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식(우포자연학교 교장)
야생의 생명은 늘 나를 지켜보고 있다. 처음 우포늪 생명길을 걸으면서 나는 야생을 관찰하고 보호한다는 생각으로 그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십 여년 세월이 흐르면서 늘 다니던 길에서 우연히 삵을 만났다. 처음에는 두 짐승이 약간 긴장의 순간을 가졌지만, 먼저 내가 삵을 보며 길가에 주저앉았다. 그러자 삵도 자세를 낮추며 털을 고르면서 자기 할 일을 마치고 풀숲으로 사라졌다. 특히 삵은 자기 영역이 확실한 동물이어서 그곳을 지날 때는 그날의 눈빛과 10m 정도의 거리에서 느낀 온기를 생각하며 지나다녔다. 그러다가 추운 겨울날 오리들을 사냥하기 위해서 물억새 숲 뒤편 얼음 위에 온몸을 낮추고 사냥 준비하고 있는 삵을 또 만났다. 그런데 나를 힐끗 보더니 더욱 자세를 낮추고 오리류의 소리에 집중하면서 몸을 움츠렸다. 나도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 이동하였다. 이렇게 보면 우연히 풀숲에서 만난 삵 한 마리와 사냥 중에 만난 삵의 경우 내가 먼저 관찰한 것이 아니라, 평소 삵은 내가 숲길을 따라 움직이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아온 것이다. 사람과 자연은 물리적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경계가 흐릿하다. 오늘도 길에서 만난 꿩은 자식들을 불러내어 풀숲 속으로 숨도록 한다. 고라니도 풀을 뜯다가, 갑자기 주변을 살피고 몸을 숨긴다. 그들의 이러한 반응은 단순한 본능일 뿐만 아니라, 생명체가 지속적으로 자신의 안전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인간과의 거리를 유지하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경계하며 살아간다. 우리가 자연 속에서 마주하는 이들 작은 생명들은, 자신들의 세계를 지키는 방식으로 우리와 교차하는 순간을 만든다.
자연의 세계에서는, 각 생명체가 그들의 자리를 지키며, 서로 다른 방식으로 경계를 나눈다. 대부분의 새들은 초지나 숲을 걸을 때, 경계음을 통해 다른 동물들에게 자신이 있다는 신호를 보내며, 이는 마치 생태계 내에서의 ‘소통’과 같다. 이 소통은 단지 생존을 위한 신호가 아니라, 생태적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새들의 경계음은 다른 생명체들, 심지어 인간에게도 그 존재를 알리고, 모든 생명이 연결되어 있음을 상기시킨다. 초록빛 봄날, 물속에서 잉어들은 산란을 준비하며 물살을 가르며 공중부양하는 모습으로 강인한 생명력을 뽐낸다. 이들은 생명력의 상징이자,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존재들이다. 한 해를 기준으로 그들의 삶이 반복되며, 그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자연의 순환 속에 놓인 존재들의 자부심처럼 보인다. 이 모습에서 우리는 인간이 가지지 못한 순수한 강인함과, 삶의 주기를 따라 살아가는 깊은 지혜를 엿볼 수 있다. 한편 담비의 모습은 자연의 숨결을 더욱 생동감 있게 한다. 일 년에 한 번, 그 작은 덤불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담비는 마치 시간의 흐름을 몸소 증명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가 보일 때마다 덤불 속으로 재빠르게 사라지는 모습은 자연이 주는 중요한 교훈을 담고 있다. 우리가 세상의 본질을 보고자 할 때, 그 본질은 종종 드러나지 않거나 우리가 그것을 '안다' 고 생각할 때조차 흐릿하게 사라져 버린다. 자연은 우리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그 자체의 질서로 계속해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연을 관찰하면서도 절대 보지 않는 것이 있다. 새들의 둥지나 그들이 먹이를 찾는 장면을 보지 않는다. 이는 단지 인간의 호기심에서 비롯된 탐색이 아니라, 자연과의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의도적 선택이다. 우리는 때때로 지나친 호기심으로 자연의 법칙을 침범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일상에 침범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자연은 본래 그 자체로 완전하며, 그 질서를 따르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어둠이 내리면, 나는 휘파람을 불어 멧돼지나 다른 야생 동물들과의 거리를 유지하려고 한다. 그들은 인간과의 불필요한 접촉을 피하려는 본능적 충동을 가지며, 나는 그들의 영역을 존중하고, 그들의 길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행동한다. 이처럼, 자연과 인간 사이의 관계는 단지 물리적인 거리를 두는 것을 넘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종종 야생을 위협하는 존재가 된다. 이로 인해 나는 야생 시어머니처럼 행동하게 된다. 때로는 욕을 퍼붓는 노인의 모습처럼, 나는 야생의 경계를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말을 한다. 우리가 야생을 위협할 때, 그 위협은 단지 물리적 공간의 침범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생태적 균형의 파괴로 이어지며, 결국 우리의 삶도 그 영향을 받게 된다. 인간이 야생을 보호하는 방식은 단순히 동물들이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 생태계에서 지속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생태적 관점에서의 인간의 책임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려는 욕망과, 자연과 함께 살아가려는 욕망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 하지만, 우리가 지나치게 자연을 지배하려 할 때, 그 안에서 생기는 불균형은 결국 인간에게도 돌아온다. 환경 파괴, 기후 변화, 동식물의 멸종 등은 인간이 자연의 경계를 무시하고 과도하게 개입한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야생은 그 자체로 중요한 존재이며, 우리는 그들을 보호하는 책임을 지고 있다. 생태적 책임은 단지 보호의 차원을 넘어서, 인간과 자연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우리가 자연을 관찰하는 방식은 결국 우리 자신을 반영한다. 자연을 존중하고, 그 경계를 지키는 태도가 인간 사회에서 어떻게 실천될 수 있을까? 그것은 자연을 단순한 자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고유한 존재로서 존중하는 것이다.
인문학적 관점에서의 야생과 인간의 관계
인간은 역사적으로 자연과의 관계를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하고 설명해왔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우리는 자연을 신성시하거나 인간의 발전을 위한 자원으로 삼았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우리는 자연을 단지 자원이 아닌, 공존해야 할 동등한 존재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우리는 자연과의 조화로운 공존을 통해 더 나은 삶의 방식을 찾아갈 수 있다. 자연은 단순히 우리가 사용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우리의 존재 자체를 반영하고, 우리가 잃어버린 본능적 감각을 일깨워준다. 야생의 동물들과 식물들은 우리가 잃어버린 순수함과 강인함을 상기시키며, 그들과의 관계를 통해 우리는 더욱 깊이 있는 인간 존재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