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순걸 】 밀주초등학교 이야기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3.14 06:45 | 최종 수정 2024.03.14 13:06 의견 0

박순걸(경남 밀주초등학교 교감)

밀주초에는 태어나면서부터, 혹은 어린 시절에 부모의 이혼으로 보육시설에 맡겨진 아이들이 많다. 지자체에서 아동학대로 이곳 저곳을 떠돌다 받아주는 보육원을 찾아 밀주초로 오게 되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 아이들과의 첫만남은 항상 강렬했고 대부분 비슷한 행동패턴을 보였다.

첫째, 어른들과 눈을 잘 마주치지 않는다.

둘째, 다른 친구 탓을 유독 많이 하고 억울함을 자주 토로한다.

셋째, 자기 것을 지키려는 욕심이 엄청 많다.

넷째, 종이 울려도 교실로 들어가지 않고 배회한다.

다섯째, 학교일과가 끝나도 돌아가지 않고 운동장에서 자주 배회한다.

이런 아이들이 가장 경계하는 것이 어른들의 엄한 명령조의 목소리와 권위를 세우고자 하는 행위다. 어릴 때부터 자기 것을 지키려고 빼았기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습관처럼 몸에 베여있다. 그래서 어른의 목소리만 들어도 상황을 바로 파악해 버리는 대단히 눈치가 빠른 아이들이다. 학교에서 누가 자기를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잘 파악하고 있어 제대로 된 마음이 전달되기 전에는 조금만 꾸중을 해도 피하고 도망가기 일쑤다. 어떤 때는 숨바꼭질 하듯 숨어버려서 학교 전체가 비상이 걸린 일도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최소한 도망만 가지 않도록 아이가 마음을 열어주고 어른의 마음을 이해하고 손을 잡아주기까지 지난한 기다림이 연속된다. '나는 너를 불쌍하게 보는 것이 아니라 너를 이해하고 너와 잘 지내고 싶다'라는 마음을 전달하기까지...

나는 이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려고 자주 꿇어앉는다. 눈길을 피하는 아이에게 '교감선생님 눈을 보고 이야기해야지'라는 말을 달고 산다. 종이 울려도 교실에 들어가지 않는 아이는 담임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함께 손을 잡고 생태운동장을 거닐며 같이 놀아준다. 그리고 끊임없이 이야기해준다. 지금 이 시간에 학생이 교실에 있지 않고 운동장에 놀고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아이가 스스로 교실에 들어가기까지 절대로 강요하거나 다그치지 않는다. 보육원에서 일학년에 입학하거나 새롭게 아이가 전학오면 일년 내내 반복되는 일상이다.

밀주초에 와서 1년만 지나면 아이들이 밝아지고 인사도 잘하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놀게 된다. 아이들은 왜 변할까?

첫째, 밀주초의 담임선생님들은 업무가 없다. 그러니 오로지 아이들의 수업과 생활지도에 일년 내내 충실할 수 있고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으니 아이들이 변할 수 밖에 없다.

둘째, 밀주초의 학부모들은 주말마다 온마을학교를 열어 오고 갈데 없는 아이들을 내 자녀보다 귀하게 챙기니 아이들 마음이 따뜻해 질 수밖에 없다. 마을학교에서 만난 친구의 엄마들에게 아이들은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병설유치원까지 180명가까이 되는 전교생의 이름을 모두 외우고 있는 학부모들이 밀주초에는 많다.

셋째, 부임한 지 일년도 안 된 실무사 선생님조차도 밀주초 아이들의 이름과 가정사를 훤히 꿰뚫고 있다. 밀주초의 기적은 학부모를 포함한 교육공동체 모두가 밀주초 아이 하나하나를 내 아이처럼 챙기고 보살피는데 있다. 특수실무사와 교무실무사, 돌봄선생님을 포함한 공무직가족들까지 모두가 전교생의 이름과 가정사를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

넷째, 마음이 따뜻한 교장선생님이 계신다. 교실로 들어가지 못하는 아이를 밀주교육공동체 모두가 마음을 열어 줄때까지 한 달 가까이 혼자서 교장실에서 아이를 데리고 있는 교장선생님이다. 교장선생님은 지금도 학교 곳곳을 누비며 상처입은 아이들을 품고 보살피신다. 아이들에게 단 한 번도 짜증을 내거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보지 못했다. 친엄마보다 더 친엄마답게...친할머니보다 더 친할머니답게 아픈 아이들을 보살피고 어루만지며 밀주초에서 교장으로 역할을 다하고 계신다.

경력이 제법 된 선생님인데도 불구하고 아이를 불쌍하게 대하는 것과 교육으로 접근하는 것에 대한 차이를 모르고, 마음 밭이 아픈 아이의 손을 잡아주고 기다려주는 것을 불쌍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선생님이 있었다. 아이에 대한 교육은 선생님만 하는 것이고 다른 이들은 교사가 요청할 때만 하는 것이라 주장하는 선생님이었다. 교육은 교사가 하는 것이고 교사의 권위가 교육의 승패라면서 학교의 다른 구성원들의 가슴 따뜻한 교육활동을 비교육적인 행위로 치부해버리는 것은 대단한 착각이다.

아이가 학교에 등교한 후부터 교육은 선생님만 하는 것이 아니다. 교사만 학생에 대한 교육을 할 수 있고 교사 외에는 구경꾼을 만드는 학교는 답이 없다. 쉬는 시간에 욕을 하며 싸우는 아이들을 보면 교장이든 행정실장이든 공무직이든 먼저 보는 사람이 즉시 개입해서 말려야지 구경꾼처럼 담임선생님에게 아이들 싸운다고 연락을 하는 학교는 교육을 포기해야 한다. 종이 울렸는데도 교실에 들어가지 않는 아이나 교문 밖을 배회하는 아이를 보면 아이 곁으로 다가가야지 교사가 아니라고 모른체 고개를 돌리는 학교 또한 답이 없다. 교사든 관리자든 일반직이든 공무직이든 교육청, 지원청이 아닌 학교라는 교육기관으로 출근을 하면 모두가 교육자가 되어야지 그들을 평범한 직장인으로 만들어버리는 학교의 교육 또한 가망이 없다.

아침에 교문에서 아침맞이 하며 보육원 선생님을 만났다. 밀주초에 다니는 보육원 아이들은 그 선생님을 '엄마'라고 부른다. 밀주초의 선생님들에 대한 고마움을 전한다. '밀주초라는 따뜻한 학교가 보육원 곁에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면서...

도리어 내가 감사함을 전했다. '밀주초 아이들의 엄마로서 우리 밀주초 아이들을 잘 보살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고개숙여 인사했다.

'아이는 이해를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도저히 못하는 것이다.' '아이는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는 것의 연속이다.'

삼십 년을 교육자로서 살면서 나를 지탱해온 철학이자 교육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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