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영(신일중학교 진로진학교사
낮은 동네 뒷산을 오르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한 걸음, 한 걸음이 만들어낸 길의 편의에 감탄한다. 나는 어차피 역사라는 큰 바다에 물방울 같은 존재. 수천 년 이 산을 오르고 내렸을 선현들 덕에 깃털 같은 목숨이나마 부지하려 숨찬 등산 겸 운동을 한다. 한참 등산을 하며 최초에 이 산을 오르던 사람의 심정을 생각했다. 그를 따른 다음의 사람들, 그다음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산은 비로소 인간과 만나고 교류하게 된다. 길은 문명과 자연을 가르는 경계이면서 동시에 만남의 접점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동의(同意)와 합의(合意)이다. 그 동의와 합의를 어기면 추락이다. 그래서 길은 가장 안전한 안내이기도 하다. 누군가 최적의 동의와 약속을 다른 방향으로 무너뜨리면 그 기만 뒤에 남는 건 공동체의 붕괴이다. 길을 내는 사람의 든든한 뒷모습을 부러워하며 그가 이겨낸 위험과 고난의 해소에 감사하고 따라 걸어 나간다. 내 뒷사람의 안위 또한 그렇게 존속된다.
만일 누군가가 그 무한한 질서와 신뢰를 무너뜨린다면 그를 단죄하지 않고는 새로운 길을 낼 수 없다. 그렇지 못한 길은 불안하고 혼란스러워 제2, 제3의 기만자를 양성하고 다음을 모르는 각자도생의 파멸을 만든다. 그래서 따라갈 사람들의 기대 앞에 제 살길만 찾자고 모두를 파괴하는 자들의 기만은 즉시 평가, 단죄해야 마땅하다. 다음은 기약할 수 없고 신뢰할 수 없다. 그렇기에 모든 역사는 현대사여야만 한다.
‘길’을 만들어가는 내용처럼 우리의 ‘말’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하나의 단어가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손길과 정성, 그리고 합의와 동의가 쌓였을지 생각하면 아득하고 뭉클하다. 거기엔 사람들의 바람과 희망이 담긴다. 그런 말들이 많다. 희망은 힘이 세기 때문이다. 영화음악의 거장 존 윌리엄스가 작곡한 ‘Star wars’의 주제곡 이름은 ‘New Hope’이다. 우리 말 ‘새 희망’. 희망 앞에 무려 ‘새로운’이라니! 애써 영어를 떠올리니, 독일어도, 프랑스어도, 중국어도, 일본어도 좋다. 다른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저 멀리 그들의 똑같은 노고를 한 번 더 되새기는 일이다. 감동은 배가 된다.
학교에 간다. 아이들과 ‘인사’를 나눈다. ‘안녕’을 묻는다. 나는 ‘선생님’이다. 아이들은 내 ‘제자’들이다. 오늘 하루에만 지구상에 몇 번이 열렸을지 모를 ‘수업’에 임한다. 진로를 말하며 아직은 멀리 있는 아이들의 ‘꿈’을 얘기하고 ‘미래’를 나눈다. 아이들은 서로가 ‘친구’이다. ‘엄마’와 ‘아빠’의 기대를 말한다.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도움’을 준다. 교무실에는 학교 살림을 함께 꾸려가는 ‘동료’들이 있다. ‘감사’가 있고, ‘수고’와 ‘격려’가 있다. 내일을 ‘약속’하며 퇴근하는 ‘귀가’ 뒤엔 ‘가족’의 ‘사랑’을 만난다. 일상의 날들에 우리가 함께 살아가면서 만들어 온 ‘말’에서 무질서와 혼돈의 세상 속 기준을 찾는다. 거기엔 경이로운 안도가 머문다. 그 벅찬 약속들에서 감동하는 날들이 이어진다.
오늘은 우리가 쌓아 온 그런 ‘말’이 저 산 위에 굳건히 버티고 있는 ‘길’처럼 흔들리지 않고 끊임없는 ‘희망’이 되길 빈다. 힘들고 어려운 말들조차 애써 만들어진 이유는 결국 ‘개선’을 위함이라고, 우리는 무섭고 부조리한 세상에서 함께 기대며 새날을 만들라는 ‘믿음’을 품는다. 부디 잠시 비어 있던 말의 자리가 제 뜻에 충실한 백 퍼센트 순도(純度)의 ‘말’로 채워지길, 그리하여 온전한 ‘말’의 회귀가 이뤄지는 풍경이 펼쳐지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
츨처 디즈니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