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향미 교장의 교육 】편지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1.03 08:48 | 최종 수정 2024.01.03 08:52 의견 1

'노량'을 보고 늦은 저녁을 먹고 집에 들어오다가 오랜만에 우편함을 살펴보니 뭔가 꽂혀 있다. 빼보니 카드 같다. 손글씨로 쓰여있는 겉봉. 강한울? 누구지. 주소는 인천이다. 강수돌샘 막내 한울이가 나에게 편지를 썼었을 리는 없는데, 인천에 살지도 않을 테고. 엘베를 타서 열어보니 크리스마스 카드 속에 이렇게 정성스런 편지가 들어있다. 와~ 얼마만에 받아보는 크리스마스 카드인지.

오래전 크리스마스나 새해가 되면, 좀 과장해서 책상이 덮일 정도로 학생들에게 카드를 받았다. 편지를 많이 쓰던 시절, 일 년 동안 나에게 매일 편지를 보낸 학생도 있었다. 생각난 김에 그 예쁜 제자를 잠시 자랑해야겠다. ㅎ

부산진여상에 근무할 때, 그러니까 교직 3년차, 전설의 80년대였다. 3월 초, 수업 마치고 교무실에 오니 책상 위에 편지가 한통 놓여있다. 단정한 글씨가 너무 예쁘다. 내용은 더욱 예뻤다.

- 선생님, 저는 3반에 정란이라는 학생인데요. 선생님께 매일 편지를 쓰고 싶어요. 괜찮으시면 내일 우리반에 들어오시면 칠판에 동그라미를 써 주시고 싫으시면 가위표를 써 주셔요.

세상에나, 이런 애가 있다니. 매일 편지를 쓴다고? 그게 가능한가 싶었지만 나보고 쓰라는 것도 아니고 편지를 받아줄 거냐고 묻는 이런 사랑스런 요청을 거절할 사람이 어디 있겠나. 당연히 다음날 수업 들어가서 말없이 칠판 한가운데 커다란 원을 그렸다. 애들은 그게 뭐냐고 물어댔지만 그런 게 있다고 비밀스럽게 웃었다. 처음 제대로 찾아본 정란이만 부처를 보는 가섭처럼 웃고 있었다.

다음날 설레는 마음으로 학교에 오니 진짜 편지가 놓여있다. 봉투와 편지지와 글씨가 정말 예쁜, 내용은 더욱 사랑스런 편지를 일년내내 받았다. 그 녀석 진짜 일 년 꼬박 편지를 보냈던 것이다. 일기도 매일 쓰기는 어려운데, 편지를 매일 쓰다니 놀라운 사람이었다. 내용은 가족, 친구, 공부 등등 이런저런 일상의 얘기들이었다. 얘는 왜 나에게 편지를 쓸까, 생각해 봤다. 혼자 일기를 쓰는 것보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이 훨씬 기분이 좋겠구나 싶었다. 신뢰하는 누군가가 자기 얘기를 들어준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열리니까. 나도 종종 답장을 해 줬다. 정란이보다 필체가 너무 나빠서 늘 좀 부끄러웠지만, 녀석처럼 이런저런 일상의 얘기를 써서 퇴근할 때 책상에 정란에게, 편지 봉투를 올려놓았다. 아침에 조향미선생님께, 새 편지가 올라와 있었다. 연인 사이라도 그러기는 쉽지 않을 테다. 젊은 교사와 학생은 그렇게 벗이 되었다.

그렇게 꼬박 일 년 편지를 주고받고 한 해가 끝나고 정란이는 3학년이 되는데, 나는 고민을 했다 얘들을 따라 3학년에 올라갈까. 그럼 3년이나 같은 애들을 만나는 건데, 애들도 나도 좀 지겹지 않을까. 초임 때라 3년을 꼬박 배우고 가르치는 깊이와 감동을 모를 때여서, 그리고 학생들 취업 준비를 해 주기엔 내가 모르는 게 많은 것 같아서 그냥 1학년을 신청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쉽다.

1학년을 맡으면 생활기록부 기본사항이 1학년 담임의 필체로 들어가는데, 내 악필을 그 귀한 자료에 남긴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내가 교사를 해야겠다 생각했을 때, 제일 자신 없는 게 글씨였다. -선생님들은 모두 글씨가 참 예쁜데, 나는 내 글씨가 너무 싫었다. 그래서도 학창 시절에 필기를 잘 안 했다. 세밀하지 못한 성격 탓이기도 했지만. 교사가 되어서도 교무수첩을 꼬박꼬박 써 본 적이 없다. 그러고도 무사히 40여년 교직 생활을 무사히 마치게 되었으니 감사할 뿐이다.

정란이에게 부탁하기로 했다. 학생들 이름을 한자로도 썼던 때인데, 한자는 특히 내 글씨를 도저히 내가 봐줄 수가 없었다. 여상에 다니는 학생들은 따로 연습을 하는지 모르겠으나 대체로 필체가 좋았다. 그 중에도 정란이가 최고였다. 그 녀석 글씨가 자신 있어서 그렇게 길게 편지를 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불러서 생기부 원본을 내밀었다. 미안하지만 여기 기본사항 좀 좀 써 줄래, 너 알다시피 내 글씨가 너무 별로라서. 정란이는 방긋 웃으며 50명이 넘는 한 학급의 생기부를 받아갔다. 그리고 이삼일만에 뚝딱 써 왔다. 3학년에 올라가선 편지를 안 썼으니 그 정성으로 후배들 생기부를 썼겠지. 그리하여 그 해 1학년 10학급 중에 우리 반 생기부 제일 글씨가 멋있었다. 물론 내가 세부사항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지리멸렬해졌지만. 그래도 나도 정란이 필체를 따라 쓰려고 나름 정성을 다했다.

(정란이와는 그 후로 연락을 하고 살았다. 그 오랜 벗은 현재 은행 지점장님이시다. ^^)

강한울. 강화고등학교 2학년. 겉봉 주소에는 기찻길학교라 되어 있으니, 김중미 선생님께 내 얘기를 들은 모양이다. 학생들과 나눈 대화를 페북에 몇 번 올렸더니 그 얘기를 해 주셨나 보다. 교장샘이 학생을 만나서 대화를 나눈다니 정말 좋다고 썼다. 자기 학교 교장샘은 만나기가 쉽지 않다고.

그런 관행 때문에 나도 학생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교장이 되어 가장 아쉬운 게, 학생을 직접 만날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수업도 평가도 안 하므로 학생들 만날 시간은 더 많은데, 교장이 학생을 불쑥불쑥 만나는 것을 선생님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을) 것 같았다. 그리고 학생들도 교장실로 오라고 하면 일단 놀란다. 교장실에 갈 정도면 크게 잘했거나 크게 잘못한 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뭐 그렇기도 하다. 학폭, 선도위, 교권위, 그리고 학년이나 학생부에서 교육이 어려운 학생들을 간혹 나에게 보내기도 하니까.

하지만 나는 정말 학생들을 더 자주, 편하게 만나고 싶었다. 학생들의 마음을 끌어내는 일에 내가 어느 정도는 소질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건, 내가 굴곡 많은 삶을 살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학창시절엔 모범생이었지만 성인이 되어 나의 인생은 매우 드라마틱, 다이나믹했다. 그래서 사람의 내면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 것 같다. 심리학과는 다른 마음공부, 선공부를 하고 있기도 하고..

하지만, 저 친구 만나봐야겠다 생각했던 많은 학생을 못 만나고 학교를 떠나게 될 것이다. 새해에도 아이들과 행복한 얘기를 들려달라고 심수환샘이 댓글을 다셨던데, 새해에도 아이들을 만날 기회가 있을까. 이제 학교의 틀을 벗어나면 어디에서 학생들을 만날 것인가. 드디어 공무원이 아닌 민간인 시민이 된다는 것, 오랫동안 고대하던 자유인의 삶을 사는 것, 설렌다. 하지만 학생들을 더 만나지 못할 거라는 것, 그들의 아픔과 슬픔, 기쁨과 자랑의 얘기를 듣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먹먹해진다. 지겨워하기도 했던 교직 생활이 얼마나 축복이었던지, 힘들다 힘들다 하지만 세상에 교사만큼 나날이 새로운 직업이 있는지. 예전에 내가 배웠던 선생님들은 왜 교직을 다람쥐 쳇바퀴 돌듯한 삶이었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매일 매일 새로운 사건이 일어나는 곳이 학교인데.

물론 그 사건들이 한결같은 속성을 갖고 있긴 하지. 그리고 가르치고 가르쳐도 정말 변하지 않는 학생들이 있기도 하지. 하지만, 모든 선생님이 온 마음을 다해서 가르치니 학생들이 정말 놀랍게 변화한 감동을 맛보았다. 아, 그동안 내가 사람에 대해서 정말 잘 몰랐구나. 아이들의 내면에 어떤 씨앗이 있는지. 그것이 언제 어떻게 싹을 틔우는지에 대해서. 3년을 가르치면 발견하게 된다. 물론 깊은 관심과 호기심이 있어야 한다. 교사란, 사람에 관한 관심과 삶에 대한 호기심이 큰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도 그런 사람이어서 교직을 택했던 것 아니고, 사실은 문학을 하려는 방편으로 택한 직업이었다, 하다 보니 점점 그렇게 되었던 것 같다. 청소년기 아이들은 제일 덜 예쁜 중닭처럼 미운 짓도 하지만, 중닭이 점점 멋진 장닭이 되어가는 과정은 와! 정말? 이런 감탄사가 나오게 하는 일들이 종종 있다. 그래서 제각각 다른 그들의 성장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교사만큼 감동적인 직업도 드물다고 생각한다. 의사? 법관? 아무래도 교사에는 못 미칠 것 같다.

그런데 그러한 성장은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교사 한 사람의 힘으로는 안 된다. 학교 전체가 사랑과 정성의 공동체가 될 때 가능하다. 나는 그런 학교를 경험해 보았다. 만덕고 시절, 그리고 지금 우리 학교에서. 혁신학교, 다행복학교라는 정체성을 가진 덕이다. 처음부터 그렇진 않았다. 갈등도 불만도 사건도 많았다. 조금씩 조금씩 매년 좋아졌다. 지금도 아쉬운 건 많다. 하지만 학교의 가치와 비전에 대해서는 대부분 동의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선생님이 학생들을 위해서 정말 정성을 다한다. 그래서 그런지 교사가 되겠다는 아이들이 진짜? 싶을 정도로 많단다. 2학년엔 체교과를 빼고도 20명이 된다나. 방학 직전 학예전 사회를 봤던 1학년 부회장, 와 저 녀석 멋지네 싶은 그 녀석도 교사가 되고 싶단다. 학부모 독서모임에서 만나는 어머니기도 해서, 함께 참여한 3주체 인문학기행 때 쓴 멋진 소감문을 캡처해 보냈더니 이런 답신이 왔었다.

이제 손 편지는 거의 사라졌지만, 이렇게 금방금방 주고받을 수 있는 짧은 편지도 사람들을 더 잘 연결하고 세상을 활짝 열리게 한다.

*참, 우리 2학년 반장들이 어떻게 알고 내 생일이라고. 주민번호상 출생일. 함께 쪽지를 써서 모아왔다. 감동받아서 사진도 찍고 한글로 타이핑해서 보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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