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이응우의 자연미술 이야기, 헝가리 3

에스토니아인 블랙스미스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6.04 06:15 의견 8

포도주 제조인의 집에서 오토와 함께 좋은 안주와 술 그리고 좋은 분위기에서 익숙지 않은 포도주를 많이 마신 뒤였다. 그리고 주인이 내주는 독주를 마시고 유럽에 와서 처음으로 필름이 끊어졌다. 더구나 이튿날 새벽에 루마니아의 무호스(Muhos)로 2,000리 먼 길을 여행해야 했다.


피터는 아침부터 여행 준비에 여념이 없어 보였다. 먼 길 떠나기 전에 고장이 난 자동차도 고쳐야 하고 거위, 고양이 등도 누구에겐가 부탁해야 했다. 그가 떠날 준비를 하는 동안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놋스바이(Noszvaj/이곳의 예술가들이 공동운영하는 동굴 작업공간)를 찾아갔다. 마침 이곳의 작가 오토(Horvath Otto)가 커다란 함지박에 꽁꽁 언 사과를 넣고 씻고 있었다. 아마도 사과주스를 만들려는 것 같았다.

놋스바이 마을은 지반이 대부분 화산재가 퇴적되어 무른 바위처럼 형성된 곳 굴을 파고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마을은 지금도 집마다 뒤뜰에 석빙고가 있다. 피터의 말에 의하면 이곳은 지리적으로 와인을 생산할 수 있는 위도중 가장 북단이라고 했다. 그러나 햇볕이 좋아 포도가 잘 자라며 수확기가 늦기 때문에 일조량이 많아 와인이 더 좋은 맛을 낼 수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포도의 수확은 8월부터 9월까지라고 한다. 그러나 헝가리의 놋스바이 주변은 10월, 늦을 땐 11월까지 간다고 한다. 포도주의 질은 전적으로 포도의 품질에 달려있기에 일조량이 많아 당도가 높으면 14 도(%) 이상 양질의 와인을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더욱이 수확시기가 늦어져 포도가 얼기라도 하면 언 포도를 원료로 한 더욱 특별한 와인을 생산할 수 있다고 했다.

오후 한나절이 다 지날 무렵 출출한 생각에 오토에게 주점에 가서 한잔하자고 했더니 반색하며 그의 낡은 차로 길을 나섰다. 잠시 후 도착한 곳은 뜻밖에도 주점이 아닌 민가였다. 건장한 남자가 그릴에 고기를 굽다가 반갑게 맞이했다. 젊은 주인은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그는 에스토니아 사람 블랙스미스 안티크 안티(Antik Anti)였다. 그는 포도주에 미쳐 멀리 이곳으로 이주하여 와이너리를 만들었다. 마침 자신이 생산해 낸 백포도주와 적포도주를 내놓고 한잔씩 권하며 같이 마시자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목구멍에 화산 먼지가 낀 듯 컬컬한데 좋은 안주에 잘 익은 포도주라니, 이런 호사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간밤에 무슨 길몽이라도 꾸었던가, 아니면 무슨 운수 대통이라도 했나!

술을 나누며 얘기를 하다 보니 안티는 생각보다 더 흥미로운 사람이었다. 포도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물론 우선 헝가리어와 영어를 모두 능숙하게 구사하고 장자를 좋아하는 무신론자였고, 주역도 좀 안다고 했다. 그리고 42세의 젊은 나이에 21살의 예쁜 딸이 있는 가장이었다. 이국의 밤은 깊어져 가고 잘 익은 술과 좋은 안주, 게다가 분위기까지 좋아 권주가가 필요 없는 날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알 길이 없는데,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새벽 3시였다. 토굴작가와 대장장이는 어디 가고 나만 혼자 다락방에 덜렁 누워있단 말인가?

보로카의 그림 : 예술가의 피를 받았는지 피터 교수의 큰딸 보로카의 그림 솜씨가 남다르다. 여행 중 차 안에서 장난치듯 발가락에 그린 그림이 막힌 곳 없이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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