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식(진주고등학교 교사)
풀을 찾아 1,600㎞(한반도의 거의 두 배)가 넘는 거리를 평생 이동하는 동물이 있다. 정식 명칭은 누(Gnu)이고 영어로는 Wildebeest라고 부른다. 아프리카 남동부 지역(세렝게티 평원 – 마사이족 언어로 끝없는 평원이라는 뜻)의 생태계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이 소과 동물은 거의 수천 마리씩 떼 지어 움직인다. 떼 지어 강을 건너고 떼 지어 초원을 횡단하는 그들은 주변의 포식자들 사자, 하이에나, 표범, 치타, 들개들에게는 참으로 고마운 존재들이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나타나 먹이를 제공해 주고 다시 사라져 주는 존재들. 수 만년 동안 지속되었을 이들의 이동을 두고 학자들은 별별 가설을 다 세우지만 여전히 아무도 이동의 원인을 모른다. 오로지 누우 떼들만 알 것이다.
나의 관심은 누우 떼들과 사자를 비롯한 먹이 사슬의 정점에 있는 동물들의 관계다. 사자들은 무리를 지어 다니는 누우 떼들 중 새끼, 노쇠한 누우를 공격하여 먹이를 얻는다. 비정하지만 누우 입장에서는 무리의 규모 조절 측면에서 유용한 방법이다. 어차피 멀리 움직이는 이들의 본능으로 볼 때 낙오자들 탓에 속도가 느려지고 속도가 느려지면 목초지를 얼룩말이나 다른 영양 무리들에게 뺏기게 된다. 이 문제점을 사자가 해결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 관점이 맞는지 모르겠다. 이미 내 머릿속에도 엄청난 지배 이데올로기가 꿈틀거리고 있으니…
강을 건널 때는 악어에게도 이런 방식으로 먹이를 제공한다. 따지고 보면 아프리카 남동부 생태계의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존재들이 누우 떼들이다. 대한민국에서 민중을 누우 떼로 보는 존재들이 있다. 누우처럼 우리 역시 그 어떤 공격 무기도 없다. 사자의 이빨과 발톱, 하이에나의 턱, 표범과 치타의 속도가 우리에겐 없다. 오직 방어용으로 있는 누우 떼의 뿔처럼, 그리고 죽자 살자 달리기 위해 강해진 누우의 발목처럼 몇 개의 방어용 무기가 있을 뿐이다. 상고 이래로 우리 민중들은 지속적으로 권력을 가진 지배 계층에게 모든 것을 제공해 왔다. 아프리카의 누우보다 더 열심히 그들을 위해 싸웠고 그들을 위해 피 흘렸다. 그것이 생태계라고 권력이나 금력을 가진 존재들은 말할 것이다.
21대 대통령 선거가 진행되는 대한민국, 권력과 금력을 가진 그들은 잠시 누우 떼를 경배한다. 자신들의 권력과 금력의 원천이기도 한 누우 떼에게 아주 잠깐 고개를 숙이고 그들을 섬기는 태도를 취한다. 정말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저들은 자신들의 성취를 위해 누우 떼들에게 지지를 호소한다. 권력의 원천이며 금력의 제공자인 누우 떼들의 중요함을 알고 있어서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우리는 알고 있지만 그들의 설계에 따라 다만 잠시 그 순간에 취할 뿐이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고 모든 것이 결정되는 순간 그들은 다시 무리를 지어 누우 떼를 공격하고 피의 성찬을 즐길 것이다. 자신들은 이 땅에서 그래도 되는 존재인 것으로 믿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초원처럼 이 땅을 저들의 식욕을 채울 사냥터쯤으로 여기는 것이다.
노자께서는 도덕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民不畏死 奈何以死懼之?(민불외사 내하이사구지?) 『도덕경』 74장 일부 백성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어찌 죽음으로 그들을 두렵게 하겠는가?
야생의 누우 떼는 수 만년 동안 포식자의 먹이로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많지만 우리는 결코 누우 떼가 아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우리는 이미 충분히 고통받았고 충분히 핍박받았다. 더 이상 우리를 이용하거나 우리를 억압하려 들지 마라. 선거가 끝나면 다시 야수의 본성을 드러내고 으르렁 거릴 저들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