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응인 「다만」
수없이 많은 인과 연쇄로 생멸하는 이 세계를 안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알아도 아주 제한된 고립계(孤立界)에 대한 분별적 앎입니다. 그러니 그런 분별적 앎을 보편화시켜 연기적 인과의 세계에 적용하면 충돌하고 필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앞서 본 박경희 시인의 짧은 이야기에서처럼 생각지도 않은 일이 일어납니다. ‘할머니의 욕-강재미 무침-낡은 집-손님들의 감성’과 그 각각에 이어져 있는 무수한 미세원인의 인과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그걸 분별하여 안다고 할 때가 오히려 문제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분별식이 사건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지독하게 왜곡시켜 보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물 안 개구리 이야기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노자도 “학문을 하면 나날이 늘어나고 도를 닦으면 나날이 줄어든다(僞學日益 爲道日損 -『도덕경』 48장)”고 했을 것입니다. 불교에서 욕탐에 물든 마음을 비우고 보라는 말을 하는 것도 이런 이유와 다르지 않습니다.
분별적 생각을 멈추고 연기적 관계로 이어지고 이어진 이 세계를 느끼는 것입니다. 물론 사는 내내 분별적 생각만 하고 살았는데 이게 쉽게 될 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해보려고 잠깐씩 노력할 때 연기의 세계는 열립니다.
다음 시를 읽겠습니다.
다만
- 이응인
개불알풀꽃은 그 작은 입으로
무슨 말을 해서
꿀벌을 불러 모을까?
봄비는 무슨 재주로
늙은 느티나무 가슴을 열어
연둣빛을 끄집어낼까?
나는 모른다
다만
모르는 것 가득한 화음
한가운데 있을 뿐
연기법은 이 세상의 존재원리로서 모든 것은 인연에 따라 생기고 없어진다는 이론입니다. 그래서 깨달은 자의 눈에는 자연현상 모든 것,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꽃이 피고 벌 나비가 나는 것 모두 온 우주 그 자체이신 비로자나 부처님이 항상 시현(示現)하고 계신 중도의 법문이라고들 합니다. “개불알풀꽃은 그 작은 입으로/ 무슨 말을 해서/ 꿀벌을 불러” 모읍니다. 우리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어떤 인연의 끈이 깊어서 그런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어떤 철모르는 이가 제초제를 뿌리고 가면 벌들이 없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런 일들이 얽히고설킨 어떤 인연 관계로 구체화되는 것인지는 몰라도 인연 조건에 따라-함께-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은 압니다. 그런 인연 관계에 미세한 변화만으로도 ‘개불알풀꽃-벌’의 사건은 사라진다는 것을 압니다. 또 “봄비는 무슨 재주로/ 늙은 느티나무 가슴을 열어/ 연둣빛을 끄집어”내는지 모릅니다. 그 이유를 몰라도 모든 것을 인연으로 하여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은 압니다. 그리고 그 인연 관계에 조금이라도 변화가 생기면 ‘봄비-연둣빛’의 사건은 사라진다는 것도 압니다. 그리고 그런 인연의 인과관계가 단순화시킬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는 것도 압니다. 마치 카오스이론에서 말하는 초기값의 민감성처럼 수도 없는 인연 관계가 얽히고설켜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그러니 그 까닭에 대해 “나는 모른다”가 맞습니다. 아는 척하는 것이 오히려 모르는 것입니다. 아는 척 분별심을 작동하는 순간 수없이 많은 인연의 가닥들이 보이지 않게 됩니다. 이분법적으로 작동하는 우리의 분별적 생각을 갖다 붙일 수야 있지만, 그로 하여 더 모르는 것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연기적 사건의 그 얽히고설킨 관계는 분별적으로 작동하는 우리의 생각으로 규정할 수 없는, 어떤 말로 표현해도 오류가 발생하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이고 불가사의(不可思議)한 현상입니다. 그러니 차라리 모르는 상태, 나와 세계 그리고 주관과 객관을 나누지 않은 상태(분별심을 버린 상태)에서 인연을 느끼려고 하는 게 훨씬 좋은 태도일 수 있습니다. 분별심으로 그 많은 인연의 관계를 지우지 말고 그저 나와 인연 관계에 있는 한 몸이라고 생각하며 느껴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다만/ 모르는 것 가득한 화음/ 한가운데 있을 뿐”의 태도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비로자나 부처님의 법문이라면 분별심을 멈추고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크나큰 공부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생명을 생명적 화음(和音)으로 조율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의상 스님도 『법성게(法性偈)』에서 다음처럼 말했을 것입니다.
雨寶益生滿虛空(우보익생만허공)단비 같은 보배구슬이 중생을 위해 허공에 가득하고
衆生隨器得利益(중생수기득이익)뭇 생명들은 제 그릇에 따라 이익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