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호의 임진강 노래 16】함께 산다는 것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2.14 07:15 의견 1

마을 회의를 거듭하면서 ‘마을에서 함께 사는 삶’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된다. 부지 하나 받아서 집을 짓는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한 것이어서 처음에는 이런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지만, 회의를 거듭할수록 함께 산다는 일이 쉽지 않음을 예감하게 된다. 새로운 과제가 등장한 것이다. 굳이 마을을 새로 만드는 이유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모여 살면서 기존의 사회에서 느끼지 못했던 만족을 느끼고자 하는 것인데, 그리되기 위해서는 산 넘어 끝없는 산을 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과정이었다.

마을을 따로 만들어 함께 사는 이유는 기존의 마을과는 달리 인정받고 존중받고 배려받는 가운데 심리적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 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나도 자신의 이기심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배려할 때 가능하다. 내가 다른 사람을 보살펴야 나도 다른 사람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상호이익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문제는 이런 사고와 생활습관에 우리가 잘 훈련이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나이 든 어른이라고 해서 자연스럽게 이런 방향으로 성숙된 도 아니고, 공동체 운동을 하거나 이론에 밝은 사람이라고 해서 이론 습관과 사고를 몸으로 체득한 것은 아니다. 공동체가 쉽게 만들어지고 쉽게 깨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공동체라고 하면 대개 우선 공동의 목표가 있고 함께 지켜야 할 공동의 규칙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수도자 공동체의 경우 확고한 공동의 종교적 목표가 있고, 엄격한 생활 규범이 존재한다. 수도자 공동체가 아니더라도 계획된 공동체라면 추구하는 목표가 있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공동의 규범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규범을 만들고 지키기 위해서는 구성원에 대한 태도부터 시작해서 공동체를 운영하기 위한 행정과 회계 등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법과 인격적인 훈련이 필요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공동체라는 것은 매우 인공적인 개념이다. 주류사회에서 보면 사회에서 일탈된 집단으로, 사회 주류의 가치나 생활방식이 문제가 있다고 보고 대안적인 생활방식을 찾는다는 점에서 일종의 도전이다. 자본주의적 생산과 유통, 소비 등 생활방식에 회의를 느끼는 집단이고, 의사소통과 의사결정에서도 가능하면 만장일치의 합의를 도모하는 비효율적인 집단이다. 사회의 규범에서 탈출하면서 다시 공동체의 자체 규범을 만들어 다른 사람, 다른 집단과 구별하려 드는 ‘이상한’ 짓을 하는 집단이다. 아나키스트였던 노자도 유무상생, 전후상수(有無相生, 前後相隨)한다고 했거늘, 근본에 충실하지 않고 세상을 악으로 규정하고 자기 공동체를 선(善)의 체제나 성(城)을 쌓는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공동체를 만들어 함께 산다고 해서 그 공동체가 저절로 공동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현실의 삶이 각박하다 보니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이런저런 시도도 많아지지만, 공동체의 이상을 현실화하기는 쉽지는 않다. 자기의 신념을 존중하고 끝까지 지키는 일도 중요하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일은 더 중요하다.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속과 달리 적당한 웃음으로 대하며 일정 간격 사이를 두고 사람을 대하는 표리부동(表裏不同) 인간관계의 안락함을 깨고 나와야 한다. 화장하지 않은 맨얼굴로 구성원을 대하고 다른 구성원들의 포장하지 않은 “쌩얼”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지도자를 세우되, 지도자에게 모든 것을 맡기거나 의지하는 것도 경계해야 할 일이다.

토종과 잡종의 이종 교배에 의해서 건강한 자연 생태계가 유지되고 번성하는 것처럼, 공동체와 기존사회(마을)의 협조, 구성원 각 개인의 인정과 존중, 다양한 가치와 신념체계, 공동체가 지향하는 공동규범 지향,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의 조화, 합리와 정의(情誼)의 적절한 버무림 등이 있어야 공동체가 굴러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늘그막에 나 혼자 산다고 풀씨 하나로 들판에 날아와 보니 갖은 역경과 혼란, 기쁨과 행복이 함께 하는 짱짱한 한세상이 열리는 것 같다.

풀씨 하나 날아와 풀꽃 하나 피었습니다

꼭꼭 잠근 창문을 어찌 들어 왔는지

작년에 보지 못한 풀 하나 빈 화분에

허약한 풀대를 힘겹게 들어 올리고

눈에 띄지 않게 작은 꽃 하나 피웠습니다

보이지 않아도 풀씨구름 꽃가루처럼 날아

잎은 잎끼리 뿌리는 뿌리끼리 어깨를 걸고

방학 동안 아이들이 비워둔 운동장에

비가 와도 끄떡없는 짱짱한 풀밭이 되었습니다

풀밭에 노랑 민들레 제비꽃 자주달개비

정신없는 꽃씨도 가끔씩 무리 지어 놀러 와

때로는 잡초라고 머리채 쥐어뜯기기도 하지만

이름이 없어 그저 풀꽃인 친구들과 한 식구처럼

초록 물결에 형형색색 우애를 피워 줍니다

사람의 발길에 묻거나 바람에 실리어

세상의 가장 작은 풀씨 단단한 바닥을 뚫고

아무 데서 맘대로 제멋대로 나고 자라서

이름 있는 꽃이나 없는 풀이나 나뉘지 않고

본디대로 어울리는 풀밭이 되었습니다

- 졸시, ‘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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