 미술 수업을 하고 나면 지연이는 담임 선생님께 속상함을 하소연했고, 그건 다시 차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차쌤도 고민을 합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가 없던 것은 아니었기에 계속 하다보면 나아질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만큼 지연의 그림 실력은 좋았고 단지 시선과 관점을 좀 더 다양하게 표현해보길 권했을 뿐입니다.

1학기는 그렇게 끝나고 2학기들어 지연이는 미술 시간에 잘 하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곳에서 불똥이 튀었습니다. 미술을 어려워하던 남자아이들도 집중해서 하기 시작하고 지연이 주변의 다른 아이도 괄목할 만한 성장이 보입니다.

차쌤이 보는 성장의 관점은 완성도가 아닌 새로움에 대한 표현과 도전 그리고 자기 그림에 대한 확신입니다. “그림에는 답이 없어. 잘 그린 그림이 사진처럼 그린 것이라면 그림을 그릴 이유가 없어. 사진을 찍으면 되니까. 무엇이 아름다웠는지, 무엇이 나의 눈을 사로잡았는지 그리는 것이 중요해. 그릴 땐 좀 더 크게 그린다면 표현하려고 하면 느낌이 새로울거야”

그러다 3주 전에 지연이와 차쌤은 수업시간에 언쟁이 있었습니다.

“차쌤은 자유롭게 그리라고 하지만 전 도대체 모르겠어요. 뭘 어떻게 그리라고 자세히 말씀도 안해주시고 자유롭게 그리라고 하고, 그려서 보여드리면 자꾸 지적하시고, 전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냐구요”

피드백을 하던 도중 급발진한 지연이의 모습을 보면서 당황했습니다. 불손한 태도의 지연이를 보고 어이가 없었지만, 최대한 알아들을 수 있도록 찬찬히 설명했습니다. 핵심은 시선을 좀 바꿔보자는 것이었죠.

“그림 실력은 지연이가 차쌤보다 훨씬 좋아. 여기서 실력으로 보면 지연이보다 나은 아이는 없어. 하지만 매번 같은 그림만 그리는 지연이에게 구성과 배치를 바꿔보라는 차쌤의 조언이 너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것이니?”

수업을 마치고 지연이는 담임을 찾아가 펑펑 울면서 차쌤이 자기만 미워한다고 하소연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속도 상하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퇴근을 하고서도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다음날 체육시간이 되어 살짝 지연이를 벤치로 불러 어제의 일에 대해 차쌤이 먼저 사과했습니다.

“차쌤은 지연이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싶진 않아. 그렇게 한다고 해서 차쌤에게 이득은 없어. 어제도 말했듯 차쌤은 지연이의 성장에 도움을 주고 싶은거야. 하지만 차쌤의 의도와 달리 지연이가 마음이 상했다고 하니 그건 사과할게. 선생님의 사과를 받아주겠니?”

지연이는 방긋이 웃으며 받아줬다. 그리곤 차쌤도 다시 의도를 말해줬습니다.

“지연이의 실력은 최고야. 미술을 평생 할지 안할지 그건 모르지만 적어도 미술 수업시간엔 평소에 안하던 것도 해보고 실수도 해보고 실패도 해보는거야. 그러다보면 지연이의 실력은 진짜가 될거야”

이렇게 마무리 되는 줄 알았다. 그 이후 지연이는 담임에게 하소연하지 않았습니다.

2학기엔 구상 미술을 끝내고 추상 미술로 들어가는 첫 번째 활동으로 [도형으로 세상 표현하기]를 했습니다.

이후 빨대로 불어 표현하는 블로우. 잡지를 찢어 표현하는 꼴라주. 꼴라주와 연계한 모자이크, 물감없애기 프로젝트인 데칼코마니, 그리고 마지막 대미의 장식인 마블링까지 준비된 추상 미술을 하다보면 지연이도 자연스럽게 차쌤의 수업에 녹아들어갈 것이라 여겼습니다.

수업은 시작되었습니다. 추상미술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하고 도형으로 세상표현하기를 합니다. 아이들의 작품을 보며 이것 저것 자극을 주는 활동을 수업시간에 하는데 일부러 지연이에겐 시간을 줬습니다. 얼핏보니 주제와 다른 그림을 그립니다. 그러려니 하고 둡니다.

“잠시 붓을 놓고 친구들의 그림을 살펴보세요. 대신 평가는 하지 말고, 느낌을 보세요. 만약 참고 할 것이 있다면 옮겨와도 됩니다. 배낀 것 아니에요”

아이들은 한바퀴를 돌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지연이는 자기 그림을 찢어버리고 새 도화지를 가져갑니다.

‘왜 저러지?’

그러다 쉬는 시간이 되고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후 칠판엔 그림 한 장이 붙어있습니다.

거의 낙서 수준으로 휘 갈긴 그림.

지연이의 그림입니다.

“지연이 다 그린거니?”

“네”

태연하게 자기 그림도구를 정리하는 지연이를 연구실로 불렀습니다.

“오늘 지연이에게 아무런 피드백도 주지 않았는데 왜 저런 그림을 낸거지?”

“선생님에 오늘 수업 시간에 교사가 해서는 안되는 말을 했니?”

“아니요”

“지연이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을 했니?”

“아니요”

“그럼 왜 저런 그림을 냈니?”

“모르겠어요. 그냥 저랑 차쌤은 안맞는 것 같아요”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차쌤의 목소리는 연구실에 들어왔을 때부터 최대한 낮은 톤을 유지합니다. 이 순간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차쌤과 지연이가 안맞는 이유가 무엇이니?”

“그것도 모르겠어요”

“이유를 말해줘야 차쌤도 설명을 하던 변명을 하던 할 것 아니니?”

이유를 물어도 모르겠다로 일관합니다.

“차쌤은 오늘 매우 당황스럽고 슬프다”

잠시 침묵이 있은 후 오늘의 상황에 대해 지연이에게 설명했습니다.

마침 물이 담겨있는 물컵이 있었습니다.

물컵을 기울여 책상위에 붓습니다.

“물컵의 물은 차쌤과 지연이의 신뢰를 뜻하는 거야. 물컵은 그 신뢰를 지키는 서로의 노력이지. 어느 한쪽이든 신뢰를 무너트리면 물은 바닥에 쏟아져. 물이 출렁거릴 수는 있어도 바닥에 쏟아지면 다시 담을 수 없단다. 오늘이 그런 상황이야. 지연이는 차쌤의 수업이 형편없음을 공개적으로 선언한거야. 이제 차쌤은 어떻게 해야 되겠니?”

담담하게 말해줍니다. 지연이는 흔들립니다. 울음을 참고 듣습니다. 그러나 아무말도 하지 못합니다.

“마음을 추스르고 교실로 들어오거라. 그리고 더 이상 미술 교환 수업은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오늘이 마지막 수업이 되겠구나”

차쌤이 먼저 교실에 갔고, 지연이는 잠시후 자리에 앉습니다. 교실에 아이들의 작품이 빼곡하게 칠판에 붙었습니다. 각기 자기만의 형태로 세상을 표현한 그림 속에 지연이의 휘갈긴 그림이 섬처럼 있습니다.

“일년동안 함께 하고 싶었지만, 사정이 생겨 오늘로 미술 수업은 원래대로 돌아갑니다. 그동안 수고했어요.”

담담하게 수업을 정리하고 돌아 나오는데 몇몇의 아이들이 와서 인사합니다.

“차쌤 그동안 미술 가르쳐 주셔서 고마웠습니다.”

천둥벌거숭이 같던 남학생들이 우루루 몰려와 인사합니다.

수업을 마치고 서로 반에 돌아가기전 옆반 선생님께 미리 귀뜸을 해뒀습니다. 담임을 만나자 지연이는 대성통곡을 합니다. 모른척하고 돌아갑니다.

한참을 지나고 지연이는 차쌤반 교실을 문을 두드립니다.

“선생님 제가 잘못했어요”

“괜찮다. 괜찮아”

지연이는 눈물 범벅이 되어 왔습니다.

“차쌤이 친구들 앞에 제 그림을 평가하는 것이 괴로웠어요”

“그 이유는 이미 다 이야기하고 설명했구나. 하지만 그렇다고 다시 돌릴 순 없단다. 지연이는 이제 아이가 아니야. 우린 서로 존중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오해와 갈등은 생길 수 있어. 하지만 해야 할 말과 행동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말과 행동이 있어. 오늘은 그 선을 넘은 것이고 그건 돌이킬 수 없는 거야. 망한거지. 망했다고 실망하진 마. 이것도 과정이니까. 포기 하지 않는다면 또다른 기회가 올거야”

그렇게 지연이를 보냈다. 그리고 옆반 담임과 마주 않았다.

지연이는 자기 담임과 차쌤이 지연이에 대해 평소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는 다는 것을 모른다.

“일년간 수업을 책임져야 하는데 이렇게 되어서 미안하군요”

“아니에요. 제가 좀더 세심히 살폈어야 하는데 제가 더 죄송하죠”

이 건이 부모와 연결되지 않아서 그나마 이 정도로 끝났습니다.

“지연이는 부모에게 이 사실을 말하지 않을거에요. 적어도 이게 잘못된 행동이란 것 쯤은 아니까요”

담임은 지연이가 자신에게 했던 말들을 정리해서 들려줬다. 요약해보면 차쌤에게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지만 담임에겐 다 털어놓는데 그것은 또다른 이유가 있었다. 수업의 상황을 모르는 담임에게 자기가 유리한 대로 이야기 했던 것이다.

“지연이가 마지막에 한 말이 대박이었어요. 그래도 차쌤은 저와 안맞아요”

표면적은 혼란과 갈등 그리고 봉합은 되었습니다.

“다음주엔 우리 회식합니다.”

“좋아요”

이번 건으로 동학년 회식은 다음주에 예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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