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이응우의 자연미술 이야기, 인도예술유목 3

다시 온 ITM University 그리고 도큐멘테이션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8.20 07:16 | 최종 수정 2024.08.26 21:06 의견 4

2015년 11월 21일 아침, 3주간의 일정으로 인도 노마드를 위해 이곳을 출발했었다. 우리는 구자라트주의 중앙에 있는 블랙벅스 국립공원과 야생 사자들이 서식하는 사상기르 국립공원을 거쳐 커치의 중심부 부지와 서부 땅끝마을 럭팟(Lakpot), 구자라트 최대의 관광지 북부 소금사막 등을 두루 섭렵하고 마지막 목적지인 바로다의 ITM대학에 도착하니 이미 12월 11일의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다. 그래도 아는 곳에 다시 돌아오니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이곳에선 인도를 떠날 때까지 이동 없는 정주 생활이니 지금까지와는 다른 흐름이 될 것이다. 얼마나 먼 길을 달려왔는지 알 수 없으나 간밤의 숙소를 떠나 현재의 숙소에 이르기까지 꼬박 13시간이 걸렸다. 이제 편안한 곳에 안전하게 도착했다는 생각에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다. 온종일 덜컹대는 버스 안에서 시달린 탓에 눕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유목버스 : 예술유목을 위해 한 달 임대한 대형버스. 우리는 이 버스로 구자라트주의 구석구석 4,000킬로 이상을 달렸다. 산비탈, 주로 황무지 비포장길을 다녀 유목이 끝났을 때 이 버스는 처참한 몰골이 되었다.

이튿날 잠자리에서 일어난 일행들은 주변의 청결함에 모두 반색하는 눈치였다. 전보다 훨씬 깨끗해진 방과 잘 정리된 실내를 보며 이 대학이 우리 일행을 위해 많은 배려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20일 이상 구자라트의 특별한 곳을 찾아 만리장성보다 긴 구간을 유목하며 다양한 환경과 음식과 숙소를 경험했다. 이제 대학의 기숙사로 들어오니 모두 안도하는 듯 표정이 밝아 보였다. 여기 머무는 동안 마무리 전시를 위해 좋은 내용의 작업이 이루어지도록 더욱 집중할 것을 다짐한다. 지난번 이곳을 떠나며 생각해 두었던 작업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새로운 작품을 다시 구상해야 할 것 같았다.

이번 유목을 위해 배정된 21일, 전혀 짧지 않은 기간인데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 것 같다. 땅은 넓고 대부분의 목적지가 외진 곳에 있으므로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이동하며 보내야 했다. 3주 동안 총연장 4,000km 이상을 주파했으니 1만 리가 넘는 거리다. 인도의 도로교통 상황에 견주어 사고 없이 노마드를 마치게 된 것을 무엇보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사실 돌이켜보면 얼마나 많은 아찔한 순간들이 있었는지, 그리고 가슴을 쓸어내렸는지 헤아릴 수 없다. 유목을 통해 무엇을 얻고 배웠는지 따지기 전에 무사하게 유목을 마친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안전한 이동을 책임진 버스는 제법 괜찮은 대형버스였다. 때로는 끊어진 도로를 우회해야 했고, 어떤 때는 가로수가 도로의 반 이상을 점유한 상태를 뚫고 지나기도 했으며, 심할 땐 도로보다 넓은 부피의 짐을 적재한 트럭을 곡예 하듯 비켜 가야 했다. 가장 덩치가 큰 버스로 온갖 시골길을 다 헤집고 다녔으니 차량이 온전할 수 없었다. 결국 버스의 양 옆구리는 온통 긁힌 자국들로 광택이 사라지고 말았다. 용감무쌍한 기사는 무덤덤한 표정이었지만 필자는 버스를 볼 때마다 다시 색칠할 일이 걱정되었다.

ITM대학에 도착한 이후 이틀 만에 쓸만한 작업계획이 수립되었다. 팔뚝 굵기의 나무, 그리고 건축용 철근을 이용하여 기초를 만들고 그 위에 빛깔이 아주 특이한 황죽을 다발로 엮어 세우는 작업이다. 지름 150cm 원통형의 구조를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이중 구조로 설계했다. 작품의 제목은 한 달 넘게 인도를 여행하며 받은 인상을 뭉뚱그려 “새로운 성장(Newly Growing)”이라고 정했다. 이것은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ITM 대학의 학생들과 모든 사람의 여망, 그리고 인도의 정치적 사회적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결국 매력적인 노란 대나무는 구하지 못해 일반 청죽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신정장(Newly growing) : 구자라트 바로다에 있는 ITM대학의 교정에 유목의 결과로 설치한 작품. 구자라트는 인도에서 가장 혁신적인 도시다. 이작업은 열악한 환경을 딛고 인도의 산업을 견인하고 있는 구자라트를 축원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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