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식의 철학, 노자 도덕경 산책(49)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4.03 07:46 의견 0

김준식(진주고등학교 교사)

황사가 심했지만 산 길 걷기를 포기할 수는 없다. 내 경험에 비추어 일주일 동안 학교 생활에서 쌓인 가볍고 얇은 스트레스를 털어내는 방법으로 이 만한 것이 없다. 얇은 스트레스도 쌓이면 무거워지고 무거워지면 몸이 반응한다. 나이가 60을 넘기면서부터는 그 반응이 제법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미리미리 털어내려는 것이다.

오늘 새벽녘, 커튼 사이로 달빛이 들어왔다. 음력 3월 20일 자정을 넘겨 나타난 하현의 달빛이 홀로 천지를 비추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달빛 따라 골짜기마다 영롱한 꽃들이 피어나니 하늘 아래 모든 사물은 쉼 없이 유지되고 있다.

『도덕경』 제7장 에서 노자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天長地久. 天地所以能長且久者 以其不自生 故能長生.(천장지구. 천지소이능장차구자 이기불자생 고능장생.) 천지는 영원하다(넓고, 오래 유지된다). 천지가 영원할 수 있는 것은 나만을 위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니 능히 영원할 수 있다.

여기서 長은 공간적 의미이며 久는 시간적 의미로 해석된다. 그리고 두 번째 구절의 ‘不自生’은 다양하게 해석(여러 학자들에 의해 매우 다양한 해석이 있다.)되나 스스로를 위한 삶이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문자에 근접한 해석이 아닐까 싶다. 즉 의인화하여 말하자면 노자는 ‘不自生’을 나와 타인의 생명을 모두 중히 여기는 자세로서 그것이야말로 천지가 오래 유지되는 원리라고 보았다.

오늘 새벽 달빛은 천지운행 과정의 일부이다. 수 억년 유지되었을 달빛을 받고, 자연의 원리대로 피어난 온갖 꽃들을 보는 것 자체가 바로 천지는 영원하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하여 20자를 뭉쳤다.

天長地久(천장지구)

昨夜朎半月 (작야령반월) 지난밤 반달 훤하더니,

萬壑纖妙莟 (만학섬묘함) 골짜기마다 묘한 꽃 피웠네.

無私不自生*(무사부자생) 사사로움 없고 내세움 없으니,

形諄成龍華*(형순성용화) 지극한 모습, 용화세계로다.

2024년 3월 30일 오후 3시 중범 쓰다.

* 無私不自生: 無私와 不自生은 근본적으로는 같은 의미다. 다만 해석함에 있어 무사는 사사로움이 없다로, 부자생은 내세움이 없다로 했을 뿐이다.

* 龍華: 불교 용어다. 미륵신앙에서 미래불인 미륵이 인간세계에 다시 올 때 龍華樹아래에서 설법한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됨. 이를테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는 의미인데 그 배경에는 기존의 질서는 모두 무너졌다는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다. 봄 꽃이 핀 것은 지난겨울의 모든 것을 혁파하고 다가올 시간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의미로 해석한 것이다.

사진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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