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승민( 거창 창남초등학교 교사)
현직교사 김준식 선생님은 특이한 이력이 있다. 저자 소개에 따르면 2023년 9월, 4년간의 교장임기를 마치고 인문계고등학교 교사로 1년간 재직중이다. 정년을 1년 남긴 원로교사이면서 늘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는 학자다. 교장 시절 지수중학교 학생들과 수업으로 대화하기 위해 시작했던 철학 수업이 모티브가 되어 2022년 중학교 철학 1권/나를 찾아서/존재에 대하여/자유,이성,권력. 2023년 중학교 철학 2권/변증의 산맥에 이어 2024년 중학교 철학 3/인식의 그림자가 나오게 되었다.
총 5권으로 기획된 중학교 철학 시리즈는 기존에 나왔던 어떤 철학책보다 더 가치롭다고 할 수는 없으나, 독자인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철학서적임에는 분명하다. 중학교 철학 1권이 실제 학생들과 수업의 과정에서 나온 철학적 내용을 담은 것이라 깊이와 상관없이 주제가 다소 산만했다면 2권부터는 드디어 저자의 사유의 깊이와 고민이 함뿍 담겨나온다.
철학은 누구에게나 어렵게 다가온다. 그러면서도 가장 중요한 학문이란 사실엔 모두 이견이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중학교 철학 3권까지 한자 한자 빼놓지 않으려 줄그어가며, 메모해가며 읽은 독자의 눈으로 보면 살면서, 들어서, 행동과 경험으로 체득되거나 스쳐 지나가더라도 한번쯤은 접해봤던 것들에 의미를 찾고, 의미를 부여하고 규명된 것을 바탕으로 다시 또다른 것을 찾는 지난함 때문에 어렵게 느껴진다. 그러나 지난함을 이유로 시선의 끈을 놓치면 수없이 중첩되어 펼쳐지는 인생의 레이어 속에 움직이고, 생각하고 있으나 길을 잃는 것이 다반사라 철학의 중요성은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일수록 중요성이 더 커진다.
저자의 이력은 여기서 빛을 발한다. 가르치는 교사는 필연적으로 서사에 능하다. 서사에 능하다는 것은 설명도 잘한다는 뜻이다. 설명은 많이 한다고 잘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의 수준에 맞게 다양한 장르에서 꼭 필요한 것을 찾아 적절한 비유나 상징을 이용해 제시해야 한다.
말이 쉽지 이건 절대 쉽지 않다. 저자는 미학과 법학의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저자 본인은 늘 이것을 아무렇지도 않다고 여기지만, 정련된 글쓰기와 전달이 훈련되어 있다. 특히 학문의 결이 다소 이질적인 미학과 법학을 다 아우를 수 있다는 점에서 예술성과 체계성을 담보한다. 거기다 동양 철학인 장자와 거의 대부분의 서양철학을 섭렵하고 불교 철학에도 조예가 깊다. 그리고 영어, 독어, 한문 더군다나 라틴어까지 구사하는 저자는 번역서가 아닌 원문 자체를 찾아 연구하여 번역에서 오는 오류의 뉘앙스까지 경계하며 책을 쓴다.
그럼에도 3권까지 이어지는 중학교 철학은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먼저 저자는 2권 변증의 산맥을 쓰면서 압도됨을 느꼈다고 종종 말하곤 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지 독자 나름의 상상을 해본다. 철학적 논리의 전개는 한 학자의 견해가 만고불변으로 전해지지 않았다. 앞선 자의 논증은 뒤따라오는 자에게 논리적 저격과 격파를 당하고, 그 다음의 학자는 또다른 선상에서 해체하며 다시 논증의 숟가락을 얹는다. 그러다 헤겔과 칸트 같은 대 학자들이 싹 정리해서 일단락 지었다고 여기지만 그 뒤의 학자들은 그 작은 틈새의 오류를 찾아 또다시 자기 주장을 펼친다.
그걸 저자는 산맥이라 칭한 듯 하다. 숨이 턱턱 막히는 산맥 같은 논리의 성찬 앞에 후대의 독자는 압도되고 질린다. 그러나 저자는 읽고 해석하고 이해하는 그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하게 힘들고 어려운 이해를 할 수 있음에도 다시 자신의 견해를 밝히려 책으로 남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중학교 철학이다. 저자는 이번 중학교 철학 3권이 가장 힘들었다고 하였다. 이번 책은 인식을 주제로 하고 있다. 서문에 따르면 인식은 현상을 파악할 때 불완전한 지각이 발생하고 그것은 철학적 문제를 일으키며 이것은 사고의 얼개가 된다고 한다. 이건 원문이 아니라 내가 줄그어 가며 정리한 나만의 요약이다. 이것이 맞을 수도 아닐 수도 아니면 잘못 이해할 수도 있다.
저자는 이번 중학교 철학 3권 인식의 그림자를 쓰면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인식이란 주제가 너무나 광범위하고 이해의 과정에서 오류가 일상으로 일어날 수 있으며 이것을 술회한 수많은 철학자들의 견해가 상반되고 꼬여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인식은 그 자체가 종결점이 아니라 시작이기에 실제 시작할 구체적 내용을 이해하는 입구에서 엄청난 소진이 예상되기에 저자의 고민이 깊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확실한 것 한가지가 있다. 저자의 고민과 걱정이 많고 깊었음에도 독자인 나는 가장 잘 읽었다.1권 2권에 비해 훨씬 가독성이 높고, 구조도 간결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추측된다.
저자는 이번 중학교 3권에서 비로소 자신의 견해를 주력으로 남겼다. 이 무슨 말인가? 광범위한 인식의 파장 속에서 저자가 담고자 하는 내용을 추리고 추려서 자신의 견해의 줄기에 배열했다는 느낌이다. 155쪽의 본문 안에 인식의 모든 것을 담는 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저자의 이야기가 담겨야 한다. 이 책에서 저자의 이야기는 편철 그 자체에 있다. 인식에 대해 정리하고 설명하며 묶는 그것이 저자의 견해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책 마지막에 [저자 소개를 대신하여]에 나와 있다.
"다양한 철학의 분야 중에 인식론에 대한 철학 서적은 한글 번역본이 많이 없는 관계로 짧은 영어와 독일어 실력을 이용하여 번역하고- 중략- 어떤 날은 2-3페이지 쓰다가 논지가 맞지 않아 전부 삭제하는 날도 있을 만큼 앞으로 나아가기 만만하지 않았다."
난 이렇게 겸손한 저자의 어깨위에 올라타 저자가 제시해주는 가이드를 밟아가며 겨우 158쪽에 불과한 책을 읽었다. 그 어떤 책을 읽었을 때보다 힘들었으며, 그 어떤 책을 읽었을 때보다 뿌듯하다.
저자가 안내해 준 인식이란 가이드로 인식의 모든것을 알았다고 할 수 없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왜 저자는 책의 부제를 인식의 그림자로 지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다시 서문을 폈다.
"인간의 인식은 무지향적이며 동시에 무목적적이다. 단지 파악된 인식을 분류하는 과정에서 방향과 목적이 파악될 뿐이다. 단계적으로 인식된다는 것은 결과론에 가깝다. 직관은 단계적 인식의 중요한 반대증거다. 이 복잡한 인식의 세계와 그 그림자를 지금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인식의 체계와 그 그림자. 기가 막히다. 다 읽고 나니 왜 저자가 인식과 그림자로 이 책의 부제를 삼았는지 알겠다. 인식은 인식대로 모호하고 난해하지만 그 그림자는 또 더 늘어났을 것이다. 저자 김준식가 생각하는 인식의 그림자가 중학교 철학 3권과 앞으로 더 나올 4.5권으로 길어질 것 같다.
참고로 목차를 남긴다.
목차
□ 머리말 _ 5
철학 교육을 위한 제언 13
제5장 인식의 그림자 17
제1절 안다는 것, 그리고 직관 19
제2절 테아이테토스 23
1. 개관 23
2. 감각 26
3. 언어 31
4. 소크라테스의 점토 비유 36
5. 밀랍 서판의 비유 41
제3절 지식 47
1. 직관 49
2. 게티어 문제 53
3. 착오판단 57
4. 상상력과 관찰 61
5. 인지적 통로에 대한 논의 65
제4절 인식의 그림자 71
1. 『장자』의 인식론 75
1) 인식의 평가는 완전하지 않다 75
2) 인식으로 무엇인가를 획득할 수는 없다 77
2. 유학의 격물치지 82
3. 용수의 인식론 86
1) 논증의 시작 혹은 전제 87
2) 구체적 논증 88
4. 데카르트의 인식론 95
1) 여섯 개의 성찰 95
2) 여섯 개 성찰의 구체적 내용 97
(1) 1성찰, (의심스러울 수 있는 것들) 97
(2) 2성찰, (인간 정신의 본성에 관하여) 99
(3) 3성찰, (현존하는 신에 관하여) 102
(4) 4성찰, (참과 거짓에 대하여) 105
(5) 5성찰, (물질적 사물들의 본질에 관하여) 106
(6) 6성찰, (물질적 사물의 현존에 관하여) 108
5. 에티카의 인식론 112
1) 에티카의 불교적 이해 113
(1) 제1부 신에 대하여〉 공리 4, 공리 5 113
(2) 제1부 신에 대하여〉 정리 3 115
2) 에티카의 인식론 115
(1) 제2부 정신의 본성과 기원에 대하여〉 정리 19, 정리 20 116
(2) ‘인식’과 ‘파악’ 117
6. 데이비드 흄의 인식론 124
1) 생각의 기원 124
2) 관념의 기원과 조합에 대하여 125
3) 관념의 연결 127
4) 이해력의 작동에 대한 회의주의적 의심들 129
7. 버클리 인식론 132
1) 인지원리론 132
2) 인식 134
3) 로크 이론에 대한 반박 135
4) 감각과 정신 135
5) 실체(물질) 136
6) 외부 객체(대상) 137
7) 강한 생각과 희미한 생각 139
추상관념 139
8. 칸트의 인식론 141
1) 현상, 그리고 직관 141
2) 순수이성의 개념 143
3) ‘로크’와 ‘흄’을 넘어 145
4) 인식의 세 겹 147
5) 칸트 인식론의 파편들 149
(1) 공간에 대한 생각 149
(2) 시간에 대한 생각 150
(3) 시공에 대한 생각 150
(4) 아프리오리(A priori)의 본성 151
(5) 경험적 세계와 물자체의 관계 설정 152
(6) 칸트가 파악한 철학자에 대한 짧은 평가 152
저작권자 ⓒ 중앙교육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