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스코 아르마스 광장의 교회


오늘은 다시 돌아온 잉카제국의 심장 쿠스코 시내를 돌아볼 계획이다. 저녁 먹을 시간이 되어 가는데도 속은 계속 더부룩했다. 점심으로 먹은 라마 고기에 체한 것이다. 한국이었다면 바늘로 손을 따거나, 활명수 같은 액체 소화제를 마시면 속이 뻥 뚫릴 텐데....약국으로 가서 상황을 설명하고 처방해주는 약을 먹었지만 신통치 않다. 오늘은 함께 오지 못한 막내와의 약속인 기니피그 구이 먹는 모습을 찍어 보내주어야 한다. 걱정이다. 저녁 먹을 때까지 속이 괜찮아야 할 텐데... 우선 아르마스 광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기니피그 구이집을 찾아서 예약해놓고 쿠스코의 역사와 현재를 느낄 수 있는 아르마스 광장으로 다시 나왔다.

스페인이 정복했을 당시 ‘매우 고상하고 위대한 도시 쿠스코’라는 이름을 붙였을 정도로 쿠스코는 아름다운 도시였다. 그러나 가슴 아프게도 스페인 지배 당시 잉카의 건축물인 신전, 궁전 등을 파괴하고 잔해인 거대한 돌담을 이용해 스페인식으로 수도원, 성당 등을 세웠다는 얘기를 들으며 일본에게 침략당했을 때의 우리나라가 생각나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잉카인들은 돌을 다루는 기술이 뛰어난 민족이다. 그들이 남긴 유산 중 하나인 거대한 바위를 흑요석으로 깎아 만들었다는 12각돌을 보기 위해 골목으로 들어섰다. 유리의 일종인 흑요석으로 어떻게 거대한 바위를 깎아 각돌을 만들었을까? 좁은 골목은 자갈이 깔려 있고 각돌들을 쌓아 놓은 벽들이 보였다. 그리고 잉카제국을 상징하는 신화 동물인 퓨마와 뱀의 형태로 짜 맞춘 돌들을 안내하는 사진이 걸려 있고 그 돌들도 보였다. 어딘가에 콘도르 형태의 돌이 있지 않을까 두리번거려 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12각돌 앞에는 사진을 찍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흑요석으로 깎아 만들어진 12각돌은 설명처럼 바위와 바위 사이에 면도날 하나 들어갈 틈이 없이 보였다. 사진 찍을 차례가 되어서 12각이 잘 나오게 사진을 찍으며 만져 보았다. 아픈 역사를 기억하는 듯 돌은 매우 차가웠다.

각돌을 찾아서


도시에는 서서히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고 그 어둠을 밀어내며 다시 따뜻한 불빛으로 깨어나기 시작했다. 밤하늘에 별이 뜨듯이 지상에서 별이 뜨는 쿠스코는 아련한 불빛으로 아름다운 도시였다. 사랑하는 사람과 마지막 밤을 보내고 싶다면 쿠스코 광장의 어느 카페에 앉아 지상에서 뜨는 별을 보며 마지막 잔을 나누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여전히 속은 좋지 않았지만 예약된 식당 2층으로 올라가 창가가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형태가 그대로 드러난 기니피그 구이가 나오자 사람들이 왜 인증삿! 인증삿! 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약간은 혐오스러웠지만 먹는 흉내를 내며 사진을 찍고 막내에게 보내주었다. 식사를 끝내고 비가 한두 방울씩 내리는 옥상으로 올라가 다시는 오지 못할 쿠스코의 야경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바라보고 있으면 이유 없이 슬퍼지는 광장의 불빛은 자꾸만 지나온 시간의 뒤를 돌아보게 했다. 빗방울이 부서지는 길바닥에 꼬리를 길게 끌며 따라오는 불빛을 뒤로하고 저녁 9시 55분 비행기를 타기 위해 쿠스코 공항으로 떠났다. 1시간 30분 동안 비행기를 타고 리마에 도착해서 다시 리마에서 3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볼리비아의 라파즈로 가야 한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비행.

각돌

* 김양숙, 1990년『문학과 의식』시 등단, 2009년 [한국시인상] 수상, 2017년 [시와산문 작품상] 수상, 2013년 부천문화예술발전기금수혜. 2024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예술활동비 수혜, 시집『지금은 뼈를 세는 중이다』,『기둥서방 길들이기』,『흉터를 사랑이라고 부르는 이유』,『고래, 겹의 사생활 』등이 있음