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이응우의 자연미술 이야기, 안개와 구름의 나라 스코틀랜드 1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6.11 08:14 의견 4
게어록 가는 길
게어록 산비탈의 바위 : 나무가 없는 산의 특수한 모습 그리고 언제라도 굴러 떨어질 듯한 동네 뒷산의 바위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영국 북쪽에 있는 지역을 스코틀랜드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스코티쉬의 땅”인 것이다. 몇 해 전 분리 독립의 찬반투표를 진행할 만큼 영연방과 매끄러운 관계가 아니다. 20세기 이후 많은 연방국이 분리독립을 선언한 시대의 흐름으로 볼 때 연방을 유지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다른 지역에 비해 산지와 호수가 많고 위도상 북쪽에 있으나 연중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영향으로 여름에도 섭씨 20도 중반을 크게 웃돌지 않으며, 겨울에도 눈이 오지 않을 만큼 온난한 해양성 기후이다. 그러나 바람이 세기 때문에 체감 온도는 훨씬 낮아지고 고도가 높은 산악에는 겨우내 눈이 쌓일 것이다. 그래서 식물의 분포도 온대와 한대의 식물들이 섞이면서도 우리의 식생과는 다르다. 이곳 사람은 변덕스러운 날씨에 대해 “사기꾼은 믿을망정 스코틀랜드 날씨는 믿지 마라!”라고 말한다.

대체로 에든버러나 인버네스 같은 동부의 도시는 그나마 기후가 서부보다는 덜 사나워 농경과 목축을 병행할 수 있지만 서부로 오면 목축 외엔 농경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다. 기껏해야 텃밭에 시금치나 허브 등을 심어 놓고 겨우 이파리나 뜯어 먹는 정도다. 그나마 온실이 있으면 겨우 방울토마토, 양파, 파 등을 재배할 수 있다. 그러나 여행자의 눈으로 보는 여름철 경치는 꽤 아름답다. 우선 공기가 맑아 호흡하기 좋고 날씨가 맑은 날은 시계가 좋아 아주 멀리까지 바라다볼 수 있다. 대부분 산은 이 지역의 기후에 특화된 이끼류와 고사리 그리고 키가 작고 억센 관목류의 식물들이 대부분이다. 숲은 자연림과 인공림으로 구분되는데 산등성이 보다는 골짜기나 사람들이 사는 마을 주변에 듬성듬성 분포되어 있다. 자연림의 경우 다양한 식물군이 서식하며 수령이 아주 오래된 우람한 나무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옛날 이곳에도 숲이 우거진 산들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그리고 실제 주민들도 그렇게 증언하고 있다.

게어록 전경
인버뷰 식물원 : 게어록은 전형적 조용한 시골의 풍경을 자아내며 인버뷰 식물원의 거대한 풀잎은 그 크기에서 경탄을 자아낼 수 밖에 없었다.


산업혁명기 대대적인 벌목이 있었으나 그 후 조림이 쉽지 않았기에 오늘날과 같은 경관이 스코틀랜드의 모습을 대변하게 된 것이다. 인공림의 경우는 수종이 소나무로 단일화되어 있으며 야생동물들이 크기 전에 먹어 치우기 때문에 조림에 대단히 애로를 겪고 있다고 한다. 특히 야생 사슴들이 여린 새순을 좋아하기 때문에 최대의 적이라고 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인공조림지는 울타리가 쳐져 있으나 관리에는 한계가 있어 보였다. 그나마 잘 보호된 숲도 수령이 오래지 않아 대부분 100년 이내로 국한되며 스코틀랜드의 혹독한 자연환경과 심한 충돌을 겪고 있다. 역시 자연은 한 번 그 질서가 무너지고 나면 원래의 상태로 회복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옛날이 땅에 살던 목축인 들은 산업혁명 이후 지주들의 횡포와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환경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터전을 찾아 신대륙 호주나 미국 등지로 이주했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가 수입 소고기를 고를 때 미국산과 호주산을 놓고 풀을 먹은 고기냐 아니면 사료를 먹은 고기냐를 두고 따지는데 그 소를 길러낸 사람들의 조상은 아마도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추측하게 된다. 다만 미국으로 이주했느냐, 호주로 갔느냐만 다른 것이다. 그래도 나는 개인적으로 넓은 초지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는 호주의 소들을 보았기 때문에 호주산 소고기를 선호한다.

현재의 스코틀랜드 북부 고지대, 특히 서부지역의 산들은 대부분 숲 대신 키가 작은 관목 덤불과 이끼들로 덮여 있고 땅의 표면도 피트(peat)라고 불리는 암갈색의 특수한 토양층으로 덮여 있다. 이 층은 삽으로 떠내서 바람에 말리면 연료가 된다. 옛날 군대에서 페치카에 때던 갈탄이나 조개탄 등을 연상하게 하는 피트는 화력은 화석연료보다 못하지만, 취사용 또는 보온용으로 요긴하고 저렴한 비용이 특징이다. 본인이 직접 채취할 경우는 무료다. 하이랜드의 오래된 가정에서는 피트를 때는 육중한 무쇠 보일러가 최근까지 사용되었다.

2014년 6월 중순 핀란드의 로바니에미 근교의 숲에서 작업을 마치고 온종일 여러 경로를 거쳐 영국의 북동부에 있는 바닷가 마을 게어록(Gairloch)에 도착했다. 이곳은 약 1,600명 정도가 사는 전형적인 휴양지였다. 언뜻 보기에는 알프스 산록의 마을처럼 보이나 마을 앞에 호수 대신 바다가 있다. 원래 이곳은 오지의 해안마을이었으나, 최근 경치 좋은 마을을 찾아 많은 사람이 이주하였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젊은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나고 현재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퇴직한 노년들이 많다고 한다. 마을은 늘 안정되고 조용하지만, 바닷가라서 그런지 날씨의 변화는 많은 편이다. 대부분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구름과 안개가 햇빛을 가리고 있었다.

처음 이곳에 오던 날 인버네스까지 마중 나온 현지 작가의 차를 타고 3시간 이상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차창 밖에 펼쳐지는 색다른 경관에 깊이 취해있었다. 대부분 산은 두루뭉술한 노년기 지형으로 보이고 나무보다는 이끼와 키가 작은 관목 등으로 덮여 있어 우리의 산야와는 매우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도 어떤 산들은 소나무, 전나무, 자작나무 등이 원시림을 방불케 할 만큼 우거지기도 하고, 가끔 어떤 산은 그늘진 곳에 잔설을 안고 있어 이곳 기온을 추측할 수 있게 해주었다. 아무튼 많은 작가가 왜 이곳을 가봐야 한다고 추천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를 이곳에 올 수 있도록 초대해 준 사람은 린 베네트 멕캔지(Lynn Bennett Mackenzie/이하 ‘린’으로 표기함)라고 하는 작가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이 작은 마을에서 국제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진행해 온 작가로 작년 야투의 “글로벌노마딕아트프록젝트”의 기획자 콘퍼런스와 레지던스프로그램에 연속하여 참가하면서 야투와 인연을 맺게 된 사람이기도 하다. 앞으로 우리의 국제적 활동에 동반하여 힘을 보탤 수 있는 작가로 매우 훌륭한 파트너십을 지닌 기획자이다.

게어록의 작가 린 : 자신의 삶의 공간과 지역의 특성을 예술적으로 승화시기는 작가는 게어록의 문화발전을 위해 다양한 일들을 수행하고 있었다. 또한 액자만드는 일을 부업으로 할 만큼 생활력도 강했다.

게어록 동네 방송국 : 동네 라디오 방송국에 고정 프로를 진행하고 있는 작가의 모습. 그의 코너에 출연하여 자연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것은 특별한 추억이 되었다.

린의 가족 : 그녀는 인버네에 사는 은퇴한 친정부모와 남매를 슬하에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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