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식의 교육, 교육에서 ‘민주’와 ‘공화’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6.19 11:46 의견 0

김준식(진주고등학교 교사)

교장 4년의 경험도 당연히 작용했겠지만, 정년을 앞두고 있으니 학교 전체를 거시적으로 보게 된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갈등 속에도 소소한 행복은 존재한다. 갈등과 행복이 병렬적으로 이어지는 학교 사회를 깊이 생각해 본다.

1. ‘민주’의 가치

나는 교직 생활 시작(1987년)부터 지금까지 교육 현장에서 ‘민주’의 가치를 실현하기 노력했고 또 정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정작 교육에서 ‘민주’의 가치는 어떤 함의가 있는가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본 적은 의외로 드물었음을 최근에야 비로소 발견하게 되었다.

교직을 시작할 당시 내가 생각하는 교육현장에서 ‘민주’의 가치는 일제의 잔재로 추정되는 권위주의에 대한 저항과 도전이었고 동시에 학교 교육의 주체들이 학교 안에서 자신의 입장을 견지하고 조정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외견상 ‘민주’의 가치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 학교는 내가 처음 교직 생활을 시작했을 때 보다 더 혼란스러워졌고 더 참담해졌다. 현재의 학교는 지난 40년 가까이 생각하고 노력해 온 ‘민주’의 가치가 이루어진 학교의 모습은 분명 아니라는 것이 정년을 앞둔 나를 몹시 당황스럽게 한다. 이유는 무엇인가?

2. ‘공화’의 가치

우리나라는 헌법에 명시된 것처럼 우리는 공화국 체제다. 여기서 ‘공화’란 영어 ‘Republic’을 번역한 말인데 어원상 라틴어 ‘respublica=절제하는’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한자 ‘共和’의 의미를 분석해 보면 ‘함께’라는 ‘공共’과 ‘서로 응하다’라는 ‘화和’가 합쳐진 단어인데 여기서 ‘和’를 다시 풀어보면 ‘화禾’(벼를 뜻하고 의역하면 ‘먹을 것’을 의미한다.)와 ‘구口’(입을 뜻하니 이것은 사람들의 ‘요구’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사람들의 요구(먹을 것에서 비롯된 원초적인 욕구)가 잘 절제되고 조정되었을 때 서로 응해서 화합하는 상태가 된다는 의미다.

앞서 라틴어 어원의 ‘절제’와 한자의 ‘화합하는’의 의미를 거시적으로 살펴보면 화합의 대 전제가 ‘절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각자의 욕구와 요구를 절제했을 때 화합은 이루어진다는 것이 곧 ‘공화’의 의미다.

그러면 누가, 무엇을 절제해야 되는가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누가 절제해야 하는가? 당연히 상대적으로 열악하고 동시에 불리한 입장에 있는 대상을 위해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이 먼저 절제해야 한다. 물론 그 배려를 받는 열악하고 불리한 쪽에서도 절제는 필요하다. 두 절제가 조화를 이루는 것, 그것이 ‘공화’의 가치다.

무엇을 절제해야 되는가? 욕망이다. 욕망이 절제되지 않으면 공화의 가치는 일순에 무너지고 만다. 욕망을 절제하는 것은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것이다. 자신이 자신의 욕망을 제어하는 것은 타인의 욕망을 제어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지만 결과적으로 상대의 욕망도 제어하는 효과도 있다.

3. 그러나!

대한민국 헌법 1조 1항은 대한민국이 민주 공화국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즉 ‘민주’의 가치를 우선으로 하고 ‘공화’의 가치를 그다음으로 두고 있다. 병렬적이기는 하지만 해석상 선, 후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

‘민주’의 가치는 앞서 밝혔듯이 주체의 개별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즉 각자가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 ‘민주’의 가치다. 각자가 존중받는 것이 민주적 질서의 기초라는 것에는 동의하는 순간 이어 나오는 '공화'의 가치가 위협받게 된다. '공화'의 가치는 앞서 말했듯이 절제가 중심이 된 ‘화합’이다. 그런데 ‘민주’는 각자 존중의 의미가 강하다. 각자가 타인과 자신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절제할 수만 있으면야 너무나 완벽하겠지만 그것은 인간 세상이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소 하거나 혹은 중대한 문제의 배후에는 이 두 개의 가치가 충돌하고 있다. ‘민주’의 가치에 의한 각자의 존중과 ‘공화’의 가치에 의한 절제를 통한 화합이 서로 상충하고 있는 것이다.

4. 질서와 행복

학교는 인위적인 규칙과 질서의 공간이다. 인위적이라는 단어는 매우 다양한 함의를 가지지만 여기서는 개인이 속한 사회, 집단, 국가에서 요구되는 기본적인 태도와 절차라고 가정하자. 그 인위적 질서의 발전적 모색을 포함한 세대 간 전달과 체화體化가 학교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이다. 이 기능을 위해 국가는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어 이것을 유지하려 한다.

동시에 학교는 행복한 공간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동의한다. 불행한 공간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하지만 학교 구성원 다수의 행복이 보장되려면 학교는 먼저 질서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간혹 질서와 전체주의적 가치를 혼돈하는 경우가 있지만 질서의 기본이 바로 '배려와 존중'이다. 즉 '공화'의 가치인 ‘절제’다. 그 절제의 바탕이 구축된 뒤에 비로소 개별성의 존중이 고려되어야 한다. 개별성은 이를테면 ‘민주’의 가치다. 학교에서 이룰 수 있는 행복은 ‘절제’의 질서 위에 ‘개별성’이 구현될 때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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