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를 읽으면서 든 생각이 별난 사람은 지금이나 옛날이나 언제나 어디서나 존재하는구나 하는 것이었다. 춘추전국, 똑똑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 이론 한가지씩 들고 자신을 알아주는 왕과 나라를 통해 한 자리 차지하려고 떠들던 그 어지러운 제자백가, 백가쟁명 시대에도 이들과는 질적으로 다르게 별스럽게 사는 노자 같은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누구는 힘으로, 누구는 도덕으로 또 누구는 노동자의 힘으로 새로운 질서를 추구했다면, 이러한 인위적인 제도로는 결단코 세상의 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며 규범의 철폐(아나키)와 소국과민의 원시공동체를 주장하며 함곡관에서 5천 자의 짧은 글을 남기고 세상에서 종적을 감춰버린 사람이 노자였다.
세상에는 노자 정도는 아니라도 별스럽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 세상을 뒤집기 위해서 혁명과 민란을 일으키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세속의 오탁(汚濁)을 피해 깊은 산골로 숨어드는 사람들도 있다. 계층 사다리에 오르기 위해 사교육이든 사적 거래이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도권 교육체계를 휘저어 변형시키면서까지 하면서 개인(자식)의 유익을 도모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국가에 의한 교육이 아이들의 본성을 타락시킨다며, 최소한의 학교교육마저 거부하거나 대안교육의 길로 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의 주장이 어떠하든, 실천이 어떠하든 노자식으로 말하면 유위(有爲)를 통하여 있음을 추구하거나 없음을 추구하는 것이다.
<도덕경> 강의를 들을수록 무위지위(無爲之爲)와 무위자연(無爲自然)의 길을 이해하기는 어려웠으나,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원시반본(原始反本)이라는 노자의 가르침에 이끌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옛날에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많은 사람들이 미륵신앙과 도참사상에 의지했던 것처럼, 자본주의의 폐해가 현실화되고 세상이 각박해지면서 현대에 들어와서도 좀 더 적은 사람들끼리 좀 더 단순한 규칙을 가지고 상호 부조하며 사는 작은 공동체에 대한 관심을 가진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작은 학교를 다시 보기 시작했고, 농사에 대한 생각을 달리하게 되었으며, 마음공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같은 종교를 가진 작은 공동체 마을이 생기기 시작했다. 제법 큰 규모의 농사공동체도 생겼다. 대안학교가 생기고 삶과 교육에 대해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대안학교 주변에 마을을 이루면서 살기 시작했다.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대안마을이라는 이름의 공동체가 여기저기 생겨났다. 생각과 모양은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점은 완전한 형태는 아니지만, 주류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퇴장 또는 일탈과 같은 형식이었다.
연구목적으로 국내 대안학교와 북유럽 일부 국가의 공동체 마을 투어를 한 적이 있다. 대안학교마다 일종의 배경 사상이 있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생태주의, 질 관리 이론, 시간 관리 기법, 5차원 전면학습법, 마음공부 등에 기초한 학교 등 여러 종류의 학교들이 있었고, 학교를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도 대체로 그 학교가 지향하는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었다. 며칠간의 방문으로 뭐 얼마나 깊이 있게 살펴보았겠냐마는, 스코틀랜드와 덴마크, 스웨덴의 공동체 마을을 들여다본 적이 있다. 신입과 탈퇴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마을에서 어떤 일을 공동으로 하는지, 갈등이 생겼을 경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가는지, 공동체의 발생과 성장과 쇠퇴과정을 대략적으로 살펴보았다. 독서를 통해서 또 이런 과정을 통해서 세상의 많은 사람들과는 다르게 살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노자공부모임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은 그렇게 별스럽게 살고 싶은 사람들이 멀리 외국이나, 저기 지리산이나 대둔산, 월악산 아래나 영광이나 변산, 성미산 같은 곳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살고 있는 파주에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이미 논의 단계를 지나 임진강 가까운 마을에 땅을 사고 대지를 분할해서 마을의 마스터플랜을 구상하고 있는 단계라는 것이다. 노자를 가르치고 있는 교수님이 바로 이 가상의 마을의 주민이었던 것이다. 이들의 단체가 ‘예술로 농사짓고, 농사로 평화짓’는 (사)‘평화마을짓자’였다.
사람은 길을 내고 산다. 정치와 종교와 사상이 사람이 낸 길이다. 새길이 오래되어 낡고 관습이 되면 사람들은 새길을 찾아 나서게 된다. 새길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은 늘 외롭고 별스럽게 살아 주위의 눈총을 받지만 길은 이들에 의해 새롭게 창조된다. 성을 부수고 익숙하지 않은 길을 찾아 떠나는 유목민들에 의해 세계사는 계속 쓰이는 것이다.
풀씨처럼 가볍게 땅에 떨어져
바위보다 억센 목숨으로
안갯속을 뚫고 우리는
각자 자기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길은 보이지 않고
세상은 고독 속에 쌓여 있다
곁에 손 뻗어 잡을 벗 하나
곁에 있으면 좋으련만
외로움만이 벗이 되리라
밥 말고도
약간의 온기가 필요하지만
온전한 어둠뿐이다
사는 일이란 결국 가만히 눈을 뜨고
다가오는 빛을 찾아 더듬어 갈 뿐
오직 할 수 있는 일은
운명을 끌어안고
자신을 찾아 먼길을 떠나는 것이다
쉽게 안주하지 말라
- 졸시, ‘길을 찾아서’, 시집 <어머니는 이제 국수를 먹지 않는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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