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이응우의 자연미술 이야기, 이란 예술유목 2016 (6)

테헤란 입성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11.05 06:48 | 최종 수정 2024.11.05 09:09 의견 2

정오 예정이었으나 오후 1시 반으로 지연된 테헤란 입성.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경관은 도시 뒤편의 하얗게 눈 덮인 산이었다. 저 산을 넘으면 전혀 기후가 다른 숲과 들이 있고 그 끝에 카스피해가 있는 것이다. 시내에서의 이동시간이 또 한 시간, 결국 숙소인 내긴호텔(Negin Hotel)에서 3시경 점심을 먹었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해그늘에 테헤란의 야경과 가까운 곳에 우리의 아르코 센 데처럼 규모 있는 전시장이 있어서 갔으나 마침 이슬람 혁명 다큐 사진전이었다. 우리가 민주화를 위해 암중모색할 때 이란은 1979년 이슬람교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당시 파리에 거주하던 호메이니옹을 정신적 지주로 친미 자본주의 성향의 팔레비 왕조를 무너트리고 이슬람 원리주의에 입각한 이슬람교 혁명에 성공한 것이다.

폐쇄된 미국대사관


서울에 ‘테헤란로’, 테헤란에 ‘서울로’가 있는 것을 보면 혁명 이전까지 한-이란 관계는 좋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란은 정부 위에 종교가 군림함으로써 민생의 문제보다는 종교적 이념이 우선하는 국가경영으로 인해 경제적으로는 이전보다 후퇴한 실정이라고 한다. 여행 중 눈으로 확인하기에도 도로망이나 산업시설의 확충보다 모스크 신축이 더 눈에 띄었다.

테헤란의 아트센터에서 이슬람교 혁명의 다큐 전을 보려니 자연 흥미가 줄었는데, 같이 관람하던 이란의 원로작가가 귓속말로 “이거 다 쓰레기입니다.”라고 일갈했다. 순간 속이 후련하면서도 이들의 사회적 갈등이 고수위에 이르렀다는 생각에 다시 씁쓸해졌다. 더 정확히 말하면 혁명 이전과 이후를 비교하면 민주주의를 구가하다가 갑자기 종교 식민지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더욱 가혹하게 표현하면 르네상스를 거슬러서 중세로 다시 돌아간 것이다.

오전에 국립 테헤란 박물관과 이슬람 박물관을 차례로 관람하였다. 역사박물관의 특징이 그러하듯 구석기 시대의 유물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내가 특별히 관심 두는 부분은 오랜 역사를 통해 다른 문화권과 어떤 교류들이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그 흔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하는 부분이다. 또한 문화적 다양성과 독창성에 관한 것이다. 역시 페르시아의 고대 유물 중에도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풍의 유물이 있는가 하면 난데없이 나치의 ‘철 십자 문양’이 도자기 파편에 나타나기도 하고 그림도 있고 부조 형식의 도자기는 고구려 고분의 사신도를 빼어 닮은 것도 있고, ‘공제 윤두서’의 자화상과 비슷한 그림 앞에 서기도 했다.

테헤란 역사박물관 초상화. 유채화 보다는 동양적 기법과 유사한 느낌이며, 조선의 공제 윤두서의 초상화와 오버랩되었다.

이란의 이슬람박물관에서 특별히 언급하고 싶은 것은 약탈 문화재 반환에 관한 것이다. 박물관 내에 전시되고 있는 세계 최초의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함무라비법전이 새겨진 돌은 진품이 아닌 모조품이었다. 원래의 발굴 장소는 이란과 이라크의 국경지방으로 걸프만의 끝에서 내륙평원을 지나 산악지역이 시작하는 접경이라고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역사적 유물은 파리의 루브르가 소장하고 있다. 아마도 어렵게 허락을 받아 캐스팅했을 것이다. 물건의 주인이 훔쳐 간 도둑에게 가서 구걸하는 형국이 되는 것이다. 언젠가 약탈문화재 반환에 관한 국제적 합의가 이루어져 인류의 문화재가 반드시 원주인의 품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함부라비 법전, 박물관 전시본은 진품이 아니라 모조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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