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영(파주신문 기자)
독도는 처음입니다. 이렇게 멀리 배를 타는 것도 생애 처음입니다. 물론 대형 여객선이 아니라 바람을 이용하여 바다를 달리는 범선은 더욱이 처음입니다. 당연히 너른 바다에서 출렁이는 범선의 롤링과 뱃속의 요동도 처음으로, 참을 수 없으나 한편 유쾌한 일이었습니다. 135 톤의 코리아나호는 망망대해에서는 일엽편주였으나, 그 위용과 기세는 5만 톤급의 크루즈 못지 않았습니다.
2025년 6월 저는 잊을 수 없는 탐험을 다녀왔습니다. ‘범선 타고 독도 가자’ 탐사대의 일원으로서 동해 바다를 가로질러 외로운 섬 독도를 항해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남북 화해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실천적 평화의 항해였으며, 우리 삶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진정한 ‘평화 체험’이었습니다. 범선 항해의 특별함 못지않은 특별하게 의미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이번 탐사의 시작은 우연이었습니다. 재작년 윤석열 정부가 전군에 배포하는 국방부 교재에 독도를 ‘영토 분쟁 지역’으로 기술했다는 사실을 접하며 분노를 느꼈고, 관련 자료를 찾아보다 ‘영토문화관 독도’ 안재영 관장님의 SNS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인연이 결국, 독도 탐사라는 실천적 여정으로 저를 이끌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안 관장님이 대학 시절 친구였던 장철수 대장의 영향을 받아 독도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뜻이 ‘발해1300호’ 정신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입니다.
1998년 1월 24일, 장철수 대장은 대원 이용호, 임현규, 이덕영 선장과 함께 발해 건국 1300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제주도까지 오직 바람과 해류에 의존해 항해에 나섰습니다. 당시 외환위기로 흔들리던 조국에 ‘해양국가’의 정체성을 일깨우고 독도의 중요성을 알리려는 시도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들은 일본 오키섬 앞바다에서 폭풍에 휩쓸려 귀환하지 못합니다. 이번 행사는 발해를 꿈꾸다 스러진 이들의 길을 따라 다시 발해를 꿈꾸며 가는 여정이었습니다.
독도를 향한 항해는 쉽지 않았습니다. 6월 18일 새벽, 파주에서 출발해 경북 울진 후포항에서 범선 코리아나 호에 승선한 우리는 밤낮 없는 14시간을 항해해 이튿날 아침 드디어 독도에 첫발을 디뎠습니다. 고된 뱃멀미와 피로 속에서도, 동도와 서도 사이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는 순간, 말로 다 할 수 없는 전율이 온몸을 감쌌습니다. ‘나라 사랑’이란 말이 이토록 가슴 깊이 다가온 적이 있었을까요.
“작아 보이지만, 큰 섬. 독도는 보물섬이었습니다.”
독도는 동도와 서도, 두 개의 봉우리가 하나의 뿌리에서 자란 형제섬입니다. 마치 남과 북, 분단된 조국의 모습과도 닮아 있었습니다. “남한의 고유영토 독도는 북한 고유영토이기도 했습니다. 독도는 우리 모두의 땅이며, 하나였던 한반도의 상징입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동도 정상 망양대에서 가수 백자와 함께 ‘독립군가’와 ‘홀로 아리랑’을 부르며 “남북이 독도로 하나 되기를” 염원하던 장면이었습니다. 멀리 떨어진 북녘땅이 눈앞에 아른거렸고, 언젠가는 이 노래가 남북이 함께 부르게 될 날이 오리라는 희망이 솟았습니다.
저는 파주시민이자 지역 언론 기자로서, 분단의 현실이 우리 삶을 어떻게 흔들고 있는지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체감해왔습니다. 대북 전단 살포로 인한 북한의 보복성 오물풍선 살포, 확성기 방송, 잠을 이루지 못하는 어르신들과 불안에 떠는 아이들, 스트레스로 사산하는 가축들… 평화가 사라진 삶은 곧 고통이었고, 그 고통은 곧 경제와 생존의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평화는 이상이 아니라, 실존의 문제라는 것을.
이번 독도 탐사는 저에게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땅이 아니라 바다 위에서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고, 장철수 대장과 대원들이 남긴 “독도는 땅이 아닌, 바다의 문제다”라는 철학이 가슴 깊이 와닿았습니다. 바다에서 만나 화해하고 협력하는 남북, 그것은 상상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미래였습니다. 그 중심에 독도가 있었고, 그 가능성을 향해 노를 젓는 민간의 힘이 있었습니다.
탐사에 함께한 30여 명의 대원들은 세대와 지역, 직업을 뛰어넘어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장기자랑도, 음식준비와 뒷정리도 스스럼없이 나서는 모습에서 저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보았습니다. 공동체가 주도하는 평화, 그것이 바로 우리가 가야 할 방향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새로운 정부에게 다음과 같은 바람을 전하고 싶습니다. 독도를 영토의 상징이자 평화의 마중물로 삼아 주십시오. 남과 북이 바다에서 먼저 만날 수 있도록, 민간교류의 길을 열어 주십시오. 접경지역 주민들의 일상이 평화로 회복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 주십시오.
‘범선 타고 독도 가자’는 단순한 여행이 아닙니다. 과거를 기억하며, 현재를 항해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평화의 여정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여정에 함께했다는 사실에 깊이 감사합니다. 하나 된 대한민국, 평화로운 한반도. 이제는 말이 아니라, 삶으로 꿈꾸고 싶습니다.
독도에서 남북이 하나 되기를, 영토를 넘보는 일본인의 마음이 진정되기를 더 나아가, 우리 동네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독도의 괭이갈매기들과 울릉해국이 이념과 국적을 넘어 평화롭게 살 듯이, 세계의 모든 생명들이 갈등과 분쟁과 전쟁을 넘어 각자 자기 존재의 의미를 뽐내고 드러내며 서로 기대어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염원합니다.
한바다 파도 고달픈 바위섬에서/ 일상을 바람에 매고 갈매기들이/ 서성이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다// 지키려는 자들의 분주한 태극기 물결과/ 넘보는 자들의 선상 시위를 때때로 바라보면서/ 태극처럼 소용돌이치는 난바다에서/ 부질없이 국가의 경계는 무엇이며/ 섬을 실효 지배하는 우리는 아랑곳없는/ 무례한 인간들 깃발의 의미를 묻고 있다// 내 할 수 있다면 /울릉 동백 씨앗 몇 개 물고 와/ 따뜻한 곳에 키워 꽃을 피우고/ 해 뜨는 곳을 사모하는 사람들과/ 해지는 곳에 헛꿈을 가진 사람들을/손수 키운 동백 숲그늘 아래 한데 모아/ 보랏빛 해국海菊 무리무리 발아래 두고/ 인간의 흉내를 내어/푸짐한 호박 막걸리 한 상 차려 내고 싶다// 바람에 흔들리는 뜨거운 섬에서 /괭이갈매기들이 모여 앉아 혀를 차며/ 꺄르륵 꺄르륵 함께 웃고 있다 - 전종호, ‘독도에서’ 전문, 시집 「가벼운 풀씨가 되어도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