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娛樂歌樂 시 읽기】20. 윤재철, '엉겅퀴를 끌어안은 풍뎅이'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5.04 07:05 의견 0

풍뎅이 한 마리

엉겅퀴꽃에 푹 빠져 있다

머리를 박고

미동도 하지 않는다

등에는 꽃가루 잔뜩 묻힌 채

나비가 아니면 어떠랴

벌이 아니면 어떠랴

큰 가시를 가져 한거싀꽃

날카로운 가시를 피해

진분홍빛 보드라운 입술 찾아온 풍뎅이

시커멓고 못생겼으면 어때

미련하고 거칠면 어때

생긴 건 까칠해도 속정 깊은 나와

철부지 그대

바람도 그 곁을 지나지 않는다

햇빛도 못 본 척

엉겅퀴와 풍뎅이가 엉기어 꼼짝 않는

여름날 오후가 고즈넉하다

풍뎅이가 엉겅퀴꽃에 “머리를 박고/ 미동도 하지 않는다/ 등에는 꽃가루 잔뜩 묻힌 채”입니다.

삼매 상태입니다.

삼매(三昧)란 한 가지 일에 집중하여 대상과 자신이 하나가 된 상태입니다. 온갖 잡생각이 없는 고요한 상태입니다.

물론 그전까지는 각각의 마음속에 있던 나비, 벌, 가시, 못생김, 미련, 거침, 까칠함 등의 욕탐하는 마음, 밀쳐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상(相)들이 깨끗이 사라진 하나된 상태입니다. “나비가 아니면 어떠랴/ 벌이 아니면 어떠랴/ 큰 가시를 가져 한거싀꽃/ 날카로운 가시를 피해/ 진분홍빛 보드라운 입술 찾아온 풍뎅이// 시커멓고 못생겼으면 어때/ 미련하고 거칠면 어때/ 생긴 건 까칠해도 속정 깊은 나와/ 철부지 그대”입니다. 주객으로 나뉘어 있음에서 합일(合一)의 하나가 된 것입니다. 그 합일에서 행복감과 희열을 느낄 것입니다.

그런 일체감이 이런 것일까요?

나는 내가 사랑하는 그이고, 그는 내가 사랑하는 나이다.

우리는 하나의 육신 속에 머물고 있는 두 개의 영혼이다.

너희가 나를 본다면, 너희는 그를 보는 것이고

너희가 그를 본다면, 너희는 우리 모두를 보는 것이다.”

- 이슬람 수피 만수르

그래서 시인은 “바람도 그 곁을 지나지 않는다/ 햇빛도 못 본 척/ 엉겅퀴와 풍뎅이가 엉기어 꼼짝 않는/ 여름날 오후가 고즈넉하다”고 합니다. 물론 풍뎅이는 닫힌 본능체계를 갖고 있으니 이 삼매에서 빠져나와도 사람들처럼 불안을 느끼며 또다시 욕탐하는 번뇌를 짓지는 않겠지요.(오철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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