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대학교 동양문화학과 교수

4. 규모(2)

다시 우리의 질문으로 돌아오면, 허생의 섬은 그 구성원의 수가 2천 명으로 분명하다. 그러나 노자의 소국과민은 그 구성원의 수를 알 수 없다. 소국과민의 구성원 수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什佰之器”의 의미를 분석해야 한다. 이 문장에서 ‘什’과 ‘佰’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器’를 어떻게 이해할지를 해명하면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논의의 편의를 위해 우선 ‘器’에 대한 이해들을 살펴보자. ‘器’에 대한 이해는 크게 세 가지 관점으로 이해되어 왔다. 첫째는 농구기구라고 보는 관점으로, “器謂農人之器”라고 주석한 하상공이 이러한 입장을 취한다. 둘째는 사람의 재능과 재주라고 해석하는 입장이다. 이러한 관점을 취하는 대표적인 인물은 유학자인 소철(蘇轍)이다. 그는 “백성들은 각자 자신의 분수에 편안히 하면 약간의 재능이 있어도 세상에서 쓰여짐을 구하지 않게 되고, 그러한 사람들의 재주[什佰之器]는 보통 사람보다 열 배 백 배 뛰어난 재주를 감당한다.”라고 해석한다. 마지막 해석은 전통적인 해석으로 병장기라는 관점이다. 청대 학자 유월(兪樾)은 여러 전거를 인용하면서, 고대의 군대 편제가 什과 佰으로 구분되며, 이들 什과 佰의 편제는 병장기를 공동으로 사용했다고 해석한다. 이러한 관점을 이어받은 현대 학자인 루우열(樓宇烈)도 “什佰之器”를 什과 佰은 군대 편제이고, 이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병장기라고 본다. 필자는 ‘器’에 대한 이해에서 병장기라는 해석에 동의한다. “使有什佰之器而不用”이라는 문장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이 “사용하지 않게 한다[不用]”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노자 전체를 관통하는 전쟁에 대한 반대의 논리와도 맞다.

이제 什과 佰의 규모를 생각해보자. 현대 학자 루우열의 이해를 가져와 보자. 루우열은 자신의 해석에 유월(兪樾)의 주석을 인용하고 있기 때문에, 앞에서 ‘기’를 논의하면서 생략한 유월의 관점도 확인할 수 있다.

“什伯之器”는 병장기를 가리킨다. 兪樾은 “什伯之器는 병장기다. <後漢書> 「宣秉傳」의 주석에서 ‘군법에 다섯 사람으로 伍로 삼고 열 사람으로 什으로 삼아 그 병장기를 함께 사용한다(軍法五人爲伍, 二五爲什, 則共其器)”고 하였다. 동시에 伯라고도 하였는데, 옛날의 군법에서는 100 사람을 ‘伯’이라고 하였다. <周書> 「武順篇」에서는 “5 곱하기 5하여 25를 元卒이라 하고 원졸 넷으로 衛라는 편제를 이룬 것을 伯이라고 한다(五五二十五曰元卒, 四卒成衛曰伯)”라고 했으니 이것이 그 증거다.(여기까지가 청나라 시대 학자인 유월의 말이다)

什과 伯은 모두 군대 편제 단위의 이름이다. <禮記> 「祭義篇」에서는 ‘軍旅什伍’라고 하였다. <禮記>에서 말한 ‘什伍’니 <노자>에서 말한 ‘什伯’이니 하는 것은 편제에서 크고 작은 차이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뜻이 없다. 徐鍇(서개)의 <說文繫傳>의 〈人部〉에서는 <伯> 항목 아래에 ‘<老子>에서 什伯의 병장기가 있다고 하였다. 매 什伯마다 병장기를 함께 사용한다는 것은 병장기나 갑옷 따위를 말하는 것이다.(老子曰: 有什伯之器. 每什伯共用器, 謂兵革之屬)’라고 하였다. 제대로 풀이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루우열의 해석에 따르면, 군대의 편제에서 가장 낮은 단위가 ‘什’과 ‘伯’이다. 그리고 ‘什’은 10명으로, ‘伯’은 100명으로 편제된 부대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什伯’은 1000명으로 구성된 군사들의 편제이거나, 어떤 집단의 수를 표현하는 것이 될 것이다. 동양의 전통적인 숫자 표현에서 숫자를 나타내는 한자를 병기하여 서술하면 그 수를 곱셈으로 계산하여 이해한다. 따라서 “使有什佰之器而不用”에 대한 해석은 ‘1000명 정도가 공동으로 사용할 병장기가 있어도 쓰지 않게 한다’는 의미로 풀이해야 한다.

이렇게 해석하더라도, 우리는 노자의 소국과민의 구성원이 정확하게 몇 명인지 알 수 없다. 소국과민의 전체 인구가 ‘십백’인지, 병장기가 ‘십백지기’인지, 십백에 포함되는 구성원은 성인 남성인지, 여성까지 포함하는지, 병장기가 십백지기이고 이를 사용할 구성원은 그것을 넘어설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허생의 섬에서 남성 구성원 수는 천 명이다. 만약 연암이 ‘십백’을 성인 남성의 숫자로 이해했다면-상식적으로는 그렇게 읽힌다-, 소국과민의 구성원 수와 같아진다.

만약 연암의 <허생전>이 노자의 소국과민을 소설화한 것이라면, 허생의 섬 인구를 2000명으로 잡은 것은 “什伯之器”를 전통적인 독법으로 읽어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결승문자를 사용하고, 사족과 문자를 아는 자들을 배제한 공동체를 허생의 섬에서 구현하고 있는 것 역시 노자의 소국과민의 내용과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