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선생의 진로진학 코너 45. 나를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5.10 06:15 | 최종 수정 2024.05.10 07:27 의견 2

심재영(신일중학교 진로진학교사)

영어 속담에 “You are what you eat”라는 말이 있다.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이다”라는 이 말이 애정 생활에도 해당된다며 인스턴트 식품보다는 거친 자연식을 먹어야 한다는 19금 농담이 있지만 중요한 건 나를 이루는 것 중에 먹는 게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우리가 섭취한 음식물은 9~15시간이면 소화 흡수가 끝나고 24시간 정도가 되면 배변까지 마무리된다. 먹는 게 내가 되는 건 하루 정도면 가능하다는 얘기다. 어디 나를 이루는 게 먹는 것뿐이겠는가? 그리하여 고민해 본다. 과연 무엇이 나를 만드는가? 지금의 나를 있게 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같은 음식을 먹어도 각자의 몸에서 미세한 차이가 드러나는 건 유전적 요인 때문이다. 어느 지역에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느냐는 외부 환경도 나를 만드는 요소이다.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영향을 주리라. 우리가 혼자 있으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기에 늘 타인을 통해 자신을 알 수 있는 ‘대자적(對自的) 존재’인 점에서도 그렇다. 수많은 복잡한 요인들이 나를 만든다. 주변 환경이 어떠한들 스스로의 의지가 자신을 만드는 점도 무시할 순 없다.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이라고 무조건 실패한 삶을 살진 않는 것처럼 자신이 어떤 삶을 살겠다는 의지를 갖느냐에 따라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 의지가 나를 만든다.

의지의 발현은 원대하고 거창한 꿈과 계획 속에 드러날 수 있지만 그보다는 일상에서 자주 반복되는 행동 양식에 의해 나타나는 경우가 흔하다. 습관이 무서운 이유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는 대부분의 경우 공부를 하는 습관이 형성된 아이이다. 매일 아침 수영장 가는 습관이 형성된 사람은 수년이 지나면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 된다. 책 읽는 습관이 형성된 사람은 풍부한 지식과 교양을 겸비한 다독가가 될 확률이 높다. 인사를 잘하는 습관이 만들어지면 사람들에게 예의 바른 아이로 대접받는다. 그러나 ‘작심삼일’이란 의지의 유통기한은 ‘좋은 습관’으로 삶을 바꾸라는 주장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게 한다. 자기 계발 분야의 도서 검색에 판매되고 있는 ‘습관’ 관련 책이 현재 천 권이 넘는다는 건 나를 만드는 좋은 습관이 영원한 숙제임을 확인하게 해준다.

정년퇴임을 하신 분들이나 그보다 조금 이른 50대 후반에 명예퇴직을 하신 분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 퇴임 후에도 정기적인 할 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복되는 출퇴근 속에 그들의 상황이 마냥 부러운 현역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가는 말이지만 가끔 긴 연휴에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만 있으면 어렸을 때와 달리 일단 몸이 찌뿌둥하고 무거운 걸 느끼기에 해가 갈수록 수긍하는 바가 크다. 할 일이 있다는 것, 그것도 매일 반복해서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은 어찌 되었든 유지되고 있는 ‘하루 단위(daily)’의 습관이기에 나를 이루게 한다. ‘나는 곧 내가 하는 일이다.’

성악설(性惡說)이 옳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올바르고 착한 마음은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카프카의 말처럼 ‘악은 선을 알지만 선은 악을 모른다.’ 이게 옳은 일인 걸 아는 데도 눈앞의 안위와 실리 혹은 이기심 때문에 결정이 흔들릴 때 그렇다. 나쁜 습관은 좋은 습관보다 쉽고 빠르게 형성되는 점에서도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좋은 습관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가르치는 사람의 양심은 과연 나 스스로 가르칠만한 사람인가에 대한 반성을 수반한다. 이때 완벽한 사람은 없고 나 역시 함께 노력하는 입장이라는 쉬운 핑계를 든다. 기분이 축 처지거나 뭔가 자신감이 없을 땐 그런 말조차 비루한 변명처럼 느껴진다. ‘나도 못 하는 데 무슨’ 하며 위축된다. 하지만 더 조심해야 할 때는 그 반대의 경우다. 너무 자신감이 크거나 행복에 겨워할 때 오히려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지도해야 한다. 쉽게 가르칠 수 없는 영역임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왜 이것밖에 안 되냐며 무시하거나 실망할 수 있다. 훗날 한없이 부끄러워질 수 있다.

가끔씩 반듯한 아이를 보고 그 부모님을 함께 확인할 때가 있다. 많은 정성과 노력을 통해 자녀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다고 느껴지는 부모님들을 볼 때면 존중할 수밖에 없다. 부모의 노력과 자녀의 마음이 잘 일치한 경우이고 운도 따라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라도 무시할 순 없다. 자식 농사처럼 맘대로 안 되는 일이 세상에 또 없기 때문이다.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합시다'라고 아이들에게 강조할 때 ‘모두가 그렇게 노력하면 어떻게 하나요?’라는 깜찍한 질문을 듣는다. 나의 대답은 ‘그럴 일은 결코 없으니 걱정하지 마세요’이다. 실제로 모두가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는 세상은 없다. 반대로 모두가 대충 사는 세상도 없다.

습관의 중요성을 생각하다가 살펴본 자기 계발서와 유튜브 영상들을 보면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어느덧 이론적으로는 수긍이 가도 가슴에 와닿지 않는 주장들에 식상해진다. 그들이 말하는 수많은 이론과 증명들 속에서 나에게 맞는 것을 운 좋게 찾는다 한들 그게 또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를 일이다. 지행일치(知行一致) 하는 삶은 쉽지 않다.

책과 영상에서는 성공한 사람들이 주장을 해야 그나마 설득력을 얻는다. 그런데 놀라운 건 나의 기준으로는 이미 만족하고 여유를 누려야 마땅할 그들이 보여주는 끊임없는 열정과 도전하는 마음가짐이다. 그들은 대부분 그 위치에 도달하면 또 다른 목표가 생긴다며, 쉰다는 건 도태된다는 걸 의미한다고 이해 못 할 주장을 한다. 그들처럼 성공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반박할 수 있는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치열하게 살지 못했다고 재차 자책할 뿐이다. 그들은 보면 상어가 떠오른다. 아가미 근육이 발달한 경골어류들이 입을 벌려 물을 머금고 정지 상태에서 호흡하는 반면 상어와 같은 연골어류는 물을 머금을 수 없어 앞으로 헤엄치면서 발생하는 물의 흐름을 통해 아가미로 호흡한다. 이를 램 환수(ram ventilation)라 한다. 또한 상어는 부레를 갖고 있지 않다. 그렇기에 물에 뜨려면, 숨을 쉬려면, 상어는 살아있는 동안 계속 헤엄쳐야 한다.

나는 상어처럼 살 순 없겠다고 소심한 항변을 하지만, 은퇴한 선배들의 말과 자기 계발에 성공한 사람들의 말을 통해 살아있는 동안은 어쩔 수 없이 부단히 애쓰고 움직여야 할 수밖에 없음을 받아들인다. 정형외과 의사가 말하길 앉아 있을 때 받게 되는 엉덩이의 힘이 약 80mmHg 정도라면 두세 시간 만에도 욕창이 생길 수 있다고 한다. 살아 있는 동안은 계속 움직여야 하는 게 생명의 숙명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삶이 덧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여겨지는 유명인들이 짧은 생애를 산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IT 산업 생태계를 혁명적으로 바꾼 스티브 잡스가 향년 56세로 세상을 떠났고, 우주의 기원과 인간의 미래를 얘기했던 ‘코스모스’의 칼 세이건은 향년 62세로 생을 마감했다. 누구나 100세 이상을 사는 건 아니다. 지금 살아있음에 감사할 일이다.

‘무엇이 나를 만드는가?’ 음식과 경험, 그리고 의지와 습관들을 떠올리며 어쩌면 나를 이루는 게 별거 없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던 중 며칠 전 친구의 소개로 한 영화를 보았다. 2023년 칸 영화제 각본상을 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이었다. 두 소년과 선생님, 그리고 소년의 어머니 등 등장인물의 사연과 故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에 빠져 영화가 끝나도 한동안 먹먹한 상태였다. 오랜만에 영화를 보며 느끼는 긴 여운과 감동이었다. 돌이켜보니 살아오면서 큰 감동을 받은 일들이 있다. 영화와 책과 음악에서 받은 감동은 분명히 지금의 나를 이루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 밖에도 감사한 도움을 받았거나 모르던 것들을 깨우칠 때 받은 감동 역시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나를 다그치는 의지와 노력의 반복된 일상 속에서 파문을 일으킬 감동의 순간이 삶에는 가장 소중한 것 같다. 그 순간들이 쌓여 내가 되기에 잃지 않으려 노력해야겠다. 이는 좋은 습관을 만든다면서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저작권자 ⓒ 중앙교육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