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도덕경 산책(58)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7.17 06:11 | 최종 수정 2024.07.17 06:14 의견 0

김준식(진주고등학교 교사)

지나치지 않게

방학이 다가온다. 학기말이 다가오니 우리 반 아이들도 자주 아프다. 학생과 선생 모두에게 휴식이 필요하다. 어제 5교시에 조퇴 하러 온 아이는 일과 후 학원에 가기 위해 조퇴를 하겠단다. 병원에 미리 들러서 학원 수업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왠지 허락하기 싫은 마음에 보건실에 들러서 약을 먹고 오라 했더니 조금 있다 와서는 문득 조퇴하지 않겠다 한다. 학원, 학교 그리고 조퇴가 내 머릿속에서 빙빙 돈다.

정년을 1년 앞두고 담임을 하겠다는 나의 의지가 혹여 아이들에게나 같은 학년 선생님들에게 부담이 될까 지난 겨울 방학 동안 꽤나 고민을 했다. 교장 임기를 끝으로 명예 퇴임을 주장하던 지인들은 교사로 돌아간 것도 모자라 담임을 하겠다는 나의 이야기에 혀를 내둘렀다. 미쳤다고 했다. 내가 생각해도 살짝 미친 것 같기도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담임으로 이제 반년을 넘겼다. 교장 4년 이후 첫 담임을 맡으며 내가 세운 기준이 바로 ‘지나치지 않게’였다. 나는 아침 조례 대신에 교실을 내 손으로 청소한다. 빗자루로 쓸고 있으면 아이들이 가방을 들어준다. 기특한 놈들! 가끔 밀대로 밀면 발도 들어준다. 귀여운 놈들! 그렇다고 교실 청소를 나만 하지는 않는다. 아이들도 순번을 정해 자체적으로 청소한다. 다만 내가 하니 저희들이 하는 분량이 조금 줄기는 할 것이다.

종례도 조례도 격식을 버린 지 오래다. 다만 멀찌감치 떨어져 아이들의 동정을 살핀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들이 한눈에 들어올 만큼 경력이 있다. 다만 특별한 느낌이 있는 경우는 슬쩍 다가가기도 하고 묻기도 하고 또 등을 쓰다듬어 주는 정도로 개입한다. 18살의 남자아이들이 이렇게 부드럽기도 어렵다. 그들은 자신들의 담임이 학교 최고령자이며 교장 출신의 교사라는 것을 거의 모른다. 옆 반 아이의 엄마가 내 제자라는 것이 밝혀졌을 때, 아이들의 표정이 볼 만했다. 우리 담임이 늙었구나!...… 하는 표정을 보며 왠지 안도감을 느낌 적도 있다.

우리 반에 지각 대장이 있다. 조례 마치고 일 교시 수업 시작 전, 그 사이에 거의 온다. 아침잠이 많아서라고 이야기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저 나쁜 습관 탓이다. 예전 같으면 강력하게 대응하여 지각 버릇을 고치려고 했을 테지만 지금은 그저 그 아이 머리를 어루만지며 부탁한다. 그것도 일주일에 한 번쯤…… 이렇게 부탁한다. “OO야! 늦게 왔으니 분리수거 좀 해 주라” 두 말 없이 분리수거 비닐을 들고나가는 OO의 뒷모습을 보며 ‘지나치지 않게’가 오히려 그 아이의 지각 버릇을 장기적으로 고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발견한다. 학기 초는 매일 지각하던 그 아이가 요즘은 일주일에 한두 번 지각한다.

좋은 삶은 기준이 없다. 하지만 나는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늘 좋은 삶을 살라고 이야기한다. 정작 나 자신도 기준이나 방법을 잘 모르면서 그저 좋은 삶이라고 만 이야기한다. 다만 지나치지 않게 움직이는 것이 타인과 자신을 침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자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백성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윗사람들이 무언가 하는 게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스리기 어려운 것이다.”(民之難治민지난치 以其上之有爲이기상지유위 是以難治시이난치)

『도덕경』 제75장 부분

‘무언가 하는 것’ 즉 '有爲유위'라고 되어 있지만 생략된 부분은 ‘지나치게’ 일 수도 있고 ‘목적’ 일 수도 있다. 지나치게 무슨 일을 하면, 목적을 위해 무슨 일을 하면 누군가는 상처받고 누군가는 힘들어한다. '지나치지 않게' 하는 일을 두고 우리는 굳이 ‘유위’라고 하지는 않는다.

교실에서 아이들과 분명한 가르침을 주고받는 선생님,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조화로운 교장 교감, 국민들의 평화로운 삶을 위해 고민하는 국가(권력), 모두는 열심히 하고 있지만 절대 ‘지나치지 않게’가 유지되는 경우다. 교실에서 누군가(학생, 교사) 지나치면 반드시 문제가 생겨난다. 학교도 국가도 다르지 않다.

오늘 아침에도 OO는 지각을 했다. 미안해한다. 이번 주는 처음이다. 63살이나 먹은 선생이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앙다물고 빈 주먹으로 허공을 가른다. 그만하면 좋아지고 있다. 우리는 지나치지 않게 서로를 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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