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쌍 파티 초대장을 받았다. 70년대도 아니고 이 시국에 뜬금없는 쌍쌍 파티라니 피식 웃음이 나왔지만, 한 편 이 모임은 또 뭐지 하고 궁금해지기도 했다. 우리 집을 설계한 건축 사무소가 해마다 공사를 진행한 의뢰인(클라이언트) 몇 분을 모시고 진행하는 송년 모임인데 코로나로 그동안 못하다가 올해 4년 만에 여는 모임이라고 했다. 허리도 아픈데 춤추는 모임은 아니겠지 하며 아내하고 참석하게 되었다. 조건은 실제 부부일 것, 올 때 커플룩으로 올 것이었다.

참석자는 건축사 부부 포함 9 쌍의 커플이었다(한 쌍은 모녀). 건축사와 함께 건물을 지은 고객이 5 쌍이고 건축사의 지인 건축가 부부가 3 쌍. 음식 종류도 가지가지인데 그 많은 걸 새벽부터 함 소장님 혼자서 마련했다니 참. 마지막은 비건주의자인 천 대표를 위해서 비건 떡국이 나왔다.

자연스럽게 건축하면서 있었던 건축주들의 에피소드가 안주가 되고, 처음 의도와, 의도가 좌절되어 가던 경험들이 따라왔다. 이어서 건축가들이 설계하는 사람으로서의 고민, 집 짓는 과정에서 건축주와 시공업자들의 갈등, 나이가 들면서 경험이 쌓이면서 건축가의 욕심을 비우고 집을 잘 지으려는 건축사와 건축주와 시공사 간의 욕망의 충돌을 조절하게 되더라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래서 건축물에 상을 줄 때는 설계한 건축사와 건축주와 시공사에게 함께 상을 준다는 이야기도 처음 들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건축가들과 테이블을 앞두고 이야기하는 시간은 건축가와 건축을 이해하는 귀중한 시간이 되었다.

경험이 많은 건축가 한 분이 후배 건축사들에게 고객의 집을 짓기 전에 자기 집을 먼저 지어보아야 한다는 말과, 건축사들에게는 건물이 크든 작든, 사람이 24시간 거주하는 주택, 병원, 장례식장 같은 건물을 짓는 것이 제일 어렵다는 이야기, 누가 살지 모르는 아파트와 같은 공동 주택보다는 살아야 할 사람이 누군가 알고 집을 설계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이야기, 집은 생각을 담아내는 그릇이라는 이야기 등이 인상 깊었다.

돈 벌고 사는 의미가 좋은 사람들과 밥 한 끼 먹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호스트 건축사의 마무리 인사말을 듣고 자리에 일어선 것은 자정이 훨씬 지난 시간이었다. 자정이 지날 때까지 이렇게 뜨거운 이야기를 한 것이 언제였지 하는 생각이 돈을 벌고 집을 짓는 이유가 무언가 하는 생각 뒤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퇴근 시간을 피해 한 시간 일찍 도착해서 카페에 앉아 파티를 기다리며서 끄적인 노트. 콘크리트가 양생되는 것과 사람이 양생되는 것은 결국 같은 것이라는 것.

양생

보잘것없는 모래알들이 시멘트를 만나 굳어

떠억 하니 잘 생긴 집 한 채 받쳐 줄 때까지

물은 속에서 오랫동안 긴 숨을 참았을 것이다

마치 시퍼런 땡감이 바알간 홍시가 될 때까지

그래서 떫은맛이 단맛으로 풀어질 때까지

햇빛과 바람과 비가 오래 기다리고 단련시켰듯이

젖도 빨지 못하는 붉은 아기가 어른이 되고

들개 같은 야생이 균형 잡힌 인간이 되기까지

수많은 한숨과 눈물과 참음이 숨어 있었던 것처럼

여전히 어리석은 인간들이 싸우고 지지고 볶으며

집에 사는 이들이 서로 익어 양생養生이 되어야

집은 진정 생명을 담는 그릇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글 전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