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대학교 동양문화학과 교수

4. 규모(1)

<노자> 제80장에서 묘사하는 이상적 공동체인 ‘소국과민’의 구성원 수는 얼마나 될까라고 질문해 보자. 이렇게 질문하는 것은 제도로서의 문자와 규범으로서의 문자가 필요 없는 공동체, 입말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공동체, 다시 말해 ‘결승이용지’가 가능한 사회의 규모를 생각해 보기 위함이다.

커뮤니케이션 이론에 따르면, 입말 문화로서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한 공동체의 규모는 2천 명을 넘지 않아야 한다. 이 이론에서는 평등한 공동체의 사례로 아메리카 원주민 공동체를 주로 언급하면서, 이들 공동체의 구성원 수에 주목한다. 이들 공동체의 구성원 수는 각 부족당 수십 명에서 수백 명 단위이고 많은 경우에도 2천 명을 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정도의 규모의 구성원 수를 유지하는 것은, 사회적 갈등과 공동체의 분열, 붕괴를 피하기 위해서 인구의 수를 일정한 수준 이하로 유지할 필요성 때문이다. 공동체의 인구수가 일정한 한계를 넘어서면, 공동체를 분화시키기도 하고, 피임이나 낙태, 영아살해와 전쟁을 벌이기도 한다. 2천 명을 넘어 인구 밀도가 증가하면 원시사회를 동요시키거나 붕괴시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공동체 구성원의 수를 이처럼 한정하는 것은 일상 속에서 정보의 평등과 직접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루이스 헨리 모건의 <고대 사회>이다. 루이스 헨리 모건에 따르면 북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은 민주적인 공동체를 꾸리고 있으며, 그 공동체의 추장도 부족원 위에서 군림하는 통치자가 아니라 자유선거에 의해 씨족에서 선출된 대표자이며,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부족원들에 의해 파면될 수도 있다고 한다. 모든 부족의 구성원들은 부족의 문제에 대해 발언권을 가지고 있으며, 의사결정은 투표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면서 이 정도의 규모의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한다.

인류학 연구에 따르면, 원시부족사회는 미개한 사회가 아니라 권력 구조와 통치 구조를 배제하기 위해 의도되고 고안된 고도의 시스템이다. 이 공동체에서는 의도적으로 규범으로서의 문자와 제도로서의 문자를 배척한다. 이러한 사례를 보여주는 것이 C. 레비-스트로스의 연구이다. C. 레비-스트로스는 자신이 필드 연구를 한 남비콰라족 원주민 부족들이 문자와 문자의 기능을 알고 있지만, 문자를 의도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려 한 사례를 보여준다.

남비콰라족의 족장이 서구인들이 전해 준 문자의 힘을 알아채고 그것을 활용하려 하지만, 부족민의 반대에 부딪혀 아예 신임을 잃어버리고(족장의 지위를 잃어버리고), 부족민들은 공동체를 벗어나 덤불 속으로 피난한다. 이는 남비콰라족의 부족민들은 문자와 문자의 기능을 이해하고 있었으며, 문자의 도입은 사회 내부의 권력 구조의 변동, 더 나아가 공동체의 해체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이처럼 원시공동체 사회는 구성원의 수를 제한하면서도 일정한 규모를 유지하고, 부족원들이 모두 참여하는 의사결정 구조를 유지하려는 의도에서 문자를 도입하지 않았다. 공동체 구성원의 수를 제한하면서 일정한 정도의 규모와 입말 문화를 고수하는 것은 직접민주주의를 시행할 수 있으며, 정보의 평등을 추구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