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선생의 진로진학 코너 44. 쪽빛은 푸름을 남기나니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5.03 06:41 | 최종 수정 2024.05.03 07:47 의견 0

심재영(신일중학교 진로진학교사)

‘배운다는 것은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가르친다는 것은 다만 희망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다.’ 故 신영복 선생의 말씀이 지금도 아련하고 먹먹하다. 며칠 전 첫 제자들을 만났다. 25년 전 담임을 했던, 나와는 열 살의 나이 차가 있는 아이들이다. 아니, 아이라고 하기엔 이미 마흔을 넘긴 중년의 남성들이다. 자녀들에게 한참 손이 가고 각자의 영역에서 고군분투할 동안엔 연락이 뜸했었다. 나 역시 그런 처지들을 이해하면서 연락을 못 해오다가 수년이 지나 오랜만에 성사된 만남이었다.

첫 학교는 당시 비평준화 지역의 우수 고등학교였다. 그래서인지 제자들 다섯 명 가운데 이제 막 개업한 의사가 둘, 대기업을 다니다가 공직으로 전환하거나 아예 개인 사업을 시작한 제자가 있고, 외국계 제약회사에 다니는 제자도 있다. 어느덧 이 사회의 안정된 중산층에 속한 모습들이었다. 사회적 지위만으로 본다면 이미 제자들은 나보다 우위의 계층에 속해있다. 뭐 하러 굳이 그런 생각까지 하냐고 따질 수 있지만, 사제지간(師弟之間)의 특별한 감정을 설명하기 위함으로 이해해 주시면 좋겠다.

만일 주변 지인들 가운데 하는 일이 잘 되었거나, 투자에 성공한 경우, 혹은 큰 재산을 물려받았다거나 자녀들이 좋은 대학을 갔다면 그 말을 들은 심정은 어떠할까? 물론 겉으론 축하하고 함께 기뻐해야 마땅한 일이지만 필연적으로 나의 처지와 비교를 할 때면 다소 서글퍼지거나 시샘이 일어나는 건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 온전히 공감할 도량이 아직 작아서 느끼는 한계이다. 그러나 이런 감정이 전혀 배제된 대상이 있으니 그게 바로 제자들이다.

대학입시를 함께 준비하고, 좋은 결과로 입학을 시킨 후 수년이 지나 들려오는 제자들의 좋은 소식에는 일말의 부러움이나 동경, 그리고 인간적인 시샘이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관대한 인물이 아닌데 하며 이상하게 여기던 중에 일찌감치 깨달았다. 사제지간의 마음과 정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와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는걸.

수많은 선생님이 오늘도 제자들을 대하며 꿈을 꾼다. 지금의 모습이 예쁘고 귀여운 아이들에게도 그렇겠지만 조금은 실수하고 삐딱한 아이들에게도 함께 꾸는 기대다. 과연 이 아이가 십 년, 이십 년 후에는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일상의 덧없음도 설렘과 숭고함으로 바뀌는 경우가 있다. 물론 현실에 박혀있는 집착으로 인해 아이의 미래를 소환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나마 가끔이라도 그러한 생각이 떠오르면 감사할 뿐이다. 그리고 이번 만남은 오래된 기대가 현실로 나타난 순간이라 행복한 경험이었다.

한때 유행했던 사제지간을 묘사한 고사성어로 ‘줄탁동시(啐啄同時)’가 있다. 졸업 앨범에 교감 선생님이 남긴 성어로 기억한다.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 새끼와 어미 닭이 안팎에서 서로 쪼는 모습은 이상적인 사제지간을 그린다. 이에 더해 지난 학교 1층 로비에는 큰 글씨로 ‘교학상장(敎學相長)’이 담긴 액자가 있었다. 가르치고 배우며 스승과 제자가 함께 성장한다는 의미로 역시 사제지간의 노력과 정을 표현한다. 신영복 선생의 말이나 두 고사성어에서 느껴지는 스승의 역할은 제자들에 관한 나의 단상과 맥을 같이 한다. 선생은 그저 제자가 성장하는 걸 도와주고 함께하는 존재, 그걸 숙명이자 행복이라 인정하는 존재일 뿐이다.

‘청출어람(靑出於藍)’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는다. 사제의 정을 뜻하는 가장 유명한 고사성어라고 모두가 동의할 텐데 여기에 ‘빙수위지이한어수(冰水爲之而寒於水)’를 더할 수 있다. 푸른 빛은 쪽풀에서 나왔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고, 얼음은 물에서 나왔지만 물보다 더 차갑다는 말. 성악설로 유명한 ‘순자(荀子)’에서 나온 저 말은 교육을 강조한 순자의 의도와 자연스럽게 통한다고 본다. 그러나 나는 ‘청출어람(靑出於藍)’에서 또 다른 교사의 숙명을 읽는다.

그것은 이제 한 세대가 저물고 어느덧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서글픔이다. 떠나는 세대는 다음 세대를 위해 남김없이 그 빛을 다해야 하고 그럼으로써 다음 세대는 이전 세대를 뛰어넘는 축복을 누릴 수 있다. 여기엔 어떤 서운함도 없다. 오직 쪽빛을 뛰어넘어야 푸른빛이 되기에 선생은 제자가 자신을 넘어설 때 비로소 보람을 느끼는 존재이다. 왜 제자들에게는 시샘이 일어나지 않을까? 오래전부터 삶에서 답습된 자연스러운 영향이라고 본다. 독특하고 특별한 인간관계임이 분명하다.

가르침과 돌봄에서 아이들의 미래를 꿈꾼다면 모든 선생님은 결국 나아가며(進) 가야 할 길(路)을 함께하는 사람들이다. 그 아름답고 숭고한 과정의 결실인 제자들의 모습에서 무채색의 지난한 일상에 비타민 같은 생기가 돋는다. 반갑다 얘들아, 잘 커 줘서 고맙구나!

사진 한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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