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필의 교육단상, 키질하는 교육

전종호 주간 승인 2023.11.20 07:33 | 최종 수정 2023.11.21 03:54 의견 0

내가 다닌 초등학교 졸업생은 2학급 140명이었다. 이 중 반 정도가 중학교에 진학했고, 다시 이 중에서 반 정도가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대학에 간 사람은 열 명이 채 되지 않았다. 농사짓는 면적에 의해 빈부를 가늠할 수 있었겠지만, 어린 우리 눈에는 자전거나 텔레비전이 있는 집이 살림이 좀 나은 것으로 판단했을 뿐, 계층의 차이를 느끼는 일은 없었다. 온 국민이 대체로 평등하게 가난했던 1971년 일이다.

고등학교는 6학급 360명 정도가 졸업했다. 시골에서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이 모여 치열한 경쟁을 거쳐 100여 명이 교사가 되었고, 30여 명이 의사, 변호사, 회계사, 교수, 장군이 되었다. 회사나 은행에 들어간 친구들은 중역이 되거나 지점장 등 중간 간부가 되어 퇴직했고, 두어 명은 고향에서 국회의원이 되거나 군수가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찌감치 공무원이 된 친구들도 여남은 명 있었다. 당시 우리 대부분은 농부의 자녀들이었고 선생님을 부모로 둔 아이들이 더러 있었다. 하숙을 하는가 자취를 하는가 정도의 차이에 의해서 형편이 드러났을 뿐, 학생들 간 위화감 같은 건 없었다. 특별하다면 자녀교육에 목을 걸었던 눈 밝은 부모들이 배경에 있었다는 점이다. 1977년의 일이다.

처음 교사를 했던 학교는 공업고등학교로 비교적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왔다. 당시만 해도 학교 소재지뿐만 아니라 광명, 성남, 안산 같은 인근 도시의 학생들이 모였고, 더러는 충청도 같은 먼 지역 학생들이 유학을 오기도 했는데, 점심 도시락이 문제가 되거나, 수업료 독촉이 교사의 주요 업무일 정도로 경제적 곤란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비교적 균일하게 가난한 학생들은 의리를 지키며 서로 잘 지냈고, 졸업 후 대부분 회사에 취직하여 당시 ‘3저 호황’에 힘입어 고만고만한 중산층 대열에 합류했다. 더러는 사업을 일구어 성공한 친구들도 있고 공직에 진출하기도 하였다. 80년대 후반의 일이다.

교감으로 근무했던 두 개의 학교는 일산 신도시 안과 바로밖에 있었다. 두 학교 모두 전에 근무했던 농촌 학교와는 달리, 학부모의 진학과 학교참여 열기가 후끈했다. 두 학교 모두 특색있는 교육과정을 운영하여 입시에서 나름의 성과를 냈다. 신도시 밖에 있었던 학교는 과학중점학교로 이공계 진학에서 두각을 보였다. 신도시 안의 학교는 두루 좋은 성과를 냈고, 거의 해마다 최저등급을 맞춰 지역균형선발로 문·이과에서 서울대 2명의 합격자를 배출했다. 강남권이나 특목고 등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보통 일반계 고등학교로서는 최상의 결과였다. 두 개 학교 모두 학부모들은 자녀의 대입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차이가 있다면 부모의 직업군에서 전문직의 비중과 ‘서울 주요 대학’의 합격자 분포에서 차이가 있었다. 70년대 초중반생인 학부모들은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시대에 용케도 정규직 트랙을 걸었던 세대라고 판단된다. 2010년대 후반의 일이다.

교장으로 일했던 학교는 신입생 150여 명 중에서 기초학력 미달자가 59명이고, 국어와 수학의 복수 학력 미달자가 19명이었다. 이들 중 80%는 임대아파트 안에 있는 초등학교 출신이었다. 국민임대 아파트 입주 자격이 소득수준 4분위 이하여서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었고, 맞벌이나, 한부모 또는 조손가정의 아이들이다 보니 실제 도움받는 손길이 적어 학습결손이 누적된 결과다. 아이들의 반 이상은 특성화고등학교에 진학했다. 70년대 후반생 학부모들은 경제적 위기 시대를 통과하면서 직업 생활이 고단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2020년의 일이다.

돌이켜 보면, 70년대까지는 아직 계층 분화가 급격히 이루어지지 않은 절대적 빈곤의 시대여서 개인의 노력으로 교육을 사다리 삼아 계층 상승이 가능했던 시대였다. 1998년 외환위기가 터지기 전까지는 그래도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작동되어 대졸자는 물론 고졸자도 본인이 성실하게 노력하면 작은 것이나마 사다리를 타고 완만하게 어느 정도(부모보다 높은)까지는 피라미드 위쪽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산업구조 재편과 일자리 성격 변화로 교육은 계층이동의 사다리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내 주변의 경우, 땅 팔아 대학 간 사람들과 초등학교나 중학교만 나오고 땅을 지킨 사람들의 자산규모나 소득이나 생활 수준은 크게 차이가 없지만, 그 자녀들의 학력과 직업을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가 있다. 같은 나이인 내 초등학교 동창생들과 고등학교 동창생들 자녀들의 직업을 비교해 보면 그 차이는 더 커진다. 고등학교 동창생들 자녀들은 의사, 법조인, 대기업 사원, 교사 등이 다수지만, 초등학교 동창생 자녀들에게서는 이런 직업을 찾기가 쉽지 않다. 공고를 나온 제자들의 자녀들과 당시 명문이라고 알려진 인근의 일반계 고등학교 졸업자의 자녀들을 비교하면 아마도 유사한 차이의 경향성이 드러날 것이다. 신도시와 소규모 구도시의 학부모들은 외환위기 이후 강화된 이중노동시장 내 편입된 시장의 지점이 어딘가에 따라 사회경제적 지위가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

나의 생애사를 통해 우리 시대의 계층이동 과정을 들여다보고 있다. 한 명씩 보면 성공 스토리지만, 동창생이나 제자들의 집단을 함께 들여다보면 세대 내, 세대 간 계층이동의 과정이 학자들의 연구 결론과 유사함을 발견하게 된다. 학번을 가진 베이비붐 세대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자녀들에게 세습되고 있다는 점, 70년대생 부모 세대의 경우 편입된 노동시장(정규직, 비정규직 트랙)에 따라 자녀들의 교육 조건이 달라진다는 점, 분절적 노동시장이 존재하고 있고, 대기업과 공공부문이 속한 1차 노동시장(임금 상위 20%)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서울 주요 대학(성적 상위 20%)’을 나와야 하는 이중선별체제로 움직이는 사회작동 기제를 알고 있는 부모들이 있는 반면, 하루하루 먹고사는 문제에 치여 자녀교육에 몰두할 수 없는 부모들이 있다는 점, 이 자녀들의 교육격차와 그로 인한 사회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는 점 등등이다.

86세대 이후의 지위와 학력이 90년대 생의 자녀 세대에게 세습되는 것은 통계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SKY 입학생의 75%는 소득수준 9-10분위에 해당하는 부모의 자녀들이다. 86세대까지 계층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하던 교육이 그 자녀 세대에 와서는 재생산 수단이 되고 있는 것이다. <세습중산층사회>의 저자 조귀동에 따르면, 번듯한 직업의 경계는 소득수준 7분위이며 이 이상의 자리는 거의 ‘서울 주요 15개 대학’의 학생들의 차지다. 실제 ‘서울 주요 대학’은 고등학교 내신 또는 수능 3등급 이상(상위 23%)의 학생이 차지하게 되는데, 이 학생들 부모의 소득수준이 대략 7분위 이상일 것으로 추측되므로, 20대 80의 사회구조 속에서 계급이 교육을 통하여 재생산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보인다. 한때 계층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했던 교육제도는 이제 사다리를 걷어차고 오히려 입시제도를 통해 알곡과 쭉정이를 가리는 키질(winnowing)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사다리는 끊어진 것이 아니라, 부자계층의 사다리는 튼튼해졌고, 가난한 계층의 사다리가 제거된 것이다.

70년대 이후 미국의 계급구조 변화를 연구한 퍼트넘의 <우리 아이들>은 소득 상위, 하위 30%의 세대의 가족구조, 양육형태, 학교교육, 마을공동체 차원을 비교하고 있다. 상위층은 이혼도 많이 하지 않고, 무계획적인 임신도 하지 않으며, 자녀의 집중양육, 튼튼한 사회관계망의 지원을 받는 반면에, 하위층은 깨지기 쉬운 가족(fragile family) 구조 안에 무계획적인 임신과 반복적인 이혼과 재혼, 자연적 양육에의 의존, 사회적 자본 부족 등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 상·하위층이 다니는 학교는 서로 다르고, 각 학교는 재정투입 면에서는 크게 차이가 없지만, 부모가 동원할 수 있는 사적, 문화적 네트워크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리나라도 미국의 계급 이동과정을 밟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학교마다 동일한 재정투입 조건을 갖추고 있지만, 제공하는 프로그램의 수나 질은 학교마다 다르다. ‘정상가족’이 특권이 되고 있고, 학교폭력의 빈도와 강도도 학교 수준에 따라 다르다. ‘학교효과’ 이전에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고 오는(또는 가지고 오지 못하는) 부모의 사회경제적 조건과 사회적 자본의 동원체제가 다르다. 한국판 ‘콜맨 보고서’다.

밤마다 잠자기 전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부모가 있는 반면, 아이를 집에 홀로 두고 밤샘작업을 해야 하는 부모가 있다. 유리천장을 깨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남의 유리천장을 유리바닥(glass floor)으로 디디고 서 있는 사람들도 있다. 성공한 사람들의 자녀 세대가 벌이는 이른바 ‘영끌’의 아우성을 아프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다. 희망조차 격차가 되어서는 안 된다. 공정과 정의가 논의되는 방식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글 전종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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