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영(신일중학교 진로진학 교사)
십여 년 전 출근길에 라디오에서 한 경찰관의 얘기를 들었다. 소설가 백영옥 님의 에세이집에서 따온 내용을 DJ가 들려주었는데 프로파일러 권일용 님의 말이다. “제가 원해서 이 직업을 택한 건 아닙니다. 먹고 살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경찰이 된 거예요. 제가 이 일을 하는 건 유별난 소명 의식 때문이 아니에요.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일이고 도움을 주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자 크롬볼츠는 말했다. 성공한 사람들의 80% 정도가 예기치 않은 우연으로 결정된다고. 그리하여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적성에 맞는 직업을 고르게 하는 것보다 살며 경험하는 무수한 우연을 대하는 태도를 가르쳐야 한다고. 나는 그의 ‘계획된 우연’이라는 주장에 공감했다. 그날 아침에 라디오로 들은 경찰관의 사연도 그런 느낌이었다. ‘내가 꼭 이 일을 좋아해야만 하는 걸까?’ ‘나는 지금 정말 꼭 원하는 꿈을 이루고 사는 걸까?’ 그즈음 학교 일에 지쳐있던 나에게 그 말은, 내가 꼭 꿈꾸는 일을,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있지 않아도 그저 누군가에게 필요한 일이고 소소한 보람을 얻을 수 있으며 삶의 안위를 허락할 수 있는 일이라면 충분한 거라는 작은 위로를 안겨 주었다. 그리고 흐른 노래 Beatles의 ‘Let it be’에 운전하다 말고 주책맞게도 눈물을 흘렸다. 매사 그저 순리대로 해야 할 일이다.
철학자 알랭드 보통은 그의 직업 관련 책들에서 모든 직업에 내재해있는 다양성을 얘기한다. 그가 살펴본 바 한 직업 속에도 다양한 역할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러 측면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선생님도 그렇다. 우린 진로 지도를 할 때 선생님이 되기 위해선 사회성 지수, 즉 타인에게 공감하는 능력이 크고, 배려심이 깊으며, 희생하는 마음이 클수록 적합하다고 본다. 또한 무엇보다 다른 사람에게 가르침을 행하는 걸 좋아하며 진심으로 자라나는 아이들을 사랑할 수 있는 성향이 클수록 좋다고 본다.
그런데 학교 현장에서는 그런 막연한 성향들이 너무도 다양한 변수와 역할들로 인해 딱 맞게만 적용되진 않는다. 우리가 화사한 햇살이 비치는 교실에서 차분하게 한 아이를 바라보고 미소를 짓는 어떤 선생님의 이미지를 그릴 때, 그건 액자 속에 갇혀 있는 정지된 그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모습일 뿐이다. 때론 수업 분위기를 망치거나 일탈하는 학생들을 엄하게도, 자상하게도 지도할 줄 알아야 한다. 어떤 선생님은 청소 등의 기본 습관을 잘 지도해서 학급을 깔끔하고 안정감 있게 관리하는 능력이 탁월한 분이 있다. 교육과정이나 시험 시간표 등을 작성하는 업무를 할 때 문과임에도 수학적 감각이 뛰어난 선생님이 있고, 코로나 상황처럼 아무도 겪어보지 않은 순간에는 일의 진행을 한 단계 먼저 예상하고 선제적 대응을 하는 기획력이 뛰어난 선생님도 있다. 어떤 선생님은 시험 문제 출제에 탁월해서 좋은 문제로 좋은 수업을 견인하기도 한다. 중등교육에서는 교과별로도 선생님들의 성향이 다양하다. 그래서 실제로 ‘교사’라는 직업에서 떠올리는 모습이 현장에서는 수많은 역할로 분화되어 나타나게 된다. 나의 경우도 그랬다. 수업을 하는 기쁨도 좋고 학생들을 지도하는 즐거움도 컸으나, 음악 동아리를 하며 축제를 준비할 때나 학년 부장을 하며 선생님들의 의견을 조율할 때 각각 다른 모습으로 생활하는 경험을 해왔다. 겪어보면 나에게 맞는 일, 즐거운 일이 분명히 나타난다. 선생님이 되기 전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다.
며칠 전에 한 남학생이 상담을 신청했다. 전주에 있는 모 자사고에 가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있던 그 학생은 예상대로 높은 성적을 유지하고 훌륭한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소 어두운 아이의 표정에서 현재 자신의 진로에 대한 깊은 고민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는 의대를 목표로 해당 자사고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자소서를 쓰면서 자신이 정말 의사로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지 고민된다고 했다. 높은 성적에 여러 선택지가 가능한 상황, 앞날이 밝게만 열릴 것 같은 이 학생에게도 자신이 여태까지 한 노력이 헛되이 느껴지고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 것 같은 불안감은 그렇지 못한 학생들과 같은 크기일거라 생각했다. 행복한 고민은 없는 거라고 얘기했다. 아이의 적성을 살펴보고 현재의 직업 흥미를 보았을 때 사실은 의사를 해도 괜찮은 성향이었다. 가장 큰 불안감은 의사가 되기 위해 최소 10여 년을 해야 할 공부의 무게였고, 실제 환자를 진료하면서 예상되는 과로와 힘든 일상이 그다음이었다. 이 아이는 그러면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을 밝혔다. 하고 싶은 게 더 있었던 것이다.
윤리 교사로 지낼 때 이른바 ‘던져진 삶’에 관한 실존주의자들의 얘기를 가르쳤다. 삶의 주체적 의지가 우리에게 힘을 주지만, 그 전에 우리는 어떤 존재들인가? 내가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것에 아무런 이유는 없다. 상담한 아이에게는 그 점을 나누고자 했다. 의사가 되고 싶다는 마음도, 그게 부담되어 살짝 더 편해 보일 수도 있고 그러다 보니 나한테 맞는 다른 분야가 있는 것 같기도 해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싶은 것도 다 너를 이루는 모습일 뿐. 일단은 그 자사고를 준비하면서 이런 고민을 충분히 할 수 있음에 고통보다는 즐거움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만일 학교를 포기해도 전혀 나쁜 선택이 아닌 하나의 결정이라고 얘기했다. 그래도 그 학교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면 그건 경영학도건, 의사건 어떤 기회도 버리지 않고 가는 것이고 그런 점을 자소서에도 솔직히 표현하면 좋겠다고 했다. 고등학교 생활을 통해 자신의 진로를 더욱 명확히 잡아가는 건 자연스럽고 권장할 만한 일이다. 이제 중학교 3학년 아이가 무언가를 확고하게 결정하는 게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거라고 말했다. 아이에게 충분한 위로가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나와 나눈 45분 동안의 얘기로 그 아이는 이제 교실에서, 복도에서 나를 만날 때 그전과는 다른 눈빛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상담 신청을 하며 교무실 문턱을 넘었고, 고민을 나누었다는 점에서 자신을 알아봐 줄 수 있는 사람을 한 명 더 얻었다는 점이 작지만 도움이 되었으리라고 믿는다. 끝으로 무심코 들어본 장기하의 노래 가사가 진로 교육의 철학으로도 손색없기에 소개하고 글을 맺는다. 곡명은 ‘그건 니 생각이고’이다.
‘이 길이 내 길인 줄 아는 게 아니라/그냥 길이 그냥 거기 있으니까 가는 거야/원래부터 내 길이 있는 게 아니라/가다 보면 어찌어찌 내 길이 되는 거야/그냥 니 갈 길 가/미주알 고주알/친절히 설명을/조곤 조곤 조곤 조곤 해도/못 알아들으면 이렇게 말해버려/그건 니 생각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