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귀촌 92/ 김여사의 현장 단상 : 벽돌 쌓기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3.09.19 07:52 의견 0

어제에 이어 오늘도 따뜻한 기운을 받아 가을처럼 하늘이 푸른 현장에 벽돌 쌓는 것을 보러 갔다. 작은 집에 꽤 많은 분들이 오셨다. 대부분 연륜이 많으신 모습이다. 기초공사를 할 때도 연륜이 많으신 분들이 레벨기 등 기계를 들이대기 전에 눈으로 먼저 문제를 짚어내는 경우를 보았다. 이 분들은 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숙련공들이다. 집짓기 현장 단상을 끄적이면서 내가 느끼는 아름다움이라든가 숭고함, 깨달음 등은 모두 현장에서 몸 쓰는 과정 그리고 결과물들에서 얻는다. 노동의 가치는 숭고하고 직업에 귀천은 없다고 하나 아직 한국 사회는 노동에 계급이 존재하고, 직업에 천대가 있는 나라임을 부인할 수 있을까. 연세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청년도배사는 몸을 써서 성과를 만들어내는 일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고 하나 무시와 차별, 편견 앞에서 힘든 시간을 버틴다고 말한다. <청년 도배사 이야기: 까마득한 벽 앞에서 버티며 성장한 시간들, 배윤슬> 앞으로 이분들의 세대가 지나면 어쩌나...라는 생각이 든다.

현장에서 내 눈에 확~ 띄는 도구가 있다. 몇 십 년 만에 본다. 내 나이 때의 사람들은 어릴 적 집에 서 보았던(대부분 하나씩은 가정에) 도구가 아닐까 생각한다. 바로 흙손(고데)이다. ‘고데’는 일본어로 여성들이 헤어 스타일에 멋을 낼 때 ‘고데한다’고 할 때 그 ‘고데’다. 요즘 가정에 대부분 헤어드라이어가 있고 누구나 사용하는 것처럼 미용실에 꼭 있었던 도구가 고데기였다. ‘고데’는 ‘누르다’의 의미인데 나도 젊었을 때 특별한 행사로 머리치장을 할 때는 미용실에 가서 고데를 했다. 머리카락을 지그시 눌러 모양을 내던 미용사의 손길이 생생하다. 벽돌 위에 모르타르를 얹고 흙손으로 지그시 누른 후 벽돌을 올려 아래 벽돌과 윗벽돌을 붙여 견고하게 잡아주는 쌓기를 하고 있다. 이렇게 쌓을 수 있도록 각자 맡은 일이 분담되는 것을 본다. 팔레트의 벽돌을 풀어 지게에 지고 외벽 곳곳에 적당량을 옮기는 분, 점점 높이 쌓아가는 위치에 주기 위해 비계(아시바) 위에 올려 주고받는 분, 모르타르(시멘트+모래+물)를 만드는 분, 접착제 역할을 하는 모르타르가 완전히 굳기 전에 부스러기를 긁어내고 빗자루로 털어 내는 분, 모서리 벽돌을 크기에 맞춰 자르는 분, 줄눈을 걸고 확인하시는 분 등 그 어느 공정보다 분명한 협업이 보이는 공정이다. 나는 이 작업을 보면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사람끼리 살아가는 방법을 다시 배운다. 마냥 구경자가 되지 않기 위해 잘라내서 쓸모가 없어져 여기저기 흩어진 벽돌들을 한 곳으로 모으는 어정쩡한 몸 쓰기를 하고 있다. 새참 시간에 연륜이 풍부한 분들의 '라떼는~' 을 엿듣는 재미는 ‘덤’이다.

조적에서 모르타르는 아래와 위 벽돌을 붙여 주는 기능을 했다면 벽돌과 벽돌 사이의 줄눈(메지) 모르타르는 빗물 침투를 막아주는 기능뿐 아니라 외관 장식의 기능도 있다. 나는 벽돌을 한 개만 보고 선택했는데 쌓아서 면을 이루니 색이 달라진다. 튀지 않는 색이라 생각했는데 조금 뜬다. 누르는 줄눈 색을 선택해야겠다. 줄눈의 깊이와 색에 따라 조적벽의 느낌이 확~달라져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건축사님이 건축이 시작되면 선택의 장이라더니 선택하기 위해 고민은 거부 불가능의 서비스처럼 따라온다. 공정뿐 아니라 그 공정의 세부 공정 굽이굽이마다 고민과 선택의 장 앞에 불려 가고 있다.(글 김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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