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승민(거창 초등학교 교사)
교사의 브랜드란 말을 들으면 이질감이 느껴진다. 나 역시 최고의 영화수업전문가의 브랜드를 가지고 있지만 브랜드는 내가 추구한 결과는 아니다. 그것은 과정속에서 얻은 결과물이다.
브랜드보다 더 깊이 추구해야 할 것은 교사의 서사다. 교사가 되고 나서 교육, 수업 등을 생각할 때 늘 근원적 고민이 있었다. 그것은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와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이다. 무수히 변천한 교육과정과 다양한 교수학습이론과 방법은 ‘무엇을’과 ‘어떻게’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간과한 것이 있다. 수업은 교사와 아이의 상호작용에서 비롯된다. 상호작용이 아이의 성장으로 연결되는 과정은 간단하지 않다. 기계적으로 묻고 답한다고 해서 상호작용이 긍정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 속엔 신뢰와 믿음이 있어야 한다. 아이가 교사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가져야 더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아이는 미성숙하다. 미성숙하다는 것은 자기중심성이 강하단 뜻이고, 옳은 것보다는 익숙한 것, 해야 할 것보다는 재미있는 것에 관심을 더 기울인다는 뜻이다. 아이가 보기에 교사는 매력이 있어야 한다. 같은 것을 가르쳐도 매력이 넘치는 교사가 전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매력은 단순히 외적인 요소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외모와 젊음 등 외적인 것이 처음엔 영향을 주지만, 그것으로 매력을 설명할 수 없다. 교사와 아이의 만남은 최소한 일 년을 지속하기에 외적인 것 이외에 또 다른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교사의 매력은 또 무엇이 있을까?
실력은 매력 안에 포함된다. 가르치는 실력은 딱히 정의하기 어렵다. 정의하기 어렵기에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실력을 계측하거나 수치화 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교사의 매력엔 또 무엇이 있는가? 열정이 있어야 한다. 가르치고 배우는 것은 기계적인 전달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의 상호작용이 전제된다고 했다. 열정은 가르치고 배우는 교사와 아이 모두에게 필요하지만, 먼저 갖춰야 할 것은 교사다. 교사가 열정을 가지고 가르치면 좋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의무로서 열정을 강요한다면 효과가 없다. 교사는 가르치는 그 자체에 열정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기나긴 시간 동안, 특히 나이가 들면서 젊음과 패기를 바탕으로 한 열정은 사그라진다.
나이가 든 경력교사라고 해서 열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젊음과 패기와 다른 또 다른 무언가의 열정이 존재한다. 그것은 무엇일까? 교사의 매력의 가장 큰 핵심은 바로 교사 자신의 서사(narrative, 敍事)다. 교사의 서사는 교사의 삶이 농축되어 담겨있다. 그것이 아이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가르칠 내용을 잘 전달하는 수동적이고 기계적인 역할이 아니라 가르칠 내용을 이미 교사의 삶에서 농축되고 응축되어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삶의 언어로 구현되는 것이 교사의 서사다. 같은 내용이라도 서사가 있는 교사와 그렇지 않은 교사는 아이가 받아들이는 데 차이가 있다.
주변의 편견 속에서 시작했지만 나는 누구보다 먼저 영화가 가진 가능성을 믿고 수업에 적용했다. 아이들은 내가 소개하는 영화를 본다. 어떤 영화를 소개하든 아이들은 믿고 본다. 지금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고 믿고 그것을 아이들에게 전한다. 영화 속에 담겨진 메시지와 평소 학급에서의 상황을 연결하면 왜 우리는 이 영화를 보는지 이유를 느낀다. 비로소 영화가 수업을 통해 학급의 삶으로 들어오는 순간이다. 더 깊은 이해를 위해 평소 차쌤이 과거에 했던 다른 영화수업에서의 경험도 내어 놓는다. 필요하다면 나의 과거에서 느꼈던 경험과 영화 속 상황도 결부시켜 수업의 장에 풀어 놓는다. 이것이 내가 했던 영화수업의 모습이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영화로 안내하며, 몰입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영화를 본 뒤의 활동에서 아이들의 삶을 영화 속 상황과 결부시킬 수 있도록 먼저 나의 삶을 털어놓았다.
이것이 교사의 서사다. 난 현재 최고의 영화교육 전문가로 불리고 있지만, 그것은 표면에 불과하다. 아이들이 교사를 믿게 하고, 그걸 지켜보는 학부모도 믿게 하며동료교사와 관리자로부터 교육 전문가로 불리기 위해 브랜드가 필요하다고 여긴다면 브랜드는 그냥 간판일 뿐이다. 교사의 서사는 기록으로 남는다. 교사가 무엇을 가르쳐야 했고, 왜 가르쳐야 했으며, 어떻게 가르쳤는지 기록을 남겨야 서사가 된다.
기록은 성공보다 실패가, 환희와 기쁨보단 단련의 아픔이, 드러난 성과보다 보이지 않더라도 성장의 고통이 담겨 있어야 가치가 있다. 그것을 가장 많이 읽는 독자는 기록을 한 자기 자신이고 그 과정을 통해 교사의 서사는 깊이를 더 한다. 서사는 무형의 기운으로 교사의 매력을 감싼다. 브랜드는 서사의 가장 핵심이 되는 그 무언가를 표상하는 하나의 상징이다. 편견에서 시작한 영화수업은 오랜 기간을 단련하여 드디어 나의 서사가 되었다. 그것이 내가 발견한 영화수업의 가장 큰 성과다.
‘무엇을 배우느냐? 어떻게 배우느냐?’ 이것을 능가하는 것은 ‘누구로부터 배우느냐?’이다. 꼭 영화수업, 영화 교육이 아니더라도 가르치는 교사는 서사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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